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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슬로우비디오 차태현표 가을동화..순간의 소중함과 세상을 느리게 바라보는 미덕의 메시지

 

영화 슬로우비디오 차태현표 가을동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순간’의 소중함 ‘세상을 느리게 바라보는 미덕’ 메시지

 

영화 슬로우비디오 차태현표 가을동화

 

영화 헬로우 고스트, 바보의 김영탁 감독이 만든 슬로우비디오는 여느사람들이 못 보는

찰나의 순간까지 볼 수 있는 동체시력의 소유자 차태현(여장부)이 CCTV 관제센터의

에이스가 되어 남상미(봉수미) 등 화면 속 주인공들을 향해 펼치는 차태현표 가을동화다.

(스포일러의 염려가 있어서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줄거리를 참조했습니다.)

 

 

슬로우비디오 순간의 소중함과 세상을 느리게 바라보는 미덕의 메시지

 

동체시력이란 움직이는 물체를 정확하고 빠르게 인지하는 시각능력을 말한다. 추신수와 이승엽,

무하마드 알리 등 순간적인 움직임에 반응하는 운동선수들에게서 주로 발견된다고 한다.

 

뛰어난 동체시력을 가진 여장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숟가락을 단번에 잡아내고,

어릴적 친구 남상미(봉수미)와 데이트를 하면서 바람결에 나풀나풀 떨어지는 은행잎을

손가락으로 잡아채는 등 소소한 일상 속에서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슬로우비디오에서는 CCTV가 새롭게 재조명된다. 그 동안 범죄, 수사물 등에서

주로 감시의 도구로 쓰이며 부정적인 인식을 주던 CCTV가 이 영화에서는

따뜻한 관심의 시선이자 소통의 매개체로 그려지는 것이다.

특히 CCTV는 남다른 동체시력 탓에 칩거생활을 하던 여장부가 20년 만에 세상에 나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주민 모두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200편의 드라마라는 유쾌하고 긍정적인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오달수, 고창석, 진경님의 감초 연기가 주는 진한 재미도 놓칠 수 없다.

 

 

슬로우비디오 OST 보고 싶었어(강백수)

 


 

 

예전에 EBS의 한 프로그램에서 착각에 관한 실험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피실험자가 진료실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상 의사 A가 앉아 있다.

의사 A는 피실험자가 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맞은편 의자에 앉는 순간 일부러 볼펜 등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주우려고 몸을 책상 밑으로 수그린다. 그리고 이 틈을 이용해서

실험을 위해 책상 밑에 숨어서 대기하고 있던 의사 B가 의사 A 대신 몸을 일으켜 피실험자 앞에 앉는다.

이때 피실험자가 의사가 바뀌었는지를 알아차리느냐 못 알아차리느냐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아마 대부분은의 사람들은 "당연히 알아차리겠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험결과는 놀랍게도 반수 정도가 의사가 바뀐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는 남자의자가 여의사로 혹은 여의사가 남자의사로 바뀌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사람들의 착각, 착시에 관해 알아보는 프로였지만,

이 프로를 보면서 우리가 주변상황에 얼마나 무심한가 하는 것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 누구할 것 없이 저 피실험자들과 다를 바 없는착각과

무심함 속에서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아무리 눈이 좋다고 한들 육안으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좋지도 않은 눈으로 보는 것마저 관심이 없거나 마음이 

가닿지 않으면 보고는 있으되 보고 있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럴 때 눈앞에 있는 것은 사람은 사람이되 그저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슬로우비디오의 여장부가 뛰어난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긴 해도 그 능력이 언제나

발휘되는 건 아니다. 온마음을 집중해서 기어이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발동시킬 때

비로소 자신이 보고자 하는 사물이나 사람, 또는 어떤 상황이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듯이

천...천...히...눈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이 능력을 여장부만이 가진 특별한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느사람들도 이 능력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영화 속 여장부만큼은 아닐지라도 마음먹고 집중하면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이 슬로우비디오가

돌아가듯 한 장면 한 장면 눈에 각인되는 듯한 경험은 누구나 한두 번쯤 해봤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장부는 바쁨과 무심함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을 느리게 돌려서라도 그 순간의 소중함을 만끽하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일찍 일어나 힘겹게 수레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는

소년 백구(정윤석)도 보이고, 매일 새벽이면 고단한 몸을 이끌고 버스를 몰고 차고를 나서는

상만이 아저씨(김강현)도 보이고, 아버지가 남겨준 빚 때문에 살벌한 조폭들에게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가수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알바를 뛰는 어릴적

소꿉친구 봉수미도 볼 수 있게 될 거라고 말이다.

 

  

 

 

사실 이 영화는 줄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러닝타임 106분을 잘 인내하는 일이다.

지루하디 지루한 시간을 견디다 못해 약간 졸기도 하고 또 몸을 뒤틀기도 하면서

그 시간을 고스란히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슬로우비디오가 주는 소중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초반부 3분의 1 가량은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주리가 틀릴 정도로 지루하다.
한 템포씩 느리게 치고 나오는 대사도 짧은 순간이지만 기다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고,
중반부부터는 도대체 뭘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따뜻하다 못해 나른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를 만들었나 싶어 슬그머니 짜증도 치밀어오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그 짜증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면서 그 느림과 나른함이

어느덧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으로 변해 가고, 이어서 그 동안 얼마나 "빨리 빨리"를 외치는

숨막히는 삶을 살아왔던가를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이 깨닫게 해준다. 

나아가 이 반 박자 느리게 다가오는 속도도 견디지 못할 만큼 빠름에 중독돼 버린 현실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와 한없는 느림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만끽하는 선물 같은 시간마저 안겨준다.

그래서 강풀작가는 이 가을, 사랑하는 사람과 느리게 걷게 하는 영화라고 말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