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은수 엄마를 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 생각을 함께 나눠보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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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B는 단짝친구였다. 학교도 같이 다니고 직장도 같아서
두 사람의 우정은 더 깊어만 갔다.
두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 “저리 착해서 어찌 살꼬?”라는
걱정이 들 만큼 착한 성품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둘은 사무실 청소를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집안사정이 어려워 때로는
점심값도 아끼느라 그냥 건너뛰는 것을 알고는 서로 번갈아가며
김밥이나 샌드위치도 사다드리고, 가끔은 직접 도시락을 싸다드리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나 명절이 다가오면 경비아저씨에게 작으나마 정성어린 선물도 해드리고,
휴일이면 틈틈이 어린이집에 봉사하러 가서 아이들 목욕도 시켜주고 놀아주기도 했다.
그 후 두 사람은 저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즐거운 연애시절을 보낸 후 비슷한 시기에 각각 결혼도 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자 결혼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불거졌다.
A의 남편은 결혼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아내의 착한 성품 때문이었기에
아내가 여건이 되는 한 결혼 전처럼 틈틈이 남을 돕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니, 아내가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진 것을 형제들에게나 주변사람들에게 자랑하며
그 자신도 시간이 나거나 마음이 내킬 때, 혹은 간접적으로나마 아내를 돕곤 했다.
반면에 B의 남편은 연애시절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결혼하고 나자
아내의 그런 착한 성품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일단 결혼을 했으면 남이야 어떻게 살든 더 이상
신경쓰지 말고 자기 살림이나 제대로 잘 꾸리는 데 전념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착한 성품을 가진 아내를 철따서니 없는 여자로 몰아붙이고,
남들 앞에서도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여자와 결혼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곤 했다.
물론 결혼 전과 결혼 후는 엄연히 다르다.
그 두 사람도 그 점을 모를 만큼 어리석은 여자들은 아니었다.
결혼 전 혼자 벌어 혼자 쓸 때는 크게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으니
마음만 먹으면 선뜻선뜻 무리없이 남을 돕기가 쉽지만,
결혼생활을 시작하면 마음은 있어도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다는 것쯤 모를 리 없었다..
다만 문제는,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두 사람은 여전히 똑같은 자신인데,
어떤 남편을 만났느냐에 따라 한 사람은 여전히 본디 성품
그대로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주제넘는 선행을 베풀려고 하는 철없는 아내로 치부되어
우울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B가 아주 지혜로워서 남편이 어떤 식으로 자신을 평가하든 잘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큰 무리 없이 자신의 본디 성품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말이다.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은수 엄마(오미연)를 보고 있으면 그 A와 B, 두 사람이 생각난다.
착한 남편을 만난 A는 지금도 여전히 소녀 같은 마음과 모습으로 살고 있다.
반대로 B는 공연히 주눅든 모습을 하고 오히려 착하다는 이유 때문에
끊임없이 남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삶 자체가 우울하다고 한다.
드라마 속 은수 엄마도 남들이 보기엔 그저 착하기만 할 뿐,
아등바등 살 줄도 모르고 손해를 보면 손해를 보는 대로,
누가 악다구니를 퍼부으면 퍼붓는 대로 대적도 못하고 뒤로 숨는 사람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나서야 할 때도 못 나서고,
딱잘라 말을 해줘야 할 때도 쭈볏거리기만 하는 그 모습이
답답하다 못해 바보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아내의 그런 모습을 그대로 봐주는 은수 아버지(한진희) 같은
남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좀 심하게 말해서 등신 취급을 받아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사람은 똑같은 그 사람인데,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에 따라 삶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요즘 더욱 절감하면서 살고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아주 친절한 사람으로 인식돼 있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교만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보았다.
그리고 법도 없이 살 만큼 착한 사람이어서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착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착한 성품을 갖고 있지만 나쁜 사람에게는 절대 착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사람은 누구나 서로 상대적이기에 그런 것이리라.
박경리님의 장편대하소설 <토지>를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읽었었는데,
지금 그 등장인물 중 기억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다른 누구도 아닌 임이네다.
책을 읽으면서도 임이네의 몹쓸 행태에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었다.
그 그악스러운 성품이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싫었고, 그 교활하기 짝이 없는
속물근성에 눈앞에 있다면 절로 고개가 돌려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은 아니기에 가족을 위해,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그악스러움과 속물근성을 꼭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은 그리 힘들지 않게 그 근성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는 도무지
그게 잘 안 되는 자신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악스러움과 속물근성으로 똘돌 뭉친 임이네가 어느덧
아주 생활력 강한 여인으로 여겨지고, 자식과 남편을 위해서라면
온몸을 내던지는 그 열정이 부럽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실제로 비슷하게나마 흉내를 내본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것도 습관이 되는지, 아니면 인간의 마음속엔 누구나
그런 그악스러움과 속물근성, 이기심이 내재돼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세번째, 네번째는 하기가 좀 수월해지는 것도 같았다.
그러니 그게 또 걱정스러웠다. 필요에 따라 한 행동이지만, 그러다가
아예 그런 인간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은근히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뭐가 어찌됐든 은수 엄마 같은 사람이 너무나도 좋다.
앞에 있으면 곁으로 다가가서 꼭 껴안아주고 싶고,
등도 툭툭 두드려주고 싶을 만큼 정이 간다.
그 나이가 되도록 누구에게든 큰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공연히 무시를 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어도 “괜찮아, 괜찮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오히려 자기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달래주는 은수 엄마,
그저 따뜻한 밥 해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고,
자식이 마음이 아픈 듯하면, 어찌된 일인지 궁금해서 죽겠어도
그저 그 마음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방문 앞을 서성이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엄마,
그런 은수 엄마가 너무 좋다.
그리고 그보다 더 좋은 사람은 그런 은수 엄마를 본디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살 수 있도록 지청구를 주지 않고 그 곁을 지켜준 은수 아버지다.
어려운 형편이니 다른 집 여자들처럼 나가서 같이 일해 돈을 벌어다주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나마 재테크를 해서 한재산 일궈놓은 것도 아니고,
남편이나 딸들을 대신해서 뭔가 해결해 볼 능력도 없어서
무슨 큰일만 생기면 남편 뒤로 숨기 바쁜 아내이지만,
그는 그 아내를 언제나 너무나 따뜻하게 보듬는다.
그 엄마가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은수 아버지가 본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저마다 성격이 다른 두 딸을 각각 다르게 보듬는 모습을 보면 그걸 잘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이란 것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절감하면서 그 두 부부, 은수 엄마와 은수 아버지가 사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 따뜻한 마음 오래도록 나누고 살기를, 그리고 그 다정한 마음으로
딸들과 주변사람들의 마음도 늘 따뜻하게 덥혀주기를 바란다.
그건 그렇고, 그 집 두 딸, 은수(이지아)와 현수(엄지원)는
자기들이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 같은 부모,
돈이 많아서 호강을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내로라할 만한 큰 빽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떤 곤경에 처하더라도 자신들을 뒤에서 든든히 받쳐줄 부모를 만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행운인지 알고 있을까?
아마도..알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니, 꼭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