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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시간이탈자 망각의 강 레테도 뛰어넘은 조정석의 절절한 사랑

 

시간이탈자 망각의 강 레테도 뛰어넘은 조정석의 절절한 사랑

 

 

"다시 태어나도 너만을 사랑할 거야." 이 말은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번쯤 해봤음직한 말이다. 혹 무덤덤한 성격이거나 오글거리는 멘트는 아예 입에 담지 못하는 타입이어서 입밖으로는 내뱉은 적 없더라도 마음속으로는 분명 해봤을 것이다. 만일 그런 말을 직접 해본 적도 없고 또 마음속으로나마 해본 적 없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리라. 다시 태어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거니와, 설령 다시 태어난다 한들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다는 보장도 전혀 없지만, 적어도 상대를 사랑한다면 "다시 태어나도 너만을 사랑하겠다"는 말을 진심을 담아 할 수 있을 정도의 콩깍지쯤은 씌워줘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야만 수많은 동화의 말미에 나오는 "그 후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글귀가 사실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이며, 그리하여 그 후 보기 좋게 박살이 난 사랑의 상처에 연신 반창고를 붙여가며 사는 것이 사랑의 끝인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랑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런 눈먼 사랑을 해본 사람과 못 해본 사람의 삶은 그 깊이에서도 북극과 열대만큼이나 차이가 있을 게 분명하다.

 

시간이탈자 망각의 강 레테도 뛰어넘은 조정석의 절절한 사랑

 

영화 [시간이탈자]의 지환(조정석)과 윤정(임수정)도 그런 사랑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큰 사랑의 기쁨과 행복 속에서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인해 "우리 다시 태어나게 되도 서로 사랑하게 될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윤정은 죽으면 건너게 될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을 운운하며 다시 태어나도 지환이 자신을 금세 알아볼 수 있도록 <지금과 꼭 닮은 모습으로 태어나겠다>고 공언(?)을 한다. 

 

[비오는 날 수채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등 감성멜로의 제왕으로 불리는 곽재용 감독이 처음 스릴러에 도전한 감성추적 스릴러 [시간이탈자]는 임수정의 바로 이 말, 즉 사랑하는 사람과 원치 않은 이별을 하게 되더라도 서로 알아볼 수 있도록 <지금과 꼭 닮은 모습으로 태어나겠다>는 이 짧은 말 한마디를 모티브로 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발명해 냈다고는 해도 여전히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로 <쉼없이 흐르는 시간을 되돌리는 일>과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임사체험이니 전생을 논하고 윤회를 언급하긴 해도 그리스 신화대로라면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는 순간 과거의 기억은 깨끗이 잊어버린다고 하니, 혹여 다시 태어난다 한들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이 두 가지 일을 [시간이탈자]는 동시에 해낸다. <다시 태어나고 시간을 되돌려서> 불의의 사고로 인해 지키지 못했던 사랑한 여인의 목숨을 기어이 지켜내기 위해서다. 

 

스포의 염려가 있으니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줄거리 정도로 소개한다면, 30여 년 전인 1983년을 살고 있는 고등학교 교사 지환 조정석과 2015년을 살고 있는 강력계 형사 건우 이진욱은 각각 1983년과 2015년 1월 1일 우연한 사고를 겪게 되고, 이때부터 꿈속에서 서로의 일상을 보기 시작한다. 정확한 이유도 알 수 없고, 꿈에서 보이는 남자가 누구인지도 미처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가 자신과 30여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그러던 중 2015년의 남자 건우는 1980년대에 벌어진 미제 살인사건을 조사하다가 꿈에서 본 지환의 약혼녀 윤정이 살해되었다는 기록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지환 역시 건우를 통해 약혼녀 윤정의 죽음을 미리 알게 된다. 그때부터 두 남자는 윤정을 살리기 위해 30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해 함께 힘을 모아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뜻밖의 사고를 당한 날부터 꿈속에서 2015년을 사는 한 남자의 일상을 보게 되는 1983년의 남자 지환 역을 맡은 조정석이다. 따뜻한 성격의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결혼을 약속한 윤정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꿈을 통해 윤정의 예정된 죽음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그는 그 절절한 사랑을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고전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다. 약혼녀의 손에 끼워주었던 반지를 손에 든 채 애틋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입에서는 죽음이 윤정과 자신을 갈라놓은다 한들 목숨을 건 내 사랑은 몇십 년이 흘러도 변치 않을 거라는 말이 금세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지환의 약혼녀이자 같은 학교 화학교사인 1983년의 윤정, 그리고 30년 후 우연한 기회에 건우와 마주치는 윤정과 놀라울 정도로 닮은 2015년의 소은 역을 맡은 임수정과 2015년의 남자로 강력계 형사 진우 역을 맡은 이진욱이다. 

