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예원 이상윤의 [날, 보러와요] 합법과 불법 사이의 줄타기
영화 [날, 보러와요]는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여주인공 강수아(강예원)가 느닷없이 납치를 당해 정신병원으로 강제이송되고 감금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강예원이 납치되기 전에 걷던 거리가 눈에 익은 걸 보면 아마도 여의도이지 싶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도 캄캄한 밤도 아니고, 행인들이 별로 없는 한적한 거리도 아니다. 엄연히 해가 환한 백주 대낮이고, 주변은 빌딩이 즐비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건만 그녀는 후다닥 달려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눈깜짝할 사이에 납치되어 차에 실린다.
강예원 이상윤의 [날, 보러와요] 합법과 불법 사이의 줄타기
쉴새없이 이곳저곳을 헤매는 공포어린 눈동자만으로도 강예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를 잘 표현해 주고 있어서 그 얼굴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영화 속 그녀가 되어 끌려가고 구타를 당하고 도망가고 다시 잡혀오고, 결국에는 장기까지 내놓아야 하는 수술대에 오르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누가 멀쩡한 그녀를 이곳으로 보낸 것일까? 왜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정신병동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일까? 그녀가 느닷없이 겪고 있는 저 일을 어디선가 또 다른 누군가가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 또 다른 누군가가 나는 아닐까? 어떻게 나는 감히 예외일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쉴새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렇게 영화는 강예원이 겪고 있는 저 두렵고 끔찍한 일이 바로 당신에게도 예외없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끊임없이 암시하고 있다.
정신병동에 감금된 지 1년 뒤 강예원이 보낸 수첩을 받아보게 된 시사프로 [추적24시]의 나남수 PD 역을 맡은 이상윤이다. 수첩 속에는 그녀가 정신병원에 끌려가 화재사건이 일어나기까지 겪어야 했던 가공스러운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나PD는 이 수첩에 적혀 있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자 탐문을 시작하고 결국 강예원을 찾아낸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용의자로 수감돼 있었다. 그 의붓아버지가 바로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보낸 당사자다.
이상윤은 좋아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인데, 그 동안 그가 드라마에서 보여준 바른생활 젊은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사건을 해결해 보겠다는 집념도 엿보이지 않고 시사프로를 다루는 PD다운 냉철한 면모도 갖추지 못한 캐릭터를 선보여 아쉬웠다. 그렇다면 차라리 좀 어리버리하더라도 오지랖이 넓어서 여기저기 마구 쑤시고 다니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으련만, 이도저도 아니어서 계속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좀 유아틱한 발음 때문인지 극에 치달은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 장면에서도 분노가 아니라 짜증을 내는 것 같아 감정이입이 잘 안 되었다. 다만, 이상윤이 보여주는 이미지대로라면 강예원이 처한 상황을 마치 자신이나 자기 누이의 일처럼 여기고 기어이 해결해 보겠다는 진정성이 느껴졌으니 미스 캐스팅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듯하다.
강예원이 감금돼 있던 정신병원이다. 이런 정신병원에는 보호자 2명과 정신과 전문의 1명의 동의만 있으면 정상인도 정신병자로 만들어 합법적으로 납치하고 감금할 수 있다고 하니, 놀랍다. 반전이 있는 영화여서 스토리를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철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타의(他意)에 의한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허용하는 ‘정신보건법 제24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의 법적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홈피에 올라 있는 자료를 소개해 보면, 2013년 서울정신보건지표 자료에 따르면 사설정신병원에 입원한 국내 정신질환자의 73.5%는 자의가 아닌 강제입원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또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다뤄 화제가 되었듯 정신질환자의 다수가 가족간 분쟁에 휘말리거나 가족 구성원 중 일부의 잘못된 판단 등으로 인신구속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설 정신병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부가 환자의 입원비를 보조하는 현실에서 일부 사설 정신병원의 경우 환자의 장기입원을 통해서만 수익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한다. 여기에 유독 우리나라만이 강제입원 후 6개월이 지나서야 퇴원 여부를 가리는 입원심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내 정신질환자들의 평균 입원기간이 247일이라고 한다. 스페인(18일), 독일(24.2일), 이탈리아(13.4일), 프랑스(35.7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을 입원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 [날, 보러와요] 또한 보호자와 병원, 이송업체간 수익창출을 위한 납치, 강제감금이 정신보건법상 합법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강예원이 감금된 곳은 사설 기관으로 필요에 따라 살인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거기가 끝이 아니다. 환자가 병으로 죽거나, 반항을 하다가 죽거나, 도망치다가 죽거나..하면 장기밀매까지 한다. 심지어는 장기가 필요하면 죽일 대상을 솎아내기까지 한다. 물론 여느 정신병원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실제로 그런 곳이 엄연히 존재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원에 끌려가 장기밀매까지 당하는 현실을 동물의 세계가 아니고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약육강식 정글의 세계에서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내 몸은 오로지 내가 지켜야 한다.
