목격자 이성민이 만난 가공할 지옥 "나만 입다물면 피해갈 수 있어!"
목격자 이성민이 만난 가공할 지옥 "나만 입다물면 피해갈 수 있어!"
세상일은 한 치 앞을 모르는 법이다. 언제 조규장 감독의 [목격자]에서 평범한 소시민 상훈(이성민)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난데없는 불행이 닥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불행은 사람을 가려서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여러 가지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소시민들에게 가장 대표적인 안전망은 경찰이다.
하지만 경찰은 언제나 한 발, 아니, 두세 발 늦다. [목격자]에서처럼 다른 사람을 범인이라고 잡아놓고도 득의만면한 얼굴로 수사를 종결시키는 것 또한 경찰이 곧잘 저지르는 만행이다. 그러니 사방을 둘러봐도 똑부러지게 믿을 데라곤 없는 것이 수많은 소시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삶이다.
목격자 이성민이 만난 가공할 지옥 "나만 입다물면 피해갈 수 있어!"
따라서 그들이 범죄현장을 목격하고도 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로 대뜸 집단이기주의니 뭐니 하고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 섣부른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신고 후에 따라붙는 갖가지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사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격자]에서 이성민이 신고를 하지 않은 바람에 범인을 잡는 것이 늦춰지고, 또 그로 인해 인명 피해가 더 발생하는 불행이 닥쳤다 한들, 무작정 그를 비난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그의 지상과제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자기 가족을 지키는 것이니까. 그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그의 가족을 범죄자로부터 지켜줄 수 없을 테니까.
이처럼 [목격자]는 살인이 저질러지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도 자기 삶이 망가져 버릴까봐 침묵을 택한 이성민의 느닷없는 불행을 통해 소통과 공감이 전혀 없는 아파트 문화와 이런 범죄의 현장이 된 탓에 행여 아파트값이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보여준다.
이런 심리적인 이유로 침묵하는 행위를 일컬어 '방관자 효과' 혹은 '구경꾼 효과'라고 한다.
공공장소에서 어떤 사람이 폭행을 당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도우려 나서지 않고 구경꾼처럼 바라보기만 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 일컫는 명칭이다. 1960년대 뉴욕에서 강도에게 잔혹한 폭행을 당한 끝에 살해된 미국 여성 키티 제노비스의 이름을 따서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도 불린다. 사건 당시 강도의 폭행이 30분 넘게 지속되었고, 경찰수사 결과 38명이 현장을 목격했거나 싸우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녀를 도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실제로는 목격자가 38명이 아니라 6명이었고, 그들은 경찰에 신고한 후 키티라는 여성을 도와주기까지 했지만 경찰에서는 이 일을 그저 가정폭력으로 간주하고 수사를 종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살인범에게 키티는 죽임을 당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목격자]의 줄거리를 따라가보자. 숲세권아파트, 어렵게 아파트를 장만한 이성민은 축하하는 자리에서 기분좋게 술에 취한 채 귀가한다.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이다. 그런데 거실로 들어선 순간 이성민의 귀에 밖에서 "살려주세요!~"라는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후다닥 베란다로 나간 그는 놀랍게도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덩치가 큰 남자가 망치 같은 둔탁한 기구를 들고 여자를 내려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기겁을 한 그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신고를 하려 하지만, 그 순간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자신의 아파트 층수를 세는 범인 태호(곽시양)와 눈이 마주치자 온몸이 얼어붙어버린다.
그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내와 딸이다. 평소에도 가진 것이라고는 아내와 딸 하나, 그리고 대출을 잔뜩 낀 아파트 한 채뿐이라고 자조섞인 어조로 내뱉곤 하던 그에게 그 순간부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지옥 같은 시간들이 펼쳐진다. 신고를 하자니 자기 가족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게 불보듯 뻔하고, 그렇다고 모른 척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으려니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
다음날 날이 밝자 범행현장을 둘러보러 나간 이성민은 그곳에서 자기 집이 정통으로 바라다보이는 것을 알고 새삼 절망에 사로잡힌다. 결국 아무런 힘이 없는 그는 양심을 버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침묵하는 길을 택한다. 물론 그 침묵이 그 후 얼마나 큰 태풍을 몰고 올지 그때의 그로서는 결코 알 수 없었으리라.
