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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톰 행크스 인페르노 누구도 인류의 절반을 죽일 권리는 없다

톰 행크스 인페르노 누구도 인류의 절반을 죽일 권리는 없다

 

톰 행크스 인페르노 누구도 인류의 절반을 죽일 권리는 없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도끼로 내리쳐 살해하고, 이 살해 장면을 목격한 노파의 여동생까지 죽인다. 니체의 초인사상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평소 범인(凡人)과 달리 초인(超人)은 세상의 악인을 응징해도 좋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그 신념에 의해 가난에 쪼들리지만 비상한 머리를 가진 법학도인 그는 스스로를 탁월한 인물로 여기고 궁핍한 사람들의 피눈물을 먹고 사는 노파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막상 살인을 저지른 그는 죄책감과 자기혐오와 공포에 빠져 미쳐가기 시작하고, 결국 그 상태를 견디지 못한 나약한 지식인은 자수를 택한다. 그리고 8년 유배형을 받은 후 시베리아로 떠난 그의 곁에 순수한 영혼의 쏘냐가 머물게 되면서 감히 다른 사람을 단죄하고자 했던 자신의 소영웅주의가 얼마나 어리석고 과대망상적인 신념이었던가를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톰 행크스 인페르노 누구도 인류의 절반을 죽일 권리는 없다

 

1866년에 출간된 소설이니 벌써 15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이 라스콜리니코프와 같은 소영웅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시대를 넘어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혹은 현실의 인물로 끊임없이 나타나는 듯하다. 이 [죄와 벌]을 쓸 무렵 도스토옙스키도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만큼이나 극도의 가난에 쪼들렸다고 하는데, 아마 그 자신 역시 현실에서 펼치고 싶었던 소영웅주의에의 열망을 소설에서나마 글로 풀어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라스콜리니코프처럼 한두 사람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인류는 질병이자 재앙"이라고 인구과잉 문제를 제기하며, 21세기 흑사병으로 인류의 절반을 죽이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다. 다행히 현실의 인물은 아니고, 론 하워드 감이 작가 댄 브라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인페르노](Inferno)에 등장하는 조브리스트(벤 포스터)다. 

 

 

천재 생물학자인데다 억만장자인 그는 "지구는 이미 병들었다. 원인은 인구과잉이다. 우리는 생존자원을 파괴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나 관련 단체들은 이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인류 자체가 질병이다. 인페르노가 그 치료제다"라며 자신만의 극단적이고 독단적인 방식으로 인구를 절반으로 줄일 계획을 밀어붙인다. 그의 계획은 14세기에 발생해 약 3년간 2천여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처럼 21세기에도 흑사병으로 인류의 절반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구상의 인구가 10억이 되는 데에는 10만 년이, 20억이 되는 데에는 100년이, 그 두 배가 되는 데에는 5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1970년엔 40억이었던 인구가 지금은 80억에 가깝다. 작가 댄 브라운은 인구과밀 문제를 조사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악인(惡人)에 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요즘과 같은 초과학의 시대에 폭발적인 인구과잉 문제를 전염병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생각은 좀 넌센스 같다. 물론 아직 폭발적인 인구증가 문제를 해결할 똑부러진 대책이 없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을 스스로를 갉아먹는 암세포라 칭하면서 쓰나미처럼 쓸어버리겠다는 단순무식한 해결책을 내세우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조브리스트가 아무리 천재 생물학자라 한들, 또 아무리 이 지구를 통째로 살 만큼 돈 많은 거부라 한들, 누구도 그에게 감히 인류의 절반을 죽일 권리를 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크고 튼실한 과일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틈틈이 자잘한 열매와 가지, 잎을 솎아준다. 과일만 그런 게 아니라 갖가지 채소며 꽃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 솎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과일은 좋겠지만, 속절없이 가위질에 자려나간 과일이나 채소, 꽃들은 억울할 것이다. (크고 튼실한 과일조차 결국은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 뱃속으로 사라진다는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 솎임을 당하는 것이 과일이나 채소, 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그 솎임을 당한 인간이 바로 나 자신이라면, 나를 제외한 인류의 절반이 더 편안하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희생양이 되고 싶을까?

 

살아남아야 할 사람은 누구이고, 죽어도 좋은 사람은 누구일까? 또 그 기준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는 독일인만이 우수한 민족이기에 그 외 민족은 이 지구상에 발을 딛지 못하게 만들고자 했던 히틀러의 나치주의와 뭐가 다를까? 누구는 누군가를 위해 죽어줘야 하고, 또 누구는 살아남아서 더 편안한 삶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위험하고 끔찍할 뿐이다. 

 

 

이처럼 미국 최고의 흥행배우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톰 행크스가 등장하는 [인페르노]는 인류의 미래에 닥친 환경문제, 즉 인구과잉으로 인한 인구종말론과 새로운 21세기 흑사병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주장한 조브리스트가 갑작스럽게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빌딩에서 뛰어내리고, 하버드대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은 기억을 잃은 채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눈을 뜬다. 담당의사 시에나 브룩스(펠리시티 존스)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탈출한 랭던은 사고 전에 입었던 자신의 옷에서 의문의 실린더를 발견하고, 그 실린더에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묘사한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원본과 달리 지옥의 지도에는 조작된 암호들이 새겨져 있고, 랭던은 이 모든 것이 전 인류를 위협할 거대한 계획과 얽혀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댄 브라운 원작, 론 하워드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트리플 작품 중 첫번째인 [다빈치 코드]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속 숨겨진 암호를, 두번째인 [천사와 악마]에서는 일루미나티의 표식을 따라 교황청의 음모를 파헤치던 로버트 랭던은 세번째 작품인 [인페르노]에서는 사고로 기억을 잃어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방대한 지식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인류에게 닥친 재앙을 막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캐릭터로 열연한다.  

 

인페르노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편>을 가리키며,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 인페르노(Inferno), 푸르카토리오(Purgatorio), 파라디소(paradiso)로 불린다고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터키의 이스탄불은 성 소피아 성당을 중심으로 촬영이 진행됐다고 하는데, 지하궁전으로 불리는 성당의 지하 저수지는 터키 여행 중 가본 곳이어서 더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지하 저수지의 어둡고 서늘한 분위기며 실제 같은 느낌을 주어 좀 섬뜩했던 메두사의 머리도 기억을 되짚으며 보니 더 흥미로웠다.

 

이상, 톰 행크스 인페르노 누구도 인류의 절반을 죽일 권리는 없다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