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슬립 느닷없이 날아든 돌팔매질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할룩 빌기너

윈터 슬립 느닷없이 날아든 돌팔매질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할룩 빌기너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 할룩 빌기너 주연의 [윈터 슬립]은 무료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놀라운 깨달음의 순간을 포착하여 인생에 관한 깊이있는 성찰을 보여주고자 한 터키 영화다. 

 

이 영화는 제67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개봉되었다. [벚꽃 동산], [귀여운 여인] 등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홉의 원작을 기반으로 하여 영화를 만든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영원한 나의 스승, 체홉의 영혼이 [윈터 슬립]에 깃들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윈터 슬립 느닷없이 날아든 돌팔매질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할룩 빌기너

 

길고 긴 세월 동안 자연의 변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신비로운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터키 카파도키아의 설경은 형언할 길 없이 우아하고 신비롭다. 이곳에서 호텔 오셀로를 운영하는 아이딘(할룩 빌기너)은 젊은 아내 니할(멜리사 소젠)과 이혼 후 오빠가 사는 친정집으로 돌아온 여동생 즐라(드멧 앳백)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딘은 은퇴한 배우이자 작가다. '아이딘'은 터키어로 ‘계몽된 지식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매일 그 날이 그 날인 것 같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아이딘의 차를 향해 느닷없이 돌이 날아들고, 이 돌팔매질은 단순한 날갯짓 한 번에 태풍을 부르는 나비효과처럼 단단한 성벽과도 같은 아이딘의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삶에 균열을 일으키며 그를 깊고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윈터 슬립 느닷없이 날아든 돌팔매질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할룩 빌기너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개구리는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함부로 말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강자의 무심한 행동이 약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일으킬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하는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윈터 슬립]에서는 그와 반대로 약자가 던진 돌팔매질로 인해 강자의 삶에 예기치 못한 균열이 일어나고 붕괴 직전에까지 몰리게 된다.

 

 

돌을 던진 것은 뜻밖에도 아이딘의 여러 임대주택 중 하나에 세들어 살고 있는 히다옛(네잣 이슬러)의 어린 아들이다. 어린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앙다문 입에 반항기 가득한 눈빛이 아이답지 않게 강렬하다.

 

그 모습을 보니 장난삼아 돌을 던진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아이딘의 차를 표적으로 삼아 돌팔매질을 한 게 분명하다. 아마도 아버지 히다옛이 집세를 못 내자 중간에서 그 일을 맡아하는 사람이 찾아와 집을 비우라고 종용하고 또 TV며 집안의 집기들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는 복수심에 불탄 듯하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아이딘은 이 돌팔매질을 계기로 세입자들의 궁핍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된다. 하지만 평소 도덕적이고 지적이며 양심에 따라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고 굳게 믿어온 아이딘의 생각이 얼마나 얕고 모순된 것이었던가는 금세 드러난다.

 

어떻게 스스로 ‘계몽된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세입자들의 곤궁한 삶에 대해 그토록 모른 채 지낼 수가 있었단 말인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그러니 그는 그저 이론상으로 혹은 형식적으로 자비심을 가진 지식인입네 하고 살아온 게 분명하다. 게다가 더 어이없는 일은, 이번 일을 계기로 그들의 삶에 대해 좀더 알게 되었음에도 그에게서는 전혀 배려심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삶일 뿐, 자신의 삶과는 상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아이딘의 입에서 연방 내뱉어지는 말이 양심이니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을 두고 젊고 아름다운 아내 니할과 여동생 네즐라는 겉으로만 선하고 양심있는 지식인인 척하는 위선자라며 가차없이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하지만 아내 니할과 여동생 네즐라라고 해서 아이딘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마을사람들을 위해 소소한 자선을 베푸는 것을 위안삼는 아내는 세속적인 남편의 가식과 위선을 경멸하면서도 그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고, 여동생 또한 이혼 후의 고독과 권태를 못 견뎌하며 실패한 결혼을 오빠 아이딘과 논쟁을 통해 자기합리화하고자 신랄한 독설과 비판을 일삼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 세 사람이 무려 3시간 16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서로 마주칠 때마다 끝없는 뱉어내는 독설의 향연이 가히 경이로울 정도다. 상처를 헤집어 파고, 거기에 소금까지 뿌려대는 악마의 손길과도 같은 말, 말, 말들...

 

처음엔 필시 소통이 목적이었을 텐데, 이윽고 서로를 찍어누르고 굴복시켜 무릎을 꿇린 다음 그 위에 승리를 깃발을 꽂는 것이 단 하나의 목표인 것마냥 열중하는 허접한 위선자들의 모습이 역겨울 지경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양심이니 도덕이니 윤리라는 날말들은 단지 겉멋들린 단어들로 여겨질 뿐이며, 오직 타인, 그것도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들을 공격할 때 더 자주 활용되는 도구이자 무기로 생각될 따름이다.

 

 

어떤 인간관계에서나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물론 사랑말고도 배려도 중요하고 또 공감이나 신뢰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랑, 배려, 공감, 신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존중이 없는 사랑은 집착에 빠지기 쉽고, 존중이 없는 배려는 자칫 있는 자의 생색내기 베풂이 될 수 있으며, 존중이 없는 공감과 신뢰는 뿌리 없는 꽃과 나무, 혹은 작은 손짓에도 무너져 내리는 공중누각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 세 사람에게 진정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세입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돈이 아니라 돈을 벌게 해주는 일자리이며, 다른 집이 아니라 어릴때부터 살아온 지금의 집에서 내쫓기지 않는 것이며, 그 집 할머니에겐 집세가 밀렸다고 뺏어간 텔레비전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또한 아마도 필요할 거라고 믿고 돈을 내미는 짓은 그들의 자존감을 철저히 짓밟는 일이라는 것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진정한 자선은 절대로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지금 이 순간 진정으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에 맞추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것이 진정어린 선행이다. 

 

목마른 사람에겐 한 끼의 밥이 아니라 한 잔의 물이, 배고픈 사람에겐 몸을 누일 잠자리가 아니라 한 끼의 밥이 더 간절한 법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주면서 그것으로 물도 사먹고 밥도 사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자선의 탈을 쓴 행위일 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특히 스스로 자선가입네 하고 남편 아이딘을 대신해 세입자 히다옛에게 거액을 주러 간 아내 니할은 그가 집 한 채를 살 정도의 돈보다도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듯 거침없이 벽난로 속으로 돈다발을 던져넣는 것을 보고는 경악할 만큼 충격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는데,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돈이 태워지는 장면은 위선과 기만으로 쌓아올린 성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이딘과 니할은 이번의 돌팔매질 사건으로 인해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겉멋에 찌들고 얼마나 큰 위선에 사로잡혀 있었던가를 되돌아보는 깨달음의 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얼음으로 쌓아올린 듯한 호텔 오셀로가 붕괴되기 직전에 길고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 삶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윈터 슬립, 이제 겨울잠에서 깨어날 시간을 맞은 것이다.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인생의 겨울이 지나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훈풍이 느껴지는 봄을 맞았으니, 아이딘도 니할도 산더미 같은 눈과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졸졸졸 경쾌한 소리를 내는 시냇물 소리처럼 맑고 상큼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상, 윈터 슬립 느닷없이 날아든 돌팔매질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할룩 빌기너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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