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로 보는 세상

곡성 아니땐 굴뚝에 연기를 피우고 불을 지르는 의심의 불씨

 

곡성 아니땐 굴뚝에 연기를 피우고 불을 지르는 의심의 불씨 

 

 

장대비가 쏟아지고 강풍이 몰아치는 산길을 힘겹게 걷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 어스름이어서 시야도 좁아지고 발밑도 컴컴해서 행여 발이라도 헛디뎌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건 아닌가 싶어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무려 156분이라는 긴 시간을 나홍진 감독은 영화 [곡성]에서 절대 현혹되지 말라고 했음에도 기어이 덥석 미끼를 문 종구(곽도원)를 괴력의 힘으로 내달리게 한 것처럼 관객들도 그렇게 내달리도록 만들고 싶었던가 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싹뚝 칼로 자른 듯 영화가 끝났는데, 아무런 생각도 할 겨를 없이 종구와 함께 무작정 내달려온 탓인지 잠시 동안 말 그대로 <뻥찐>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영화관을 나서면서야 어느덧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주변 풍경이 들어오듯 참으로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곡성]이 던진 메시지가 하나씩 둘씩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안개가 걷히듯 감독이 영화 곳곳에 관객들을 마치 보물찾기라도 시키려는 눈에 안 띄도록 메시지를 숨겨놓은 것을 알 수 있었고, 심지어는 훼이크(속임수)까지 더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바람에 대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어서는 안 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혼돈과 미혹 속을 헤매게 만들었다는 것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의심하는 마음이 키운 불신의 늪

 

곡성 아니땐 굴뚝에 연기를 피우고 불을 지르는 의심의 불씨

 

아무런 걱정 없이 단란한 한때를 즐기고 있던 종구 부녀에게 닥친 일도 애초에는 쌀알만한 의심이 불러온 화마(火魔)였다. 처음엔 "설마~~" 하고 믿지 않았던 것이 "그런겨~~?" 하고 긴가민가하게 되고, "아무래도 그런 것 같어~~" 하고 슬그머니 미끼 옆으로 바짝 달라붙더니 결국 "맞어! 그게 틀림없어!!" 하고 미끼를 덥석 물어버리자, 마치 그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의심의 불씨는 아니땐 굴뚝에 연기를 피우고 불을 질러 종구 자신과 딸 효진(김환희)은 물론 아내(장소연)과 장모(허진) 등 온 가족을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으로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무작위로 던져진 미끼를 물어버린 대가라고만 치부하기엔 그 결과가 너무 섬뜩하고 처참했다.

 

 무작위로 던져진 미끼를 문 종구   

 

 

스포의 염려가 있으니,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정도로만 스토리를 소개하자면, 낯선 외지인 쿠니무라 준이 나타난 후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사건들로 곡성이 발칵 뒤집힌다. 경찰은 집단 야생버섯 중독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리지만, 이 사건의 원인은 바로 그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과 의심은 들불처럼 마을 속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경찰인 종구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인 무명(천우희)을 만나면서 외지인에 대한 소문을 확신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딸이 다른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으로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하자 오직 자신의 딸을 구하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종구는 외지인을 찾아가 난동을 부리고 무속인 일광(황정민)을 불러들여 굿판을 벌인다.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혹은 심심풀이 땅콩처럼 심드렁하게 씹어대던 사람들이 정작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어떤 극단적인 모습으로 치달릴 수 있는지 종구는 잘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왜 하필이면 내 딸이여--!" 하는 데서 피어난 분노는 애꿎은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도 서슴지 않게 만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 의심이라는 악마의 속삭임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 종구는 악마 곁에서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천사의 말은 더 이상 듣지 못한다. 왜 그는 자신을 향해 던져지는 하고 많은 말들 중에서 악마의 소리만 고르고 골라서 듣는 어리석은 길을 택한 것일까? 물론 그 잘못은 다른 누구도 아닌 종구의 그릇된 선택에 있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행태로 볼 때 종구가 아닌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와 유사한 선택을 하리라는 건 불보듯 뻔하다.

 

 현혹되지 말라고 하면 더 현혹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일까?  

