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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고문 송곳 구고신 소장과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

 

고문 송곳 구고신 소장과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  

 

 

공교롭게도 최근 시청하는 드라마 [송곳]과 [육룡이 나르샤]에서 비슷한 시기에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나와서 새삼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푸르미라는 대형마트의 부당해고 문제를 다룬 현대극이고 또 하나는 혼탁하기 그지 없던 고려말 신조선을 세우고자 몸을 일으켜세운 여섯 명의 인물을 다룬 역사극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죄를 지은 사람들을 비롯해 기득권 체제를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고문이라는 가혹한 응징이 내려지곤 한 것입니다.

 

고문 송곳 구고신 소장과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점장에게 눈엣가시가 된 이수인 과장(지현우)을 뒤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는 부진 노동상담소 구고신(안내상) 소장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만성신부전증으로 하루에 5번씩 복막 투석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문은 고신(拷訊)이라고도 하는데, 소장의 이름이 <고신>인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구고신 소장은 학생운동과 대공작 조직활동으로 붙잡혀 거꾸로 매달린 채 모진 고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억이 어찌나 혹독했던지  지금도 종종 고문을 당했던 때로 돌아가 고통받는 악몽을 꾸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어린 얼굴로 잠에서 깨어나곤 합니다. 

 

 

거꾸로 매달린 구고신 소장 옆에서 고문자 중 한 사람이 "북한 언제 갔다 왔어? 엉!” 하고 거칠게 윽박지르면, 다른 한 사람은 기름기 가득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야, 사람이 어떻게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하냐? 도와줘야 기억할 거 아냐”라고 달래듯 말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도와준다는 것>은 바로 <고문>을 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느물느물 웃는 얼굴이 더 소름끼치고 야들야들 부드러운 목소리가 더 공포심을 자극하니 소장의 입에서는 저절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웹툰 송곳의 최규석 작가에 따르면 이 구고신 소장의 실제 모델은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인 하종강 교수라고 합니다. 1980년대 초 공안기관에 붙잡혀가 사흘 밤낮을 거꾸로 매달린 채 일명 ‘비녀꽂기’며 ‘통닭구이’ 등의 고문을 당한 분입니다. 한 후배가 학림사건에 가담한 사람을 대라는 고문에 못 이겨 하종강 교수의 이름을 말한 바람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후배는 그 후 부산에서 환경미화원, 마을버스 기사, 사회복지사, 용역회사 파견 노동자 등 노조에 가입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을 모아 최초로 ‘지역일반노조’를 만든 송영수라는 분인데, 이분 또한 고문 후유증으로 구고신 소장처럼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또 다른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아버지 이성계(천호진)가 신조선을 세우려는 삼봉 정도전(김명민)과 손을 잡도록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이방원(유아인)이 끔찍한 고문을 받고 있습니다. 이인겸(최종원)이 안변책 통과를 조건으로 홍인방(전노민)과 불법적인 뒷거래를 했다는 혐의를 씌워 이방원을 체포해 와서는 이성계와 홍인방이 결탁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인두로 살을 지지는 끔찍한 고문을 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이방원은 이 모진 고신들을 이를 악물고 견뎌냅니다. 고문에 못 이겨 자신이 손가락질하며 비난했던 변절자 홍인방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홍인방이 스스로 자신의 변절을 정당화하기 위해 "날아보기 전엔 자신이 닭인지 새인지 모르는 법이야"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참고 견뎌야 한다. 난 닭이 아니다!" 하고 죽을 힘을 다해 고문을 참아냅니다. 

 

 

