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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대배우 오달수 만만함과 절실함, 내공의 힘이 빚어낸 걸작

 

대배우 오달수 만만함과 절실함, 내공의 힘이 빚어낸 걸작

 

 

차라리 천만요정이라는 애칭에 1억 배우로 등극한 오달수의 다큐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오달수라는 배우를 보기 위해 석민우 감독의 영화 [대배우]를 관람하러 간 것이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오달수에 관한 이야기만 주저리주저리 잔뜩 늘어놔도 다 들어줄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배우 오달수의 자전적 스토리를 다루었다고 하면서 공연히 장성필이라는 극중 배우를 내세운 바람에 픽션인지 다큐인지 좀 어정쩡해서 몰입을 방해한 것이 아쉬웠다. 또 무엇보다도 결말부분에서 장성필 자신이 아닌 아들 원석(고우림)이 아빠의 눈물어린 오랜 염원을 대신 이뤄낸다는 전개는 더욱 아쉬운 감이 있었다. 작은 단역으로라도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스스로 자기 다리를 다치게 하는 고통까지 참아낸 고진감래의 기쁨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자신이 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늘 조연으로만 출연해 스크린 한귀퉁이를 장식해 왔던 오달수가 감격스럽게도 첫 주연배우로 출연하기까지의 과정을 내 마음대로 짚어보는 것으로 영화 대배우의 후기 오달수 만만함과 절실함, 내공의 힘이 빚어낸 걸작을 작성해 보았다. 

 

 만만한 오달수

 

대배우 오달수 만만함과 절실함, 내공의 힘이 빚어낸 걸작

 

누군가의 입에서 "내가 만만해 보여?"라는 말이 나오면 일단 도전장을 내민 거라고 봐도 좋다. 그리고 그 말에 "아니, 만만해 보이긴. 절대 그렇지 않아"라고 대답하면 분노해 내밀었던 도전장을 슬쩍 거둬들이겠지만, "그래, 만만하다, 어쩔래" 하고 대답한다면 상대가 내민 도전장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전격 결투로 들어간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할 것 없이 <만만해 보인다는 것>, 이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법>이니 하는 팁도 기를 쓰고 배울 정도다. 

 

그런데 배우 오달수는 만만해 보인다. 그것도 그저 만만해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만만해 보인다. 다만, 오달수의 <만만해 보임>은 위의 <만만함>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만만하다>라는 형용사에는 "대하거나 다루기 쉬울 만큼 호락호락하다"라는 뜻 말고도 "자신이나 여유가 넘칠 만큼 넉넉하다"라는 또 한 가지 뜻이 있는데, 언제나 싱글벙글 즐거워보이는 낙천성과 긍정의 화신 같은 모습의 오달수는 당연히 두번째 뜻에 해당하는 <만만함>이다. 사면초가 궁지에 몰려 있을 때라도 저 이미지 속 장성필처럼 만화방에 앉아 만화책을 읽으며 하하호호 박장대소할 수 있을 만큼 늘 자신감을 잃지 않고 넉넉한 여유로움으로 세상에 맞서나온 것이다. 

 

이런 오달수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염이 되어 그와 함께 있다 보면 어떤 어려운 일도 금세 다 해결되고 말 것 같은 착각에 빠질 것 같다. 실제로도 그는 누가 부르든 언제든지 달려가고, 어떤 배역을 시키든 마다 않고 다 해내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사람이어서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부담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연극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파트라슈 역할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그가 그야말로 <만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만함>은 오달수가 첫째로 손꼽는 자신의 가장 훌륭한 무기다.   

 

 절실한 오달수 

 

 

하지만 오달수가 아무리 만만함으로 무장한 긍정의 화신이라 해도 무작정 속도 없이 "오! 즐거운 인생!"을 노래하며 사는 건 아니다. 심리학자이자 성공학 강사인 데니스 웨이틀리는 "비관론자들은 모든 기회에 숨어 있는 문제를 보고, 낙관론자들은 모든 문제에 감추어져 있는 기회를 본다"고 말했듯이, 해결 불가능한 문젯거리로 골치를 썩이기보다는 즐겁게 살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찾는 것뿐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 이 순간도 앞뒤로 꽉꽉 막힌 상황이고, 앞으로도 별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오달수의 삶은 그래서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인생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라면 누구 못지않게 잘할 자신이 있는데도 연기생활 20년이 넘도록 주변인물로만 맴돌아오면서 <절실함>으로 똘똘 뭉친 오달수, 하지만 연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질 것 같지 않은데도 성공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료나 선후배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만 봐야 하는 아픈 삶을 견디게 해준 것 또한 이 <절실함>이다. 성공한다 해도 <오직 연기로써> 거둔 성공이어야만 행복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기에 밥 한 끼 넉넉히 사지 못하는 가난도 견디고, 가족들도 잘 건사하지 못하는 못난 남편, 못난 아빠라는 타이틀도 꿀꺽 감수하고 버텨온 오달수다.