신고를 하면 신고를 한 대로, 혹은 침묵을 하면 침묵을 한 대로 이성민에게 큰 아가리를 벌리고 다가오는 지옥의 문이 섬뜩하다. 왜 내게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느냐는 한탄이나 할 수밖에 없는 이성민이다. 실제로도 운이 나빴다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가공할 지옥이다. 그 지옥의 한복판에 들어선 채 어쩔 줄 몰라 갈팡질팡하면서도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침묵을 강요당한 소시민의 모습을 '믿보배' 이성민은 감정선을 흩뜨리지 않고 납득이 가도록 잘 연기해 주었다.
자신의 살인을 본 목격자 이성민을 쫓는 범인 곽시양이다. 보기만 해도 위협적이고 위압적인 범인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무려 13킬로그램이나 체중을 늘린 곽시양은 “무자비하고 치밀한 범인을 연기하기 위해 경찰의 손을 피하려고 체력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연쇄살인마 정남규를 참고했다"고 한다.
영화 속 곽시양은 어린시절 학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주변환경이 그를 이런 살인마로 키워낼 만큼 조악하지도 않은데, 마치 살인을 배고프면 밥을 먹듯이 저지르는 악마성의 소유자다. 눈앞에 마주했다 하면 누구에게든 마치 파리채로 파리라도 잡듯이 가차없이 큰 망치를 내리쳐대는 그의 악마 같은 모습, 꿈에 볼까 무섭다. .
이성민의 아내 역을 맡은 진경이다. 앞뒤를 가리지 못할 만큼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의연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올바르고 이성적인 모습까지 보여주는 여성이다. 딸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진경에게서 엄마의 가없는 모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또 남편에게도 믿음직스럽고 든든하기 그지 없는 아내 역할을 잘 해주었다.
단 한 명의 목격자라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베테랑 형사 재엽(김상호)이다. 범인을 잡은 것으로 종결한 수사임에도 끝까지 진범을 잡기 위해 이성민을 설득하고, 그 외 목격자들은 없는지 샅샅이 뒤지고 다닌다. 그래도 역시 한 발 늦는 것은 변함이 없다. 진범을 잡은 것은 지옥에서 악마가 되어 돌아온 것 같은 이성민이었으니까.
조규장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의 60퍼센트가 아파트에 살고 있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벽 하나를 사이에 뒀음에도 불구하고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다. 이러한 삶의 방식 속에 살인사건이라는 범죄가 침투했을 때 사람들이 드러낼 심리를 담고 싶었다”며 [목격자]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감독의 기획 의도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살인사건을 방관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을 그저 집단이기주의로만 몰아가기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너무 허술하고 미흡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런 살인사건을 일개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지금 내가 외면한 일이 내일 내게 닥치지 말란 법이 없고, 그때 내가 외면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외면한다면, 나 역시 살인마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만 입다문다고 피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사람들이 타인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라도 서로 돕고 살 수밖에 없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누구도 불시에 찾아든 불행을 피해갈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 아파트값이 떨어질지도 모르니 범인을 잡기 위해 아파트 내부를 들쑤시고 다니는 경찰에 협조하지 말라는 집단이기주의의 극치를 내보인 안내문을 주민들에게 돌릴 게 아니라, 한시바삐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목격자들이 나서고, 또 신고를 한 사람은 최대한 안전할 수 있도록 속히 신변보호를 요청하자는 안내문을 보내는 것이 맞다. 그런 일을 합심해서 하기에 아파트처럼 좋은 공간이 또 있을까.
그리고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어려운 일을 개인에게 맡기고 각자가 알아서 해결하기를 바랄 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이 더욱 튼튼하게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도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으니, 참으로 불안하기 그지 없는 날들이다.
이상, 목격자 이성민이 만난 가공할 지옥 "나만 입다물면 피해갈 수 있어!"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