어린 유생시절에도 이방원은 이와 비슷한 놀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고문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합니다. 그런데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억누르며 반드시 살아나가겠다는 의지로 고신을 견뎌내는 이방원을 보니 인간처럼 나약한 존재도 없지만, 또 인간처럼 강한 존재도 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좀더 나이가 어렸을 때는 드라마나 영화, 책 등에서 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접하게 되면, 그깟 고문쯤 강한 신념으로 못 견뎌내랴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것이 신념만으로 벼텨낼 일은 아니다 싶으면서 상상만 해도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래서인지 목숨을 걸고 고문을 견뎌낸 사람들을 보면 그저 견뎌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게다가 그런 잔혹한 고문을 받고 나면 정신이 황폐해져서 다시는 그와 관련된 일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을 텐데, 그 후에도 여전히 자신이 지켜온 신념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위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문을 이겨낸다 해도 이미 그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대로 너덜너덜해져 있을 게 분명합니다. 이겨낸 사람은 이겨낸 사람대로, 또 못 이겨낸 사람은 못 이겨낸 사람대로 죄책감과 자괴감 속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으리라는 것도 불보듯 뻔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고문이 노리는 바가 바로 그것이라 해도 차마 인간에게 할 짓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무리 맡은 바 일이라지고는 하지만 마치 고양이가 새끼쥐를 가지고 놀 듯 은근히 고문을 즐기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고문자들은 대체 어떤 성향의 인간들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또 만일 그들이 자신이 행한 것과 똑같은 고문을 당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알고 싶습니다.    .

 

흔히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계유지를 위한 것이라 해도 남에게 몹쓸짓을 해서 돈을 버는 직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싸이코패스나 가학성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상황에서 오래 버틸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아니면 인간에겐 누구나 그런 잔인한 속성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그런 일을 하다 보면 타인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점점 즐기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물론 결코 그럴 리 없다고 믿습니다. 굳이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내면엔 남의 고통을 즐기기는커녕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있는 게 분명하니까요.  


고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시민참여형 한국인권행동>에 수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고문의 역사와 고문의 도구와 방법, 고문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노력,  고문방지를 위한 12단계 등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많은 곳에서 고문이 자행되지 않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고문의 역사

 

고문의 역사는 고대 아테네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노예들에게 고문을 가했고 고문으로 얻은 자백만을 증거로 채택했다. 이 전통은 로마에서도 이어져 로마 후기에는 자유인에게도 고문을 통한 자백을 강요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문을 통해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하곤 했었다. 이후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인정하고 교회가 고문을 반대하여 사라지게 되지만, 11세기 이후 국가가 강성해지면서 다시 고문이 사용되며 법률화되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사상의 탄생 후 고문반대운동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처형당했으나 고문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19세기부터 유럽에서는 고문이 거의 사라지고 식민지 통치에서만 사용됐지만 이것도 19세기에 사라졌다. 그 후 20세기 들어 나치가 강제수용소에서 정치적 이유로 고문을 자행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여러 인권선언들이 채택되고 발표되면서 사라졌는데,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제3세계의 국가에서 고문은 다시 자행되었다.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지역은 오랜 고문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고문이 계속되고 있다.

 

 고문의 도구와 방법

 

고문의 도구는 채찍, 곤봉, 각목, 담뱃불, 손가락 죄는 기구, 형틀 같은 고전적인 도구뿐만 아니라 전기 과학기술, 정신적 학대, 공포, 환각, 근육경련, 마비상태를 유발하는 약물주입 등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현 세계에서 고문은 대개 은밀하고 비밀스러우며 외부와 차단된 장소에서 외부와 격리된 채 고문자에 의해 정신적/육체적인 고문을 당하게 된다.

 

- 육체에 대한 고문  담배불로 지지기, 화상, 구타, 채찍질, 성적 학대 및 강간, 질식, 물고문, 전기고문, 약물주입, 잠 안 재우기 등

- 정신적/심리적 고문  약물 주입, 잠 안 재우기, 빛 없는 곳에 감금, 조롱과 모욕적인 행동, 협박, 동료 구금자의 고문장면을 보게 하는 것

 

 고문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노력

 

1948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의 제5조는 “사람은 누구나 고문이나 기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나 벌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에서 규정한 고문의 방지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고문방지협약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회원국은 1년 안에 의무이행을 위해 취해온 조치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으며, 그 이후 새로이 취한 보고서 및 고문방지위원회가 요구하는 여타의 보고서를 4년마다 제출해야 한다. 또한 고문방지위원회가 해당국의 영토 안에 고문이 조직적으로 행해지지고 있다는 정보를 접수한 경우 해당국의 협조하에 고문에 대해 조사할 수 있다. 고문방지위원회는 개인이나 개인을 대신하여 해당국으로부터의 고문에 대한 정보를 접수하고 심의하여 해당국의 고문에 대해 시정을 권고한다.

 

- 매년 2월-3월에 개최되는 유엔 인권위원회는 각국의 인권사항을 심의하고 평가하며 인권침해가 있을 때에는 해당국에 이의 신청을 권고한다. 1년간 세계의 고문사례에 대한 활동보고와 상황보고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평가와 심의를 통해 해당국에 이의 시정을 권고한다.