 

흔히 시련이 클수록 그 꽃은 더 화려하고 그 열매는 더 달콤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이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치부될 만큼 시련을 이기지 못해 결국 좌절에 빠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오달수에 관한 한 이 말은 그저 달콤한 사탕발림만은 아닌 듯하다. 아무리 큰 시련이 닥쳐도 절대 맞서지 않고 옆으로 슬쩍 피해다니는 수법(?)으로 견뎌나온 그에겐 시련도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가 없는 것일까? 덕분에 <절실함>을 인생의 두번째 큰 무기로 삼고 있는 그에게 시련은 삶의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 역할을 해줄 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 절실함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일만 남은 것 같다.   

 

 만만함과 절실함이 켜켜이 쌓인 내공의 힘 

 

 

결국 <만만함>을 날실로, <절실함>을 씨실로 하여 켜켜이 쌓아올린 내공의 힘은 오달수만이 가진 <오달수표 영화 인생>이라는 걸작을 빚어냈다.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누적관객수 1억 배우라는 독보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영화 역사상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는 모두 13편인데, 이 중 오달수가 출연한 영화는 무려 7편이다. [괴물]에서는 ‘괴물’의 목소리를 연기해 천만 관객을 기록했으며 [도둑들], [7번방의 선물], [변호인]으로 ‘천만 요정’이라는 애칭을 얻었으며, 이어서 [국제시장], [암살], [베테랑]으로 연달아 천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1억 관객 배우의 자리에 올랐다.

 

이 모두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소극장에 인쇄물을 배달하러 갔다가 연기에 입문해서 1990년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통해 연극 무대에 데뷔한 후 연극무대에서 쌓아온 내공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 [대배우]에서 20년째 대학로를 지키며 배우생활을 하는 장성필이라는 무명 연극배우의 삶이 곧 오달수의 삶이다. 이른바 <체험 삶의 현장>처럼 그는 <체험 무대의 현장>에서 잔뼈를 키우고 깊고 튼실한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 나무처럼 단단한 내공의 힘을 차곡차곡 다져온 것이다. 그런 오달수에게 석민우 감독은 "하얀 도화지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매번 새로운 배역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배우에게 이보다 더 멋진 찬사는 없으리라. 

 

 그 곁을 따뜻하게 지켜주는 가족

 

 

영화 대배우를 보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배우 오달수의 개인사는 알 길이 없으니 영화 속 장성필의 아내(진경)와 아들을 두고 말해 보자면, 이 두 사람은 크게 소리쳐 외치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가족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있듯이, 그 동안 우리의 가족문화는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그 외 친족 등 서로 지나칠 만큼 얼키고 설킨 관계지향적이어서 골치가 아플 정도였는데, 그 끈끈한 혈연의식은 돈의 가치가 최우선이 된 요즘 급격히 사라져 가족해체의 경지에까지 이르러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돈 못 벌어다주는 남편은 무시당하고, 돈 없는 아빠는 자식들에게 대접을 못 받아도 아무 소리 못하고 살고 있다. 노숙자로 살면서도 가족이 알면 걱정할까봐 절대로 알리지 말아달라고 한다는 사람도 있다지만, 사실은 가족에게 알려주어도 모른 척하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도 들리는 것이 현실정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집에 돈 한푼 못 갖다주면서도 룰루랄라 즐거운 인생을 사는 남편과 아빠 곁을  따뜻이 지켜주는 이 모자가 바로 대배우를 탄생케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일등공신이다.

 

 

[대배우]에는 오달수 외에도 윤제문과 이경영이 출연한다. 이 세 사람의 연기인생을 모두 합치면 70년에 이른다고 하니, 충무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 모인 셈이다. 윤제문은 연극으로 시작해서 스크린으로 진출한 자신의 이야기를 닮은 시나리오에 반해 [대배우]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고 이경영도 극중 박찬욱 감독을 연상케 하는 ‘깐느박’으로 출연해 색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게다가 김명민, 유지태, 이준익 감독 등이 카메오로 등장해 쏠쏠한 재미를 더해주었다. 특히 젊은시절의 청년 모습으로 등장하는 김명민의 경우는 본디 카메오 출연을 잘하지 않는데 오달수를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메오 출연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게다가 다들 노개런티로 출연했다고 하니 오달수의 성공을 얼마나 뜨거운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이제부터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극중 설강식이나 깐느박처럼 성공을 거둔 뒤에는 자신들의 절실했던 시절을 까맣게 잊고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있는 후배들을 쉽게 외면해 버리기 십상인데, 절실함으로 승부해 온 오달수라 한들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성공에는, 권력에는, 그리고 돈에는 그렇게 사람의 뇌를 바꿔버리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 윤제문처럼 어떤 식으로든 참참이 자신이 지나온 절실했던 세월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의 단맛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쓴맛, 짠맛, 매운맛도 잊지 않는 배우로서 더 풍성한 연기를 펼쳐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상, 대배우 오달수 만만함과 절실함, 내공의 힘이 빚어낸 걸작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