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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어른들 이기심에 새우등 터지는 슬기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새엄마 채린은 의붓딸 슬기의 방을 찾아가

“할머니 나가시고, 임실 아줌마도 파마하러가고, 집에 너랑 나랑 둘뿐이야”

라며 으스스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그리고는

“너 정말 못됐구나. 고자질쟁이는 혼나야 해. 입을 꼬매버려야 해”

라고 막말을 하며 뺨까지 때려 아이를 울리고 가출을 감행하게 만듭니다.

 

이런 엄마, 어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어서 제정신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지인 중에 20대 초반에 법조계에서 일하는 남편과 결혼해 경제적으로나 대외적인 면으로나

시쳇말로 꿀릴 게 하나도 없이 살아온 어르신이 계신다.

그런데 이분에겐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어디서건 사람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남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더 사실적으로 말하면 남들이 자기 험담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귀를 쫑긋 세운다는 것이었다.

모든 면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사는 분이 왜 그런 묘한 행동을 하는 걸까 정말 의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습관은 어린시절부터 생긴 것이라고 했다.

 

10대 후반에 새엄마가 들어왔는데, 그 새엄마가 희한하게도 이분 여동생에게는

잘 해주면서 맏딸인 이분에게는 견디기 힘들 만큼 구박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더 끔찍하게 이분을 괴롭게 만든 일은 새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마주앉기만 하면 끊임없이 이분에 대한 험담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분은 늘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한 눈길로 보는 것 같아 자꾸 주눅이 들고,

또 사람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하하” 하고 웃기라도 하면 자기를 흉보다가

그러고 웃는 것 같아 수치스럽기도 하고 온몸이 쫄아드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좋은 남편과 따뜻하게 대해주는 시어머니를 만나 결혼 후에는 그런 일로

가슴을 졸일 일은 없었는데, 그래도 그때의 힘겨웠던 기억이 가슴에 낙인이라도 찍은 듯,

40여 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혹 자기 험담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 말을 엿듣게 되는 버릇이 완전히 뿌리뽑히지는 않더라고 했다.

친부모라고 해서 자식들 가슴에 평생 잊혀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새엄마에게 받은 상처는 남남으로 만난 사이여서 그런지 그 흔적이 더 오래 가나 보다 싶었다.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새엄마 채린(손여은)은 의붓딸 슬기(김지영)의 방을 찾아가 

“할머니 나가시고, 임실 아줌마도 파마하러가고, 집에 너랑 나랑 둘뿐이야”

라며 으스스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는 전혀 어른답지 않은 태도로 

어린 슬기에게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쏟아내더니 기어이  

“너 정말 못됐구나. 고자질쟁이는 혼나야 해. 입을 꼬매버려야 해”

라는 막말까지 하며 슬기의 뺨을 때려 서러운 눈물을 흘리게 하고 결국 가출을 감행하게 만든다.

 

 

 

어디라 할 것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이를 보니 그 막막한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싶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 데 하나 없다는 서글픔과 두려움도 엄습했을 것이고,

그 기억은 결국 아이에게 성인이 되어서도 결코 지울 길 없는 낙인으로 남을 게 분명했다.

 

다들 자기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는 슬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지긴 하지만,   

이런 딸을 두고 그 사정이 어떻든 "엄마도 여자야"라며 제 살 길 찾아간 슬기 엄마도 그렇고,

이런 딸을 두고 슬기 엄마가 기어이 제 살 길 찾아 떠나게 만든 슬기의 이해불가 할머니도 그렇고, 

또 어떤 이유로든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제대로 교통정리를 못해 딸에게 이런 불행을 안겨준 슬기 아빠도 그렇고,

다 어린 슬기에게는 입이 열 개가 아니라 백 개여도 할 말이 없어야 하는 천추의 죄인일 뿐이다. 

 

 

결혼이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가족과의 만남이고,

그래서 거기서 파생되는 갖가지 일들을 다 견뎌나가야 하기에 힘든 거라면,
재혼은 거기에 아이 문제까지도 수용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만큼 더욱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이들 문제를 원활하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도무지 함께 살기가 어려운 지경인데도 아이 때문에 이혼은 절대 안 된다거나,

이혼 후 좋은 남자 혹은 여자가 나타났는데도 아이 때문에 재혼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것은 요즘 같은 세상에 시대착오적인 발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혼과 재혼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진 요즘,

어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향방이 완전히 달라져버릴 수도 있는 

아이들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으면 어른들이 자기들 좋으려고 한 선택에 대한 폐해를 

고스란히 아이들이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텐데, 

부모 잘못 만난 탓으로 그 엄청난 일을 감당해야만 하는 아이들이 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어른들이 자신들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감정을, 그저 어른들의 사랑과 책임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쏟아내는 것은 정말 졸렬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는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새엄마가 있어서 공분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그 아이의 친엄마는 의붓엄마를 더 가혹하게 처벌해 달라는 말도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엄마나 새엄마나 그 아빠까지도 아이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장본인인 것이다. 

 

또 얼마 전에 본 <궁금한 이야기 Y> 프로에는 의붓딸에게 개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하도록 종용해서 마치 빙의가 된 것처럼 만들고, 그것을 빌미로 퇴마사인 내연남을

불러들여 치료비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도무지 상상을 초월하는 새엄마까지 등장했다.

열두어 살쯤 됐으니 얼핏 그런 일을 시킨다고 할까 싶기도 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가혹한 시달림을 당했을까 싶으니 가슴이 아팠다.

심지어 그 새엄마는 세 의붓딸 중 하나는 구타로 숨지게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지경에 이르도록 아빠란 사람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지도 참 의문이다.

 

워싱턴 어빙은 “내 집이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라는 인상을 어린이에게

줄 수 있는 어버이는 훌륭한 부모다. 어린이가 자기 집을 따뜻한 곳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잘못이며, 부모로써 부족함이 있다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따뜻한 보금자리는커녕 자신들의 지저분한 감정을 아이들에게 쏟아내 

평생 벗어나기 힘든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어른들, 

그것도 모자라 아이들을 미끼삼아 돈까지 벌려 드는 어른들, 정말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