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면 불행을 피해갈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났는데도 금세 일어날 수가 없어서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구 헝클어진 실타래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혹은 복잡한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내내 계속되었다. 이상한 것은, 그 복잡미묘한 느낌이 그닥 나쁘지는 않아서, 굳이 빨리 빠져나오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천히 흐르는 물살에 편안하게 몸을 맡기듯, 선뜻 손에 잡히지 않았던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어서 파악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생각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러자 얼마 후 마치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사라지면서 선명한 실체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여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이안(제레미 레너)에게 한 말, "당신의 품이 이렇게 따뜻한 줄은 몰랐어요", 이 말이 영화 [컨택트]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컨택트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면 불행을 피해갈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랐다"거나 "그 사람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몰랐다"는 후회를 하곤 한다. 만일 그때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도록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생각도 하고 말이다. 물론 흐르는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이 과거는 과거일 뿐이어서, 뒤늦은 후회는 무의미하다. 그저 그런 생각에 잠기며 잠시나마 스스로를 위로해 보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떨까?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미리 내다볼 수 있다면, 그래서 만일 미래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두 알고 있어서 자신에게 닥칠 불행을 피해갈 수 있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불행을 불러오는 일은 아예 선택하지 않으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첫 SF [컨택트]는 이 가정을 보기 좋게 깨뜨리고 만다. 여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는 외계인이 보여주는 언어를 해독함으로써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게 된다.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데, 그 미래가 행복하기는커녕 불행의 연속임을 알게 된다. 외계의 언어를 해독하기 위해 그녀를 도우러 온 물리학자 이안이 바로 미래의 그녀 남편이고, 그와 함께하는 미래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미리 보고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안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다만, 이제는 상대의 언어를 알고 제대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당신의 품이 이렇게 따뜻한 줄은 몰랐어요"라는 엔딩멘트에서 느껴지듯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불행한 미래일망정 보다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요컨대 언어, 즉 말이라는 것, 그 말을 통해 상대와 소통하는 것, 그리고 소통을 통해 상대의 따뜻한 마음을 읽는 것, 이것이 과거든 현재든 또 미래든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알파이자 오메가일 만큼 삶의 모든 것이다--라는 것을 [컨택트]는 외계의 물체가 날아와 자신들의 언어를 <무기>가 아닌 <선물>로 주겠다는 설정을 통해 깨닫게 해준다.
비록 SF니 물리학이니 "언어는 그 사용자의 사고방식을 결정짓는다"는 사피어 워프의 가설 등 과학적 근거를 다방면으로 펼쳐보이고 있지만, 결국은 외계인이든, 다른 나라든 혹은 다른 사람이든, 상대의 언어를 모른다면 상대가 주고자 하는 것이 <선물>임에도 <무기>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고, 반대로 상대의 언어와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안다면 그와 함께 하는 한 겪을 수밖에 없는 불행도 기꺼이 선택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현실에서도 그 사람을 선택하면 앞날이 힘겨우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또는 그녀와 함께라면 어떤 불행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자신만만해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행 속에서도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테고 말이다. 삶에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하고, 행복과 불행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컨택트]의 전반적인 스토리를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정도로 소개하면, 어느 날 중국 상하이, 프랑스 파리 등 전 세계 열두 곳의 상공에 거대한 타원형 외계 비행물체(셸)가 나타난다. 거대한 비행물체 안 투명 벽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외계 생명체는 7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이 7개의 다리 끝에 달린 빨판에서 먹물을 뿜어내듯 공간에 검은 연기를 내뿜어 추상적인 기호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이안은 이 외계 생명체에게 헵타포드(Heptapod. 7개의 다리)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이들이 검은 연기로 만들어내는 문자는 원형을 기본으로 하되 의미에 따라 조금씩 둘레의 모양이 변한다. 이들은 의문의 신호를 보내고, 18시간마다 한 번씩 문을 열어 지구인을 비행물체 안으로 불러들여 그 의문의 신호를 알아내게 한다. 세계 각국은 그 신호를 해독하느라 비상이 걸리고, 미국은 언어학자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안에게 그 해독을 맡긴다.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12개의 셸과 외계 생명체는 과거 어느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형체를 갖고 있는데, 소행성 유노미아(Eunomia)의 형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진정한 소통의 의미와 삶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컨택트]는 내로라하는 SF작가로 일컬어지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아쉽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이 감성적인 면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원작의 창의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는 것이 중론이다. 조만간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이상, 컨택트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면 불행을 피해갈 수 있을까?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