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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특별시민 변종구(최민식) 시장의 아귀를 닮은 정치쇼

 

특별시민 변종구(최민식) 시장의 아귀를 닮은 정치쇼

 

 

아귀는 불교에서 생전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이르게 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일컫는 말이다. 배가 산처럼 크고 목구멍은 바늘처럼 좁아서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으니, 늘 배고픔의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사전적인 뜻으로는 염치없이 먹을것을 탐하는 사람이나 몹시 탐욕스러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아귀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아귀도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아마 머리는 납작하고 몸통과 더불어 매우 넓으며 꼬리부분은 뒤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짧은 것이 배가 불룩한 아귀를 닮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박인제 감독, 최민식/곽도원 주연의 영화 [특별시민]의 엔딩에서 상치를 두세 장 겹치고 고기도 두세 점 올린 큰 상치쌈을 입에 넣고 아귀아귀 먹어대는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를 보면서 떠올린 모습 또한 딱 그 아귀였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모습, 다만, 그가 먹고 또 먹어서 허기진 뱃속을 채우고자 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탐욕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 때문인지 그가 누리고 있는 권력이 부럽기는커녕, 오히려 신의 노여움을 사서 밀어올리기가 무섭게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올리고 또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는 시지프스를 보는 듯해서 딱하고 측은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특별시민 변종구(최민식) 시장의 아귀를 닮은 정치쇼

 

[특별시민]은 현 서울시장 변종구가 차기 대권을 노리고 최초로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치열한 선거전을 그린 영화다. “권력욕의 상징인 정치인, 그리고 그 정치인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의 꽃이 바로 ‘선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는 박인제 감독의 구상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권력을 얻는 적법한 수단이자 입문과정인 선거판의 세계를 그려낸다. "강아지를 늑대새끼라고 해도 믿게 만드는 것이 선거"라는 변종구 시장의 말이 압권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거짓된 말들에 호도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그런데 영화 제목을 왜 <특별시민>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서울특별시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 말로 생각되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특별시민>은 변종구 시장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그가 또다시 움켜쥐고자 하는 권력의 주변에서 들러리 역할이나 하는 <보통시민>들인 것 같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세 번에 서울시장 두 번, 이제 세번째로 서울시장에 도전한 그의 목표는 오직 권력을 손에 쥐는 것, 그 권력에 중독된 변시장에겐 아내도 딸도 정치적 수단일 뿐, 가족은커녕 하나의 인격체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가 그림 구입으로 자신을 곤란에 빠뜨렸다고 해서 아내에게 서슴없이 폭력을 쓰려 하고, 하나뿐인 딸에게는 딸의 차로 인명사고를 낸 자기 대신 감옥에 가달라고 무릎을 꿇고 읍소할 수 있는 것이리라.

 

 

선거를 앞두고 도로 한복판에 싱크홀이 발생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적당히 머리를 흩뜨리고, 넥타이도 느슨하게 풀고, 허겁지겁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연출해 보이는 변종구 시장이다. 이 와중에 초밥 도시락으로 거나하게 점심을 먹으려다가 기자가 들어오자 입에 넣으려던 초밥을 급히 뱉어내면서 도시락을 감추기도 하는 모습이 왠지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다. 지금도 정치판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하고 있을 게 분명할 것 같은 행위인 듯하기 때문이다.     

 

 

오직 권력에의 의지에만 맹목적으로 따르는 변종구 시장의 역할을 명품배우 최민식은 과장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잘 해내주었다. 평소 특별히 악의를 가지고 있다거나 악인이라고 불릴 만큼 잔인한 성품도 아니고, 오히려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는 변시장이지만, 자신이 나아가는 앞길을 막아서는 것에 한해서는 그것이 사람이든 사건이든 가차없이 뭉개버리는 이중성을 무리없이 보여주어서 역시 최민식이다 싶었다.

 

선거 공작의 일인자인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 역을 맡은 곽도원의 노련한 연기도 좋았고, 겁없이 선거판에 뛰어든 젊은 광고 전문가 박경 역을 맡은 심은경의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특히 지저분한 물에서도 청초한 꽃을 피워내는 연꽃과도 같이, 더러운 정치판의 세계에서도 결코 악에 물들지 않을 것 같은 맑고 똘망똘망한 심은경의 모습은 유난히 돋보였다. 

 

 

누가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칠지 몰라 늘 노심초사해야 하는 똥물 같은 정치판, 피비린내나는 그 속에서 그들이 온갖 노력을 다해 달려가 닿는 곳은 결국 감옥행이거나 죽음일 뿐이다. 늦든 빠르든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제고 배신을 당하게 마련인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늘 안타까운 것은 그런 사람들 밑에서 헌 구두짝처럼 마구잡이로 부려지다가 어느 순간, 어떤 이유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면 바로 버려지는 사람들이다. 대체 뭘 바라고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기어이 목숨까지 내놓는 상황을 견디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특별시민]에서는 참으로 신선하고 청량한 바람을 일으켜준 두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바로 심은경과 류혜영이다. 류혜영은 변종구 시장과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결투를 벌이는 양진주(라미란) 시장 쪽 캠프를 돕는 선거 전문가인데, 자신의 이상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자 양심이 시키는 대로 단호하게 선거판을 떠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최근 어느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선거판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악마 같은 갑들의 희생양 노릇을 하느라 고통스러워하는 많은 을들이 이 두 사람처럼만 의연하게 떨치고 일어나 자신부터 악의 고리를 끊어낸다면, 권력이니 갑질이니 하는 것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들었다.

 

이상, 특별시민 변종구(최민식) 시장의 아귀를 닮은 정치쇼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