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전 조진웅 류준열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나니"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인 조진웅 류준열의 [독전](이해영 감독)에는 Believer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독전'이라는 본제목보다 더 눈길이 가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부제다.
Believer란 '믿는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부제는 반어법으로 쓰인 듯, 영화는 시종일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자'들이 펼치는 더 갈데없는 전쟁이었다. 하긴 그들이 믿지 못하는 자들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해도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상대에 대한 의심을 버린다는 것은, 즉 '믿는 자'가 된다는 것은 곧 자기 목숨을 앗아가도 좋다고 대놓고 선언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독전 조진웅 류준열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나니"
성경에서 예수님은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고 했다. 이 말은 거꾸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자는 불행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조진웅은 엔딩에서 류준열에게 "인생을 살면서 한 번이라도 행복했던 적이 있냐?"고 묻는다. 이것은 류준열에게 서로를 믿지 못하는 마약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던 너의 삶'이 과연 행복했느냐는 물음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자신 끊임없는 의심과 불신으로 점철된 삶 속에서 발버둥치느라 '믿지 못하는 자'가 된 탓에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음을 토로하는 고백일 수도 있다.
하긴 한순간도 의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류준열이 몸담은 마약조직이나 늘 누가 범인인지 의심의 촉수를 거두어서는 안 되는 조진웅이 살아온 세상은 언제 누가 배신을 때려 등에 칼침을 꽂을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와 몸을 관통할지, 또 언제 온몸이 불타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될지 모르는 벼랑끝 세상이다. 그러니 "보지 않고도 믿는 행복"은 그들에게 멀어도 한참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독전 조진웅 류준열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나니"
열린 결말로 엔딩을 장식한 한 방의 총성은 누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조진웅, 류준열 두 사람 다 탁자 위에 총을 놓아두고 있었으니 조진웅이 류준열을 쏜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류준열이 조진웅을 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왠지 조진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것'은 물론 '보고도 믿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아진 조진웅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애초에 경찰증을 내놓고 류준열을 찾아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고 말이다.
하지만 조진웅이 차에 기름을 넣고 얼음처럼 차갑고 청량하고 명징한 노르웨이의 하얀 눈길을 하염없이 달려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오프닝을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던 류준열의 불행한 삶을 끝내고, 자신은 '보지 않고도 믿는 자의 행복'을 찾아 서로 의심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났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든다.
이해영 감독은 닫힌 결말이 있음에도 이처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 관객들이 그 여운을 곱씹게 하려고 편집해 버렸다고 하는데, 감독의 의도대로 여러 갈래로 해석을 펼쳐보면서 그 여운을 곱씹고 있는 참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닫힌 결말이 담긴 확장판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감독의 말이 반가웠지만, 지금은 왠지 확장판이 나오면 사족이 돼버릴 듯싶기도 하다.
힘을 싸그리 뺀 조진웅의 연기가 무척이나 좋았다. [대장 김창수]에서는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 등장해 보기가 좀 그랬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살을 많이 뺀 것만큼이나 불필요한 힘도 완전히 빼버린 듯해서 '마음만 먹으면 저렇게 변모할 수도 있구나'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인 류준열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없는 캐릭터를 잘 보여주었는데, 매 영화마다 한 스텝 한 스텝 잘 밟아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니 앞으로 얼마나 더 크게 성장할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악의 화신으로 변신한 김주혁은 광기어린 마약쟁이의 모습을 끔찍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잘 표현해 주었는데, 악인 연기로 한창 물이 오르던 차에 아깝게도 세상을 떠나 더 이상 좋은 연기를 볼 수 없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 외에도 영화 초반에 가까스로 죽음을 피한 마약조직의 후견인으로 등장한 김성령은 빨간색의 멋진 옷차림과 카리스마로 몰입도를 높여주었고, 마약조직의 숨겨진 인물로 감히 이선생을 자처하고 나섰다가 바로 그 이선생에 의해 이선생의 개가 당한 것처럼 처참하게 불에 타죽은 차승원,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 진서연도 저마다 맡은 역을 멋지게 펼쳐보여 주었다.
또 농아 남매를 연기한 김동영, 이주영 또한 짧은 등장만으로도 그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 특히 얼마 전에 방영한 [라이브]에서 신참 지구대 경찰 역을 맡았던 이주영은 [라이브]에서도 그랬지만 [독전]에서도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줘 신스틸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독전(督戰)은 홍콩 영화계의 거장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을 리메이크한 것이라고 하는데,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毒戰, 즉 '독한 자들의 전쟁'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뜻은 "전투를 감독하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督戰보다는 毒戰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고, 毒戰보다는 unBeliever,즉 '믿지 못하는 자'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한편 독전에서는 코로 마약을 흡입하는 장면이 여러 컷 나오는데, 실은 마약이 아니라 소금을 쓴다고 한다. 배우들이 이를 흡입할 때도 보통은 코로 들이마시는 시늉만 할 뿐 대부분은 CG로 처리하는데, 그것을 조진웅은 실제로 흡입했다가 숨이 막히는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마약을 흡입하고 기절해 버린 조진웅의 정신을 되돌리기 위해 물이 가득찬 욕조에 통째로 집어넣고, 그것도 모자라 얼음까지 들이부은 그 욕조의 물에 붉은 피가 차츰차츰 번져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는 저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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