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 지소태후(김지수)의 수렴청정과 삼맥종 진흥왕(박형식)

 

화랑 지소태후(김지수)의 수렴청정과 삼맥종 진흥왕(박형식)

 

 

드라마 [화랑]에서 장차 진흥왕에 오를 삼맥종(박형식)은 마지막 한 사람 남은 성골로서 어머니 지소태후의 뜻에 따라 은폐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궁궐을 떠난 채 언제 되돌아갈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불만을 품은 삼맥종은 지소태후가 위화공(성동일)을 시켜 만들게 한 화랑이 되어 궁궐로 들어옵니다. 어머니로부터 허락을 받은 일이 아니었기에 지소태후는 아들에게 분노하고, 삼맥종은 삼맥종대로 과연 어머니가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나 있는지 의심하면서 고통스러워합니다.

 

화랑 지소태후(김지수)의 수렴청정과 삼맥종 진흥왕(박형식)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지만 중국에도 어머니가 6세의 아들 대신 수렴청정을 한 예가 있습니다. 바로 50여 년간 청나라를 통치했던 서태후입니다. 아들 동치제에게 왕위를 물려주기가 싫어진 서태후는 아들을 정적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아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돌려 환락에 빠져들게 하고, 동치제는 환관의 손에 이끌려 궁궐 밖 홍등가에 드나들다가 마침내 몹쓸 병에 걸립니다.

 

아들이 몹쓸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서태후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서태후는 아들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내버려둡니다. 그리고 황제가 죽고 나자 아이를 가진 며느리인 황후를 구박해 자살하게 만듭니다. 서태후의 눈에는 황후의 뱃속에 든 아이마저도 손자라는 애틋한 마음보다는 미래의 경쟁자이기에 없애버려야 할 존재로 보였던 것입니다. 권력 앞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관계도 가차없이 버릴 수 있나 봅니다.   

 

 

물론 지소태후는 서태후 같은 비정한 어머니는 아니고, 오히려 아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충성할 화랑을 만듭니다. 어머니의 본뜻은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이 많아서 주변정리를 확실하게 한 후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것이었지만, 아들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반항하자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너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이니, 내가 나타나라고 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라"며 매섭게 몰아칩니다.

 

드라마는 아직 초반부여서 그런지 역사극이라기보다는 무명 박서준과 아로 고아라, 그리고 삼맥종 박형식의 달달한 로맨스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만, [YTN 한국사 탐]을 바탕으로 신라 23대 법흥왕에 이어 24대 왕위에 오른 진흥왕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습니다. [화랑 지소태후(김지수)의 수렴청정과 삼맥종 진흥왕(박형식)]입니다. 드라마 [화랑]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신라 24대 진흥왕

 

 

진흥왕(眞興王)은 540년부터 576년까지 왕좌를 지켰던 신라 24대 왕이다. 이름은 삼맥종(三麥宗) 또는 심맥부(深麥夫)다. 23대 법흥왕의 동생이며, 지증왕의 아들인 입종 갈문왕(立宗 葛文王) 구진(仇珍)과 법흥왕의 딸 식도부인(息道夫人, 지소태후)의 아들이다. 재위기간 541년까지는 법흥왕의 왕후인 보도태후가 수렴청정하고 551년까지는 어머니 지소태후가 수렴청정했으며, 551년에야 친정을 시작했으나 그 후로도 576년 붕어할 때까지 상대등 구해공, 사도왕후 박씨, 미실공주, 둘째아들 김사륜(훗날 진지왕) 등이 대리청정했다.

 

 

국가 발전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하고, 불교 교단을 정비하여 호국사상이라는 사상적 통합을 도모했다. 신라의 대외적 발전을 비약적으로 추진시킨 왕으로, 551년(진흥왕 12)에 개국(開國)이라고 연호를 바꾸고 친정을 시작하면서부터 적극적인 대외정복사업을 펼쳤다.

 

이를 토대로 신라는 고구려의 지배 아래에 있던 한강 유역을 빼앗고 함경도 지역으로까지 진출했으며, 남쪽으로는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서쪽을 장악했다. 북한산, 창녕, 황초령, 마운령(摩雲嶺)의 진흥왕순수비와 단양적성비(赤城碑) 등은 당시 신라의 영토 확장과 관직제도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혜량을 승통(僧統)으로 임명한 후 불교 국교화에 착수했던 진흥왕은 불교를 신봉해 말년에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승복을 입고 지냈으며 스스로 법운(法雲)이라는 법명을 지어 불렀다. 왕비도 진흥왕이 죽은 뒤 출가하여 영흥사(永興寺)에서 지냈다고 한다.

 

576년(진흥왕 37)에 세상을 떠났는데, 진흥왕이 죽기 한 해 전에 황룡사 장륙상(丈六像)이 눈물을 흘리며 왕의 죽음을 예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죽은 뒤 애공사(哀公寺) 북쪽 봉우리에 매장되었는데, 오늘날 경주시 서악동에 위치한 진흥왕릉은 사적 제17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상, 화랑 지소태후(김지수)의 수렴청정과 삼맥종 진흥왕(박형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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