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井蛙不可以於海(정와불가이어해)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말해 줄 수 없다.
내가 보는 세상이 가장 크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가장 위대하고,
내가 뛰고 있는 시간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명 장자가 말하는 정저지와(井底之蛙)입니다.
자신이 우물 속에서 보는 하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진짜 하늘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황하의 신, 하백(河伯)이 자신이 다스리는 황하가 가을 물이 불어나서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보고 무척 흡족하였답니다.
그런데 바다를 만나보고는 경악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했던 생각이 무너진 겁니다.
바다를 지키는 신, 약(若)은 황하의 신, 하백에게 3가지 충고를 해줍니다.
우물 속에 있는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하여 설명할 수가 없다.
그 개구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한 여름만 살다가는 곤충에게는 찬 얼음에 대하여 설명해 줄 수가 없다.
그 곤충은 자신이 사는 여름이라는 시간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편협한 지식인에게는 진정한 도의 세계를 설명해 줄 수 없다.
그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르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장자는 이 고사를 통해 3가지 집착과 한계를 파괴하라고 충고합니다.
첫째,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을 파괴하라!
둘째,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을 파괴하라!
셋째,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파괴하라!
우물 안의 개구리는 공간에 구속되어 있고, 여름벌레는 시간에 걸려 있고,
지식인은 지식의 그물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도 이 3가지 그물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량한 학벌과 지식으로 어느 누구의 말에도 귀기울이지 않는 지식의 그물,
좁은 회사와 연줄에 얽혀 있는 공간의 그물,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볼 줄 모르는 시간의 그물,
이 얽힌 그물들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진정한 승자로 남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내가 보는 하늘만이 옳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보는 하늘도 인정해 주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우물 속에서 나와 저 넓은 하늘과 바다를 만나야 합니다.
박재희 <3분 고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