 

그 외 유럽 인권협정과 유럽 고문방지위원회, 미주인권협정, 아프리카 인권헌장에서도 고문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 정부간기구들은 자체적으로 가맹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고문사례를 조사하고 심의하며 이의 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국제앰네스티, 국제적십자사, Human Rights Watch, 국제법률가 위원회 등 수많은 국제민간단체들이 고문사례를 조사하고 이를 세계에 알리고 이의 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의료인 중심의 단체들이 고문희생자들의 치유와 갱생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고문방지를 위한 12단계

 

고문방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폭로와 세계적인 여론조성이다. 이를 위해 국제앰네스티 및 국제법률가위원회와 같은 비정부기구들은 유엔과 협조하여 고문사례들을 폭로하고, 폭로를 위한 절차를 강화하며, 전 세계적인 여론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국제앰네스티는 고문종식을 위해 전 세계적인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다음은 국제앰네스티가 전 세계 모든 정부가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문방지를 위한 12단계다.

 

1) 고문의 공식적인 금지 - 모든 나라의 고위 당국자들은 고문에 대해 전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또한 모든 법집행관에게 고문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2) 격리 구금의 제한 - 고문은 흔히 피해자들이 자신들을 도와주거나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확인해 줄 외부인과의 접촉이 금지된 채 격리구금되어 있는 동안 발생한다. 정부는 격리구금이 고문할 기회로 쓰이지 않도록 보호규정을 제정해야 한다. 모든 수인들이 구속 즉시 사법당국의 관할하에 놓여지고 친지, 변호인, 의사와 신속하고 정기적인 접견을 할 수 있어야 한다.

 

3) 비밀 구금의 금지 - 몇몇 나라에서는 피해자들이 “실종”된 후 비밀장소에서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정부는 수인들이 공개적으로 인정된 장소에서 구금되고, 친지와 변호인이 수인들의 행방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4) 심문 및 구속기간 중의 보호규정 - 정부는 구속과 심문절차를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모든 수인은 구속 즉시 처우상의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자신의 권리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구금 장소에는 정기적으로 독자적인 감시 방문이 행해져야 한다. 구금당국과 심문당국을 분리시키는 것이 고문방지를 위한 중요한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5) 고문사실 보고의 독자적인 조사 - 정부는 고문에 관한 모든 소원과 보고가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조사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러한 조사의 방법과 결과는 공표되어야 한다. 고문사실의 소원인과 증인은 협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6) 고문하에 이루어진 자백의 무효화 - 정부는 고문을 통해 확보된 자백이나 기타 근거는 재판과정에서 절대 채택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7) 법률상 고문의 금지 - 정부는 고문행위가 형법으로 처벌될 수 있는 범죄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야 한다. 국제법에 따른 고문금지 규정은 전쟁 상태 또는 기타 비상사태를 포함한 어떤 상황에서도 유보되어서는 안된다.

 

8) 고문 혐의자의 처벌 - 고문을 행한 사람은 재판에 회부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고문자가 누구이든간에 고문이 발생할 때마다 그리고 고문자와 희생자의 국적을 떠나 언제나 적용되어야 한다. 고문자들에게 결코 “안전한 피난처”가 있어서는 안된다.

 

9) 교육과정 - 수인의 구속, 심문 또는 관리를 담당하는 모든 공무원의 교육과정 중에 고문이 범죄행위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시켜야 한다. 또한 어떤 고문명령도 거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어야 한다.

 

10) 보상과 재활 - 고문 피해자와 그 부양가족은 경제적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고문 피해자는 적절한 진료와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

 

11) 국제적 대응 - 각국 정부는 고문을 행하는 정부에 대해 가능한 한 모든 경로를 동원해 개입해야 한다. 고문 사실을 긴급히 조사하고, 효과적인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정부간 활동체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각국 정부는 군사, 보안 및 경찰의 교류 또는 훈련이 고문을 조장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12) 국제인권협약의 비준 - 모든 정부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과 개별 소원을 처리해주는 선택의정서 등, 고문폐지를 위한 보호규정과 조치가 포함된 국제법상의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

 

이상, 고문 송곳 구고신 소장과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