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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하루 김명민과 변요한이 보여준 악업의 나비효과와 용서의 힘

 

하루 김명민과 변요한이 보여준 악업의 나비효과와 용서의 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기상캐스터 필 코너스(빌 머레이)가 매해 펑츄토니에서 열리는 성촉절(聖燭節) 취재를 하러 갔다가 겪게 된 묘한 경험을 통해 매일 새로이 맞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날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예상치 못했던 폭설이 내려 발이 묶인 그는 별수없이 하룻밤을 더 묵게 되는데,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어이없게도 어제와 똑같은 성촉절의 하루를 맞는다. 이 이상한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똑같이 반복되는데, 이제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이미 알고 있는 그는 유유자적하게 여자를 만나 유혹하기도 하고 금고 수송차량을 털어 멋진 차를 사기도 하며 나름 즐거움을 누린다.

 

늘 시간부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현대인들인지라,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오늘 또 주어진다면 왠지 시간을 버는 것 같고, 또 어제 못다한 일도 후회없이 처리할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지만, 똑같은 하루가 끊임없이 반복되자 급기야는 언제 이 상황이 끝날지 기약이 없다는 것에 왠지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속 필 코너스도 처음엔 색다른 경험에 재미있어하다가 결국 끝없이 반복되는 날들에 염증이 느껴지자 마구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면서 고통스러워한다. 일일신 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라고, 매일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야 하듯이, 우리의 하루 또한 매일 갓 구운 빵처럼 새로워야만 한다. 그래야 어제의 후회를 딛고 오늘은 또 다른 각오와 용기로 새로운 하루를 만들어나갈 흥미와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김명민과 변요한이 보여준 악업의 나비효과와 용서의 힘

 

조선호 감독, 김명민 변요한 주연의 [하루] 또한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점에서는 앞에서 이야기한 [사랑의 블랙홀]과 그 소재가 같다. 하지만 필 코너스는 반복적인 하루가 이어지는 동안에 재미있고 즐거운 순간이라도 누렸지만, 김명민과 변요한이 맞는 하루는 그럴 겨를이 없다. 아니, 재미있고 즐겁기는커녕 끔찍하기 짝이 없는 지옥의 하루일 뿐이다. 김명민은 자신의 딸이, 그리고 변요한은 자신의 아내가 대형 자동차 사고로 죽어가는 모습을 매일 지켜봐야만 하는 하루이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스토리에 따르면, 전쟁의 성자라 불리는 의사 준영(김명민)은 비행기에서 내려 딸의 생일날 약속장소로 향하던 중 대형 교통사고 현장에서 죽어 있는 딸 은정(조은형)을 발견하게 된다. 엄청난 충격도 잠시,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그는 번번이 딸의 사고 2시간 전으로 돌아가 있다. 결국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떻게든 그 날의 사고를 막아보기 위해 사고 발생 전에 그 장소로 가닿으려고 죽을 힘을 다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고 매일 딸이 죽어 있는 모습을 봐야 하는 지옥 같은 하루가 반복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준영 앞에 이번엔 사고로 아내를 잃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는 민철(변요한)이 나타난다. 

 

 악업의 나비효과

 

 

얼마 후 사랑하는 딸과 아내의 죽음을 매일 눈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어 절망하는 두 사람 앞에 자신이 준영의 딸을 죽인 범인이라고 말하는 의문의 남자(유재명)가 나타난다. 준영과 민철은 이 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고의적인 사고임을 깨닫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마침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혹은 알았다 해도 순전한 이기심에서 누군가에게 큰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죄가 자신의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또 다른 죄를 불러왔던 것이다. 즉 악업[惡業]의 나비효과, 즉 죄가 죄를 낳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올바른 인성의 소유자인 준영은 그 악업의 나비효과에 분노하는 대신 그 악업의 끈을 끊어내고자 고군분투한다. 역지사지라고, 딸의 죽음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역시 자신처럼 딸을 잃은 상대의 고통이 진심으로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이 깨달음에 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단순한 깨달음으로 끝내지 않고 악업을 끊어내고자 사력을 다하는 준영을 통해 과거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일종의 고해성사와도 같은 메시지를 준다.

 

 모르고 지은 죄에 대한 고해성사

 

 

고해성사([告解聖事)란 가톨릭 신자가 세례 후 자신이 지은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고해성사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고해성사의 기도문 중에는 자신이 알아낸 죄를 고백한 다음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본인이 알고 지은 죄야 당연히 용서를 빌어야 하지만 "모르고 지은 죄도 사해주십사"는 소망을 담고 있다.

 

사실 살아가면서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말로 혹은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 법을 어기는 죄를 짓는지 돌아보고 단죄를 한다면, 여기서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이따금 알고 지은 죄가 더 큰가, 아니면 모르고 지은 죄가 더 큰가 하는 논쟁도 곧잘 벌어지곤 하는데, 대체적인 의견은 모르고 지은 죄라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남에게 못할 짓을 하고도 <몰랐다>는 것으로만 밀어붙이면서 죄를 피해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도 살려내는 용서의 힘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백미는 용서의 힘이 얼마나 놀랍고도 큰가를 보여준 데 있다. 죄는 이미 지었으되, 그 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 앞에서 강한 북풍보다는 따사로운 햇살이 외투를 벗게 만들었다는 동화 속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알고든 모르고든, 결과적으로 자기 딸의 목숨을 앗아간 준영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에서 준영의 딸을 기어이 죽이려고 혈안이 돼 있던 택시기사 유재명은 준영이 자기 죄를 깨닫고 진정으로 용서를 비는 심정으로 그 악업을 씻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 속 독기를 풀어낸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음 속 분노의 불길이 사그라들자 분명 같은 택시기사 유재명인데, 그토록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준영의 딸을 이번엔 오히려 살려내려고 불길이 무섭게 치솟는 차 앞으로 온몸을 던져 감싸안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아무리 끔찍한 죄도 용서의 힘 앞에서는 봄눈 녹듯한다는 실제사례를 심심찮게 보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용고사>라는 말이 있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순간순간에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이 네 가지 말을 꼭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입에 잘 올리지 못한다. 우발적 범죄가 늘어나고, 분노조절장애로 인해 생각도 못한 끔찍한 사건이 연일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네 마디를 필요한 순간에 빠뜨리지 않는다면 훨씬 더 부드럽고 따뜻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용서는 제비꽃이 자기를 밟아 뭉갠 발꿈치에 남기는 향기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아름다운 명언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이상, 하루 김명민과 변요한이 보여준 악업의 나비효과와 용서의 힘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