 

[시간이탈자]의 두 남자가 긴박한 추적을 벌이는 이유이자 목표가 되는 윤정과 소은의 1인 2역을 맡은 임수정은 30여 년이 흐른 뒤에 봐도 지금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은 앳된 미모로 같은 듯 다른 두 여인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잘 소화해 주고 있다. 수시로 꿈속에 나타나는 지환 때문에 1983년도에 관심을 갖고 그해 미제 살인사건의 피해자들 중 한 명이 지환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를 막기 위해 적극 사건에 뛰어드는 이진욱 또한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함을 가진 형사로 열연을 펼친다. 

 

 

스태프들이 “마치 두 편의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30년 전의 과거와 2015년의 현재를 오가는 두 개의 사랑 이야기는 러닝타임 107분이 좀 짧았던 듯 좀 산만하고 부산스러웠던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마치 하얀 도화지 한 장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마주앉은 두 사람이 저마다 다른 빛깔의 크레파스를 들고 "시작!" 하는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구 색칠을 해나가는 것 같았다. 도화지에 누가 더 많이 자신의 색깔을 칠하는지 경주라도 벌이듯 폭주를 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 때문에 목적지에 닿기까지 오로지 도착하는 것만 생각할 뿐, 과정을 즐기는 데서 느껴지는 묘미와 여유로움이 없었던 것이 좀 아쉬웠다. 게다가 뭔가 굉장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암시를 하던 화재사건과 살인사건의 동기가 그렇듯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기엔 너무도 미약해서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30년 전, 지환은 꿈속에서 만난 건우가 보여준 지금의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다들 전화기를 손에 들고 다닌다고 하자 그 무거운 것을 왜 들고 다니냐며 깔깔 웃고, 그 전화기로 음악도 듣고 계산도 하고, 심지어 드라마나 영화도 볼 수 있다고 하자 하나같이 "에~~이" 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불과 몇십 년 만에 인류는 놀라운 발전과 성장을 이뤄냈다. 과거라면 몇백 년이 흘러도 이루지 못할 일을 겨우 몇십 년만에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그 놀라운 문명의 발전과 성장이 우리의 생활은 더 편리하게 해주었을망정 마음까지 그만큼 더 행복하게 해주었을까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족하면 영혼과 정신도 그에 보조를 맞추어 풍요로워지리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인간관계는 오히려 더 삭막해지고 연인들이나 부부간의 사랑은 더 계산적이 되어가고 있으며 천륜은 끊을 수 없다는 부모자식간의 사랑조차도 요즘은 점점 그 힘이 약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눈앞에서 죽어간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막을 수만 있다면 하는 간절함에 지환은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갔으면서도 미래의 이진욱을 향해 윤정을 죽음으로부터 지켜줄 것을 호소하고, 현재의 건우 또한 목숨을 걸고 그 여인을 죽음에서 지켜내고자 하는 이 두 남자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쫓고 쫓기는 추격적이 벌어지고, 살인이 저질러지고, 피가 낭자한 스릴러의 옷을 입고 있어도 우리의 메마르고 황폐해진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 즉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의 힘과 타임머신에 올라 따스한 마음으로 추억하고 싶은 과거로의 회귀, 이것이 시간을 이탈해 가면서까지 조정석, 이진욱이라는 두 남자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게 만든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이상, 시간이탈자 망각의 강 레테도 뛰어넘은 조정석의 절절한 사랑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