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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서부전선 여진구 설경구의 무사귀환 프로젝트 "어서 집에 가야지"

 

서부전선 여진구 설경구의 무사귀환 프로젝트 "어서 집에 가야지"

 

 

여진구 설경구 주연의 전쟁영화 [서부전선]은 전쟁을, 그것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치달은 6.25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이렇게 마카롱처럼 말랑말랑하고 달콤해도 되나 싶을 만큼 긴장감 없이 본 영화였습니다. <2015년 추석, 전 세대를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으로 무장한 공감무비, 집으로 가기 위한 두 쫄병의 무사귀환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라는 홍보문구에 걸맞게 총알이 피융피융 날아다니고, 수류탄이 펑펑 터지고, 집채만한 탱크가 우르릉거리면서 온 화면을 가득 채우고 달려도 두 주인공만은 무사히 살아남을 거라는 안도감을 주었으니까요.(ㅎㅎ) 하지만 전 세대를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를 만들려다 보니 오히려 어느 세대의 입맛도 맞추지 못했고,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무장한 공감무비라고 했지만 실은 억지웃음도 나오지 않은데다, 또 스토리상으로는 분명히 따뜻한 감동이 물결쳐 와야 할 장면인데도 별감동 없이 무미건조했던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다만 The Long Way Home이라는 영어제목의 무게만큼은 확실하고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Home, 즉 집은 적군이든 아군이든 전쟁이 끝나면 어서 돌아가고 싶은 영원한 고향입니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고,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그 그리운 집은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반드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귀천의 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총칼을 든 인민군이 쳐들어오고 포탄이 터지는 끔찍한 전쟁 속에서도 한편에서는 죽은 자를 위한 장례가 치러지고 그 맞은편에서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아기의 울음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삶의 집과 죽음의 집은 이렇게나 서로 가까이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서부전선 여진구 설경구의 무사귀환 프로젝트 "어서 집에 가야지"

 

그래도 여진구를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여진구가 나오는 [서부전선]을 먼저 볼까 아니면 권상우 주연의 [탐정 더 비기닝]을 먼저 볼까 망설이다가 [서부전선]을 먼저 보기로 한 것은 순전히 여진구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소년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덧 어엿한 청년으로 멋지게 성장해서 같은 남자가 봐도 참 잘 자랐구나 싶은 상남자의 모습이 예쁘장한 꽃미남들이 판치는 속에서 오히려 더 돋보이는 여진구입니다. 요즘 유아인이 스크린이며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누비는 능력자로 떠오르고 있는데, 여진구 또한 유아인에 못지않은 역량을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근사한 모습을 보여줄지 큰 기대를 걸어봅니다.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서부전선]의 홈피를 참조로 한 소개에 따르면, 탱크는 책으로만 배운 북한군 영광(여진구)은 탱크를 버리고 도망가면 총살이라는 지령을 받고, 농사를 짓다가 끌려온 남한군 남복(설경구)은 비밀문서를 잃어버리면 총살이라는 지령을 받습니다. 때는 1953년 7월 27일, 3년여 넘게 계속돼 온 6.25전쟁이 정식명칭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인 <휴전협정>으로 일단락되기 3일 전 상황입니다. 

 

남한군 설경구는 전쟁의 운명을 가를 일급 비밀문서를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까지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지만 인민군의 습격으로 동료들도 비밀문서도 모두 잃고 맙니다. 한편 남으로 진군하던 중 무스탕기의 폭격으로 사수를 잃고 혼자 남게 된 북한군 탱크병 여진구는 탱크를 끌고 혼자 북으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설경구의 비밀문서를 손에 넣게 되고, 둘은 운명처럼 서부전선에서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이 적으로 만나 이른바 <적과의 동침>을 하면서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마침내 적국이라는 군복을 벗어던지고 서로의 맨마음을 보여주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각본을 맡았던 천성일 감독이 이번에는 직접 메가폰을 잡았는데, 남북한의 ‘쫄병’을 주인공으로 한 것은 대부분의 전쟁영화에는 전쟁을 지배하는 영웅들이 있지만, 그런 영웅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마음에 남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이의 이름도 짓지 못하고 전쟁터로 끌려나온 남복이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다른 형제들이 모두 죽어 홀로 남은 어머니만 두고 전쟁에 나서게 된 영광의 사연에 누구나 공감할 법합니다.  

 

 

[서부전선]에는 여진구 설경구 말고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는데, 바로 3개월의 설계기간과 2개월의 제작기간에 걸쳐 탄생시킨 T-3485 탱크입니다. 포신 길이 7미터, 폭 3미터, 높이 2.5미터, 무게 25톤에 이르는 T-3485 탱크의 실제 모델은 6.25전쟁 당시 인민군이 소련군에게 지원받아서 사용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 어마무시한 탱크..라고 말해야겠지만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서지고 망가져서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두 동강 난 다리가 걸린 절벽 앞에서 추락 일보직전에 이를 만큼 만신창이가 된 이 탱크는 탱크병 영광의 분신처럼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해 그 귀여운 위용(?)을 뽐냅니다.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서부전선을 영화의 배경으로 다룬 만큼 [서부전선]의 제작진은 전투 장면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먼저 실제를 방불케 하는 영상을 위해 일반 전쟁영화의 전투 장면과 달리 컷을 나누지 않고 모션 컨트롤 카메라 기법을 이용해 롱테이크로 촬영을 진행했는데, 매 촬영마다 같은 동선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롱테이크 촬영이었지만 모션 컨트롤 기법과 치밀한 설계 아래 완성도 높은 영상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토리 전개상 필요 이상 과한 전투 장면과 굉음 같은 소음이 오히려 영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깨뜨리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경영을 비롯한 일단의 군인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사족 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천성일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전쟁은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가장 잔인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코미디라고 생각했다. 전쟁의 양면을 모두 담고 싶었다. 특히 시대와 상관 없이 집으로 가는 것이 목표인 평범한 사람과 용감하게 싸우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며 연출 계기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전쟁은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결코 코미디가 될 수 없으며 언제나 잔학무도하기 짝이 없는 참혹함 그 자체일 뿐입니다. 서부전선의 주인공들처럼 무작정 끌려나와 탱크를 몰라면 몰고, 비밀문서를 전달하라면 전달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은 왜 싸우는지 그 이유도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눕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면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그 참극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정작 전쟁터에 있지도 않습니다. 전쟁은 그들이 일으켜놓고, 목숨은 여느사람들이 바치는 겁니다. 더욱이 그것이 6.25전쟁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면 그 불행의 여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그라들 줄을 모릅니다. 전쟁 발발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어느 곳에서인가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자신이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단지 태어난 곳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적으로 돌리고 죽음으로 치닫게 만드는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영광은 죽고, 남복은 살아남습니다. 영광은 죽어가면서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안타까운 말을 남기고, 남복은 그렇게 생명이 사그라져 가는 영광의 눈을 손바닥으로 쓸어 감겨주면서 "일어나. 어서 집에 가야지"라며 허탈한 표정으로 울먹입니다. 적으로 만났지만 사선을 넘나드는 동안 어느덧 형제의 애를 느끼게 된 두 사람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상, 서부전선 여진구 설경구의 무사귀환 프로젝트 "어서 집에 가야지"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