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강타한 인형뽑기 열풍..왜 뽑냐고 물으신다면?
사무실 근처 교차로의 각 코너에는 인형뽑기집이 있다. 어느 날 한 집이 들어서더니, 얼마 안 돼 코너마다 하나씩 들어서서 총 네 집이 된 것이다. 인형뽑기라면 꽤 오래 전에 한두 번 해본 적이 있는데, 재미삼아 하려던 것이 쉽게 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게 만들어 그만뒀었다. 내 돈과 소중한 시간을 들이면서 스트레스 받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인형뽑기가 전국적으로 대유행이라고 한다. 실제로 눈여겨보니 인형뽑기집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지가 안 맞으면 많아지기는커녕 문닫는 집이 늘어날 테니 장사가 되긴 한다는 말인데, 마침 EBS [다큐시선]에서 인형뽑기 관련 방송을 하기에 그것을 바탕으로 [전국을 강타한 인형뽑기 열풍..왜 뽑냐고 물으신다면?]에 대해 알아보았다.
전국을 강타한 인형뽑기 열풍..왜 뽑냐고 물으신다면?
인형뽑기가 유행하면서 생겨난 신조어가 있다. 바로 '탕진잼'이다. 탕진잼은 '돈을 탕진하는 재미'를 줄인 말인데, 일상생활에서 돈을 낭비하듯 쓰며 소비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물론 진짜 재산을 탕진하는 것은 아니고, 인형뽑기가 최대의 사치인 가난한 청춘들의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탕진할 재산이랄 게 없는 것이 많은 청춘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탕진잼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로는 천원짜리가 가득한 생활용품점이 있다. 천원짜리라고 가볍게 여겼다가는 몇만 원을 탕진하기 일쑤인데, 국민대 사회학과 최항섭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탕진잼이란 전형적으로 현재에 모든 것을 다 거는 행동, 즉 미래를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청년세대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가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러한 배경에서 '탕진잼', '소소한 사치'라는 현상들이 나온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이 눈앞의 현실인 젊은이들이 그나마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방편인 셈이다. 그 때문인지 "나에게 인형뽑기는 철모르던 어린시절 인형 선물 하나만 받고도 행복했던 날의 기억"이라고 말하는 청춘도 있다.
전국의 인형뽑기방 현황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때로는 너무 아픈 청춘들의 탕진잼에 힙입어 2015년 12월 기준으로 불과 1년 3개월 만에 약 80배나 증가했다.
대체 누가, 왜 인형뽑기를 하는 것인지 서울 시내 한 인형뽑기방에 관찰카메라를 설치하고 살펴본 결과,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이용객은 약 150명이었다.
그리고 한 번 오면 1인당 평균 지출액은 약 6천원이었다.
가끔 어린아이와 아저씨들도 있었지만, 절반 이상이 20대였다.
인형뽑기를 해서 손에 넣은 인형을 힘겨운 일상을 보낸 자신에게 주는 조그만 선물로 여기는 젊은이도 있었다. 하루 식비 7,800원, 커피값 4,000원을 쓰면서 인형뽑기에 4천원, 즉 하루 지출 중 4분의 1을 투자해 무료한 일상에서 단비와 같은 쾌감을 느낄 수 있으니 그것으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취업이라는 시장이 나를 선택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입장이지만, 반대로 인형뽑기는 원하는 인형을 내가 뽑아서 가질 수 있는 그 선택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짜릿하게 다가오고, 그 때문에 여전히 인형뽑기에 몰입한다는 공시생도 있었다. 그들에게 인형뽑기는 가장 작지만 가잔 큰 탈출구일지도 모른다. 공무원 시험 합격률은 전체 응시생의 1.8퍼센트, 나머지 92.8퍼센트는 불합격이다. 될 수 있다는 희망은 고작 1.8퍼센트. 그런 공시생에게 인형뽑기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 셈이다.
큰 인형을 뽑느냐, 작은 인형을 뽑느냐, 즉 인형의 크기를 통한 비교도 해보았는데, 비교적 삶의 만족도가 높고 여유로운 젊은이들은 주로 큰 인형을 뽑은 반면, 삶의 만족도가 낮은 경우는 작은 인형을 뽑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상관관계에 대해 아주대학교 김경일 심리학 교수는 "불안은 작고 구체적인 것들을 계속 더 가져가게 만든다. 그래서 큰 것들을 못 보게 하는 가림막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가 지금 무언가에 몰두하고 열중하고 있다면, 사실은 내가 그걸 통해서 무슨 위안을 얻으려 하고, 그리고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지 역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어차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저축을 하거나 무엇을 하는 게 불가능해진 요즘, 지금 무언가를 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끼는 게 훨씬 인생에서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하는 청춘들이 늘고 있다. 어쩌면 "큰 행복과 작은 행복은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 모두 똑같은 행복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소한 것들이 모두 큰 행복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훨씬 실리적인지도 모르겠다.
취업도 인생도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 삶에서 인형을 뽑아올리는 아주 작은 성공에 기뻐하며 위안을 삼는 것을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은 돈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자칫 사행심을 조장하거나 중독으로 이어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청춘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이상, 전국을 강타한 인형뽑기 열풍..왜 뽑냐고 물으신다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