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믿음이 클수록 배신의 상처도 크다
지난 화요일 17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한 이보영, 이상윤 주연의 드라마 [귓속말]은 법률회사 ‘태백’을 배경으로 적에서 동지로, 그리고 결국 연인으로 발전하는 두 남녀가, 인생과 목숨을 건 사랑을 통해 법비(法匪)를 통쾌하게 응징하는 스토리였다. <법비>란 '법을 악용한 권력의 무리'라는 뜻으로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이보영이 출연해서 믿고 보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아니, 화가 치밀어오를 만큼 1회부터 16회까지 시종일관 경찰과 검찰, 법원, 법률회사 등 이 법비들이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장면의 나열이었다.
일단 부부가 언제라도 배신할 태세가 되어 있다. 아니, 백 퍼센트 배신할 것을 알고도 결혼한다. 그리고 몇 년을 함께 연인으로 지내온 남녀,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아들, 친구, 직장 동료 할 것 없이 제 이익에 반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순산순간 가차없이 배신을 때린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러고도 멀쩡하다 못해 뻔뻔하리만큼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마주하고 상대가 자신을 배신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잘도 배신한 것을 자랑하듯 경멸의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는 정말 멘탈이 강해도 보통 강한 사람들이 아니구나 싶었다. 여느사람들이라면 저 세계에서 도저히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듯했기 때문이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믿음이 클수록 배신의 상처도 크다
배신! 설경구와 임시완 주연의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에 대한 후기를 쓰려고 하면서 드라마 [귓속말]을 먼저 언급한 것은, 이 영화 또한 배신이 판을 치는 사람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귓속말]이 보다 점잖은 척하는 사람들의 비열한 배신을 그린 것이라면, [불한당]은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하는 막가파들의 배신을 보여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 때문인지 [귓속말] 속의 잘난 인간들이 저지르는 배신보다는 차라리 개똥밭을 구르는 듯한 삶을 사는 막가파들의 배신을 보는 게 좀 덜 역겹고 덜 씁쓸한 것 같기도 했다. 아예 "나는 나쁜 놈이다! 어쩔래?"라고 선언하고 있으니 말이다. 알고 속는 것과 모르고 속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과,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은 그 충격이 천양지차일 테니 말이다.
'불한당'(不汗黨)이란 본디 무리지어 돌아다니며 강도를 일삼던 강도떼나 화적떼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요즘에는 떼를 지어 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 책에서도 그렇지만, 이들이 불한당이 된 데에는 어릴적 부모로부터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태어나기를 애초에 싸이코패스로 태어나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부모에게만 의지하고 살 수밖에 없는 어린 나이에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에게서부터 먼저 배신을 당한 셈이라고나 할까.
그들이 타인을 믿지 못하고 언제든, 누구에게든, 배신을 때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사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상당히 클 것이다. 영화 속 불한당의 1인자 설경구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어린시절 맨 먼저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그래서 아무에게나 속시원히 털어놓기도 부끄러운 배신의 상처를 가진 가엾은 인생인 것이다. 물론 그런 사연이 그가 불한당이 된 데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않더라도, 또 [귓속말]의 주인공들처럼 여느사람들보다 더 유복한 환경에서 더 잘 배우고 더 잘 사는 사람들은 왜 배신을 밥먹듯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상영된 [검사외전], [마스터], [프리즌] 등 마약과 교도소를 둘러싼 영화들을 적당히 믹스해서 한 그릇의 그럴싸한 비빔밥으로 만들어낸 것 같은 이 영화 [불한당]은 분명 배신자와 배신을 주제로 삼고 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너만은 믿고 싶고, 너에게만은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처연한 설경구의 삶이 큰 틀을 이룬다.
이제 제발 배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만나서, 가능하기만 하다면 더 이상 배신을 하지 않고 살고 싶은 가당치 않은 욕심을 부리는 설경구다. 그리고 그 가당찮은 욕심은 꽃미모 임시완을 만나 이루어질 듯도 한 가능성을 보이지만, 역시나 헛된 꿈으로 끝날 뿐이다. 게다가 죽을 만큼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그 믿음에 대한 배신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결국 "믿는 놈을 조심하라!"는 것이, 믿음보다는 배신이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더 튼튼한 밧줄이라는 것이 설경구가 교도소 안에서 세상을 향해 외치는 메시지다. 하긴 요즘과 같이 배신이 일상이 된 세상이라면 교도소 안이나 교도소 밖이나 뭐가 다를 게 있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홈피에 올라 있는 정도로 간략하게 스토리를 소개하면, 범죄조직의 1인자를 노리는 재호(설경구)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패기 넘치는 신참 현수(임시완)는 교도소에서 만나 서로에게 끌리고 끈끈한 의리를 다져간다.
소위 건달이지만 정통 건달이 아닌 ‘약쟁이’로 세력을 넓힌 재호는 본능적인 판단 능력과 정치적인 감각을 통해 교도소의 실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재호의 독주를 막기 위해 누군가 재호를 죽이려 하고, 현수가 이를 재빠르게 눈치채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게 된다. 이 일로 재호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현수를 친동생처럼 아끼게 된다.
재호와 현수, 두 남자는 그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우정을 쌓아가고, 현수의 인생을 뒤흔들어놓을 결정적인 일로 인해 재호에게 의리와 더불어 존경심까지 갖게 된 현수는 출소 후 반드시 그와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출소 후 함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의기투합하던 중 두 사람의 숨겨왔던 야망이 조금씩 드러나고, 서로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시나 서로를 지옥 속으로 몰아넣는 배신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늘 낄낄거리면서 사악한 짓을 일삼는 설경구, 나쁜 놈들의 세상인 교도소 안에서도 돋보이는 외모의 임시완. 서로를 믿고 싶지만, 언제 뒤통수에 칼이 꽂힐지 전전긍긍하며 배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삶이 참으로 처절하다. 속을 때 속더라도 그냥 믿고 사는 게 차라리 속편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믿음이 컸던 만큼 배신의 상처도 더 컸을 테니 말이다.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을 받은 이 영화는 변성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지금까지의 범죄액션 영화와는 결이 다른 [불한당]만의 개성있는 연출을 위해 교도소 안과 교도소 밖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묘사하는 데 대조되는 색감을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사용되는 필터링 효과와 더불어 러시안 클럽, 경찰서 등 등장하는 공간들 모두 개성을 주기 위해 조명 필터를 각각 달리 사용했으며, 인물의 심리변화, 인물이 놓인 공간이 어디인지에 따라서도 색감이 화려하게 변해감으로써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액션영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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