북유럽스타일의 고품격 추리문학임을 표방하는 헤닝 만켈의 발란더 시리즈는 세계적인 복지국가 스웨덴의 이면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들을 주로 파헤쳐 보여주고 있는데, 이 중 [미소지은 남자]는 장기밀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미소지은 남자'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전 세계를 무대로 장기밀매를 행하고 있는 악의 화신이면서도 외부적으로는 명망있는 선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강예원을 감금한 정신병원의 장원장 역을 맡은 최진호, 이 사람 또한 일명 '미소지은 남자'로 볼리기에 손색이 없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면서 허투루나마 미소 한 자락 지어보인 적이 없지만, 내게 <미소지은 남자>란 겉으로는 선한 척하면서 뒤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분은 요즘 TV 드라마 [미세스캅2]에서도 섬뜩한 살인마 김범 곁을 지키는 냉혈한 백종식 역을 맡고 있는데, 말 그대로 이마빼기를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 살인병기를 연상케 한다. 연기를 얼마나 실감나게 잘하는지, 앞으로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선한 역이나 평범한 역을 맡아 하더라도 [미세스캅2]의 백종식이나 [날, 보러 와요]의 장원장 모습이 오버랩될 것만 같다.
평소에는 사람은 본디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맹자의 성선설을 믿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저런 장원장 같은 인간을 접하게 되면 성악설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이런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악마성을 타고나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저런 악독한 짓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모르면 몰라도, 저런 정도의 악독함이라면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한들 선한 성품을 갖게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 말도 저런 사람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풀어나가야 할까. 그런데 어제(4월 14일) 마침 정신보건법상 보호의무자에 의한 강제입원 조항 위헌심판 공개 변론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이 <인권침해>냐 <적시치료 인권보호>냐를 따져보기 위한 공개변론이었다고 하는데, 자신의 질병을 부정하는 정신질환자들의 적시치료를 위해 보호자와 전문가 등의 동의를 통한 강제입원 조항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정신질환자가 아님에도 해당 법조항이 입원요건을 완화하고 있는 점 등을 악용한 불법구금 등이 이루어지는 등 인권침해 소지가 있어서 위헌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고 한다.
실제로 자녀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된 어느 사람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미한 정도의 갱년기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뿐 정신의료기관에서 입원 등 치료를 받을 만한 정도의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단지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반해 강제입원당했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바 있으며, 헌재는 공개변론 내용을 참고해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 조항의 위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정신병원의 합법을 가장한 강제입원 문제와 짙은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장기밀매 문제까지 다룬 영화 [날, 보러와요]가 시사고발성 영화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이런 일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여느사람들은 짚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이기에, 영화를 통해서나마 이렇게 이슈화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게 해주는 것은 영화의 순기능 중 하나일 것이다. 아, 그리고 영화 제목이 [날 보러와요]가 아니라 [날, 보러와요]인 것에 이 영화의 반전이 있다는 말을 빼놓아서는 안 될 것 같다. 또 여주인공 강예원 역시 합법을 가장한 불법을 저질렀다는 것도 빠뜨리면 안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이상, 강예원 이상윤의 [날, 보러와요] 합법과 불법 사이의 줄타기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