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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탐정 홍길동 말순 자매가 끊게 해준 이제훈의 복수의 고리

 

탐정 홍길동 말순 자매가 끊게 해준 이제훈의 복수의 고리 

 

탐정 홍길동 말순 자매가 끊게 해준 이제훈의 복수의 고리

 

유난히 행사가 많은 5월이지만, 그 중에서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빼놓을 수가 없다. 얇아지는 지갑 때문에 걱정도 앞서지만,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사람들도 이 날만큼은 선물을 하거나, 함께 식사를 하거나, 나들이를 떠나는 등 나름대로 가족을 챙긴다. 사실 매일매일을 어린이날, 어버이날로 여기고 산다면 새삼 그런 날들을 따로 만들 필요가 뭐 있겠느냐는 말들도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부랴부랴 이 날만 잘 챙겨도 나쁜 부모, 못된 자식 소리는 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로지 돈으로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세태 탓인지 "피는 물보다 진하다"던 짙은 가족애가 점점 더 바닥을 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하필이면 어버이날에 자식들이 휘두른 흉기에 늙은 아버지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더욱이 존속살해로 검거된 40대 남매는 아버지를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스스로 얼굴을 공개하겠다고 나서서 경찰을 당혹케 만들었다고 하니, 그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그 동안 그 가족에게 어떤 끔찍한 일들이 있었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 것 같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의 말처럼 이제 우리에겐 정말로 "가족은 누가 보지 않으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가 되고 만 것일까?

 

탐정 홍길동 말순 자매가 끊게 해준 이제훈의 복수의 고리

 

영화 리뷰를 하면서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게 된 것은, 액션스릴러를 표방한 이제훈 주연의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조성희 감독)이 그 내면에서는 '사라진 마을'처럼 안타깝게도 <사라져 가고 있는 가족애>를 짙게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권상우 성동일의 [탐정 더 비기닝]이나 임창정과 최다니엘의 [치외법권]과 흡사하지 않을까 싶었고, 두 영화 다 주연배우들만 믿고 갔다가 실망했던 터여서 솔직히 [탐정 홍길동]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셜록 홈즈를 그럴싸하게 모방한 불법흥신소 활빈당의 우두머리 홍길동(이제훈)은 겁도 없고, 정도 없고, 기억도 친구도 없는 무자비한 악당으로, 잃어버린 20년 전 기억 속에서 어머니를 죽인 원수를 찾아 복수하러 나섰다가 거대조직 광은회의 음모에 말려들게 된다. 아직은 아무리 악역을 맡았어도 설마~~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제훈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나쁜 놈 위에서 노는 새로운 놈>다운 역할의 묘미를 제대로 살려주고 있다. '‘홍길동’은 조선 시대 불합리한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진취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정의구현을 위해서는 옳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홍길동’이라는 캐릭터를 현대로 가져와 멋지게 조합해 그려보고 싶었다”는 조성희 감독의 소망이  잘 받아들여진 것이다.

 

 

동이 자매, 아니 말순 자매다. 동이(노정의)가 언니이고 말순(김하나)이 동생이니 통념상 동이 자매라고 부르는 게 옳겠지만, [탐정 홍길동]에서만큼은 이 통념을 깨고 동생 말순을 앞세워 말순 자매라고 부르고 싶다. 그만큼 저 꾀죄죄한 얼굴에 가당치 않을 만큼(?) 당돌한 말을 거침없이 툭툭 내뱉는 말순의 역할이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아이치고 걸쭉하게(?) 느껴지는 쉰 듯한 목소리도 듣는 내내 웃음짓게 만드는 재미를 주었다.

 

처음엔 그리 중요할 듯싶지 않은 동이와 말순 자매의 활약이 마치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돌고, 특히 말순이 눈치코치도 없이 아무때나 툭툭 끼어드는 바람에 탐정 홍길동을 난처하게 만들거나 아슬아슬하게 일을 망치곤 해서 왕짜증(?)을 유발했는데, 영화가 끝나갈수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말순이만 같아라"는 찬사를 보내고 싶어질 만큼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아이들만 보면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 것 같았다”는 이제훈의 말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하지만 [탐정 홍길동]에서 이제훈을 위해 이 말순 자매가 해낸 더 중요한 일은, 어린시절 눈앞에서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본 후 무정하게 메말라버린 가슴에 인간의 정을 느끼게 해주고, 가족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고, 나아가 꼬리에 꼬리를 물 수도 있었을 복수의 고리를 끊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홍길동이 복수의 염을 불태우며 20년을 찾아 헤맨 김병덕이 말순 자매의 할아버지이고, 김병덕이 홍길동의 어머니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직 피붙이를 위한 뼈아픈 선택이었음을 그 자신도 그 처지에 놓임으로써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처음엔 골치아픈 껌딱지로만 여겼다가 어느덧 자신을 향한 말순 자매의 맹목적인 믿음과 어린아이다운 사랑에 시나브로 젖어들어간 홍길동은 결국 과감하게 복수의 고리를 끊어낸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용해 광신을 강요하면서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는 거대조직 광은회에 가슴 밑바닥을 흐르는 가족애로 대항하여 승리를 거둔 것이다.  

 

 

장르와 시대를 규정하기 어려운 [탐정 홍길동]의 또 다른 볼거리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을 연상케 하는 도시의 모습이다. 외국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이국적인 색채가 느껴지고, 새벽이나 심야에도 밝은 빛이며 극적인 공간부터 따뜻한 감성의 공간, 딱딱하고 차가운 공간 등 독특한 영상미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해주는 큰 요소였다.

 

 

“관객들에게 새로운 구경거리가 될 수 있도록 조명부터 카메라 앵글, 워킹, 미술까지 연출에 있어 모든 것들을 달리 표현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리얼리티 위주의 연출보다는 표현주의적으로 연출했다”는 조성희 감독의 말처럼 기존의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효과들을 과감하게 활용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보통 촬영이 불가능한 장면들에 CG를 처리하는 여느 영화와 달리 홍길동이 자동차를 몰고 가는 장면의 배경, 차량 등을 CG로 재구성해 시각적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 냈으며, 영화 속 장소들도 모두 우리나라 지역들이지만 관객들을 새로운 영화적 공간으로 안내하기 위해 일부러 익명의 도시와 장소로 표현했다고 한다. 

 

 

"더 중요한 사람을 위해 덜 중요한 사람은 죽어도 좋지 않겠느냐"는 광은회 수장 강성일(김성균)에게 "이 세상엔 덜 중요한 사람은 없지만, 없어도 되는 사람은 있다"며 총을 겨누는 홍길동이다. 대체 무엇으로 <더 중요한 사람>과 <덜 중요한 사람>으로 구분하는 잣대를 삼는지 의문이지만, 적어도 가족에겐 결코 덜 중요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순 자매 덕분에 알게 된 홍길동은 복수의 악순환을 멈춘다. 어느덧 "친구끼리는 원래 나눠 먹고 그러는건데... 몰랐구나" 하며 말순에게서 받은 캬라멜 세 개를 하나씩 나눠 먹을 줄도 아는 홍길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 김성균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응팔]의 소심쟁이 아빠 김성균과 도무지 매칭이 안 되었다. 왠지 덩치도 더 커지고 키까지 커진 느낌이어서 새삼 김성균의 연기력을 실감했다고나 할까.)

 

이상, 탐정 홍길동 말순 자매가 끊게 해준 이제훈의 복수의 고리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