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컴플렉스 강렬한 시기심과 내면의 갈등
개인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출생순위가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최초로 일깨워준 바 있습니다. 그 후 네덜란드에서도 벨몬트와 마롤라는 당시 네덜란드의 19세 남자 38만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조사연구를 발표했는데, 이 결과에 따르면 지능지수와 가족구성원의 크기, 그리고 출생순위간에 상관관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즉 맏이가 지능지수가 가장 높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지능지수가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카인컴플렉스는 바로 이러한 출생순위의 차별에 따른 내면의 갈등을 다룬 구약성서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유래합니다. 심리학 교수 정승아가 들려주는 [카인컴플렉스 강렬한 시기심과 내면의 갈등]입니다.
카인컴플렉스 강렬한 시기심과 내면의 갈등
■ 카인콤플렉스: 강렬한 시기심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내면의 갈등
성서에 의하면, 카인이 저지른 죄는 인류가 두번째로 지은 큰 죄였다. 형제를 죽인 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카인이 아벨을 죽
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시기심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자신보다 아벨을 더 편애한다고 생각한 것이 발단이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시기심, 질투, 증오를 동의어로 사용한다. 그러나 정신분석가 멜라니 클라인에 의하면 이 개념들은 차이가 있다. 질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지만 얻을 수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인 반면 시기심은 자신이 원하는 좋은 대상을 아예 파괴하고자 하는 감정이다.
이러한 파괴적 공격성은 막 태어난 갓난아이에게서도 관찰되는 가장 원초적인 공격본능이다. 그러니 가장 제어하기가 어렵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깊은 마음 속 밑바닥에 꿈틀대고 있는 감정이다. 결국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류의 문명이란 이 위험한 감정을 제어하기 위한 사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감정이 원시적으로 표출되는 한, 인간사회를 유지해 나가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이 만든 모든 사회제도, 도덕규범, 윤리원칙, 심지어 종교조차도 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자 이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공산주의 사회도 심리학적인 면에서 볼 때 이 시기심을 극복하기 위한 이상이었다. 모든 평등주의의 이면에는 시기심이 잠재되어 있고 그 표면에는 이 시기심에서 파생되는 정의감이 표출되고 있다. 그 정의감은 물론 어느 한쪽에도 치우지지 않은 공평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정의감의 원천은 ‘공평함’에 대한 본능적 감각인 것이다. 카인콤플렉스는 형제간에 작용하는 이러한 강렬한 시기심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내면의 갈등을 포함하고 있다.
■ 카인콤플렉스: 세 남자 사이의 갈등
그런데 성서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이 시기심이 남자형제 둘과 아버지(하나님) 사이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표면적으로는 형제간의 갈등이지만, 그 사이에 아버지가 끼어 있는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위계구조가 다른 세 남자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카인의 시기심은 아버지가 장자를 무시하고 차남을 편애할 때 발생했다. 그리고 그 시기심은 형제를 쳐죽이는 살인을 범할 정도로 강렬했다. 또한 비록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시기심의 밑바닥에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거역할 수 없는 권위와 힘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함부로 표현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즉 표면에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아버지와 장남 사이의 갈등구조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카인콤플렉스 속에는 이렇듯 세 남자 사이에 얽힌 복잡한 갈등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한편 성서 창세기 속에는 아버지가 장자와 차남을 차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야곱과 에서는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투쟁했고, 이를 근심한 어머니가 야훼께 기도했더니 결국 그들이 두 민족으로 나뉠 것이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고 예언했다. 결국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야곱에게 넘겨주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도 아버지와 장남 사이에 놓여 있는 긴장관계가 암시된다. 이러한 세 남자 사이의 역동관계는 보스와 그 밑의 넘버원과 넘버투 사이에 놓인 미묘한 역학관계를 보여주며,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결국 이러한 삼각관계에서 내재되어 있던 비극의 씨앗이 형제살인이라는 행위로 돌출된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 첫째아이: 폐위된 왕
아들러는 첫째아이를 ‘폐위된 왕’에 비유했다. 형제가 있는 첫째 아이의 마음속에는 아무도 모르는 슬픔의 흔적이 화석처럼 각인되어 있는데, 그것은 폐위된 왕이 갖고 있는 슬픔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그 첫아이는 부모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엄마의 뱃속에 또 다른 경쟁자가 생기고 얼마 후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동생’이라는 존재가 눈앞에 불쑥 나타난다. 이때 첫째아이가 받게 되는 심리적 충격과 위기는 상상 이상이다.
왕이 나이가 들어 물러날 때가 되고 자연스럽게 왕권을 물려주는 것도 사실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세상의 독재자들이 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있어서 독재가가 된 것은 아니다. 일단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 그것을 좀처럼 내려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의 속성을 몸으로 체험했던 어떤 정치가는 "'권력이란 부자간에도 나누기 어렵다"고 말한 것이리라. 그런데 그 권력을 느닷없이, 강제적으로, 원치 않는 상황에서 빼앗기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첫째아이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사랑’을 둘로 공평하게 나누어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첫째아이의 마음속에는 인생 최초의 크나큰 시련을 맞이했던 기억과, 그 시련을 감내했던 수난의 순간들이 마치 화석처럼 깊은 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첫째아이는 왠지 둘째아이와 다르다고 한다.
‘형만한 아우 없다’ 고 하는 말은 그래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나눌 필요 없었던 ‘낙원’을 경험했던 첫째, 그러나 그 낙원을 잃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직 첫째아이이다. 둘째아이와는 다른, 첫째 아이만이 가지고 있는 체념과 슬픔과 인고의 시간 속에서 숙성된 그 무엇이 ‘형만한 아우’는 없는 특징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둘째아이: 혁명가
한편 둘째아이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첫째아이는 아무런 경쟁자가 없는 낙원의 상태를 알고 있다. 인생의 파라다이스를 경험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을 잃어버렸을 뿐이다. 그러나 둘째아이는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경쟁자가 존재했다. 둘째아이가 처음 맞이했던 세상은 첫째아이보다는 더 비관적이다. 얻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하는 그런 세상인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선점하고 있는 경쟁자, 기득권을 가진 경쟁자, 뭔가 자신보다 서열상 한 단계 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한 경쟁자를 사이에 두고 매사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그런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아이가 갖는 세계관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니 둘째아이는 첫째 아이와는 다른 세계관, 다른 처세법과 다른 생존전략을 배워나가게 될 확률이 높다. 첫째아이가 ‘지키는 자’의 입장이라면, 둘째아이는 ‘빼앗는 자’의 입장에서 경쟁관계가 펼쳐져 나간다. 그래서 첫째아이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둘째아이는 개혁적이고 반항아적인 태도를 갖기 쉽다.
둘째아이는 늘 혁명과 모험을 꿈꾸고 있다. 또한 기존의 체계를 바꾸고자 노력하며, 기존에 없던 것을 창안하고 도입하려고 한다.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혁명적 사상이나 과학적 이론을 주장한 사람들 중에도 맏이보다는 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하나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첫째아이는 항상 모반의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그것을 사전에 차단해야 하는 기득권자이자 권력자의 입장이다. 최근 나온 재미있는 연구결과도 한 가지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 중 맏이에 비해 동생들은 심각한 부상을 당할 수 있는 모험적인 플레이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상, 카인컴플렉스 강렬한 시기심과 내면의 갈등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