 

 

몇 년 전 [시크릿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책이 꽤 오래도록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던 적이 있다. 책의 주제는 외부세계든 내면의 세계든 간절히 원하면 끌어당김의 법칙에 따라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떻게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거냐며 허무맹랑한 소리일 뿐이라는 반대의견도 팽팽했다. 하지만 그만큼 간절히 원하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이면 뭔가 이룰 확률이 높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이 여차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어서 아이가 깔린 트럭을 번쩍 들어올린 어머니가 있다는 뉴스도 듣게 되곤 하지 않던가.

 

그런데 문제는 이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부정적인 힘을 더욱 키우는 데에도 작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긍정적인 것을 원하는 경우에는 아무 문제 될 게 없지만, 부정적인 것을 원하게 되면 자석처럼 부정적인 것만 끌어당겨서 파멸의 길로 치달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저주라는 말도 그래서 생긴 것이고 주술도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쌓아올려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이다. 의심이라는 미끼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의심의 불씨부터 먼저 품는 것은 천사의 말과 악마의 속삭임 중 악마의 속삭임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당겨 불러들이는 통로를 열어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끼를 문 순간 더욱 커져 가는 악마의 힘 

 

 

<두 늑대 이야기>도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우화다. 지혜롭고 인자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애야, 사람 안에는 늑대가 두 마리가 살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악한 놈이지. 화를 잘 내고 늘 싸우기를 좋아하며 용서할 줄 모르는 못된 놈이란다. 또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늑대인데, 이 녀석은 아주 친절하고 사랑스럽단다. 이 두 마리 늑대는 네 안에도 있단다” 하고 말한다. 그러자 깜짝 놀란 손자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할아버지, 그럼 내 안에 있는 늑대 두 마리가 싸우면 어떤 늑대가 이겨요?”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따뜻하게 미소지으며 “그야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지”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천사의 속삭임과 악마의 속삭임, 믿음과 불신 혹은 의심... 이렇게 두 가지 문제를 놓고 늘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 우리 삶 속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오로지 우리 자신의 문제다. 즉 어떤 놈에게 먹이를 주고 어떤 미끼를 무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꽃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가시밭길을 걸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종구도 악마의 속삭임에 혹해 굿판을 벌일 게 아니라 야생 독버섯으로 인한 중독임을 믿고 신부님 말씀처럼 의사에게 딸을 데려가 치료를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두 가지 길 중 악마의 속삭임을 끌어당긴 바람에 그 힘에 휘둘리고 만 것이다.

 

 

외지인 역할을 맡은 일본의 명배우 쿠니무라 준이다. 마지막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굵직한 존재감과 연기력을 보여준 사람으로, 곽도원만큼이나 온몸에서 뿜어나오는 강렬한 괴력을 보여주었다. 도무지 그 속내를 알 길 없었던 눈빛과 표정연기 또한 몰입도를 최대한 끌어올려준 요인이었다. 

 

저 선악을 가늠할 길 없는 신비스러운 눈빛을 보고 있노라니 파스칼이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파스칼의 말인즉슨,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하나 마나로 고민할 게 뭐 있느냐는 것이다. 악마가 아닌 신을 믿으면 정말로 신이 존재했을 경우 그 믿음에 대한 보답을 받을 수 있게 될 테고, 혹여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현세의 삶에서 악마가 던지는 미끼를 덥석 무는 불행은 피해갈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어리석고 밑지는 장사를 하느냐는 일갈이다. 악마의 유혹을 멀리하는 삶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꽃은 해골 모양으로 시든다는 ‘금어초’로 죽음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쓰인 듯한데,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밖에도 영화 [곡성]은 촬영시간부터 날씨, 미술과 소품 하나하나까지 리얼리티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가옥의 형태부터 나무의 생김과 굴곡 하나까지 꼼꼼히 살펴 최적의 장소를 선별했고 주요 공간인 종구의 집은 전국 각지의 한옥들을 샅샅이 찾는 노력 끝에 대문의 위치와 형태까지 완벽하게 영화에 부합한 장소를 찾아냈다고 한다. 또한 외지인의 은신처는[곡성]만의 분위기와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 해발 4백 미터 높이에 있는 산속 폐가를 재정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제69회 칸 영화제 공식 섹션인 비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고 하니, 감독과 배우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멋진 성과일 것이다. 모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였다.

 

이상, 곡성 아니땐 굴뚝에 연기를 피우고 불을 지르는 의심의 불씨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