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죽음보다 치욕을 택한 최명길(이병헌)의 주화론

 

남한산성 죽음보다 치욕을 택한 최명길(이병헌)의 주화론

 

 

4년 전 JT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은 사랑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어간 왕의 여인들의 처절한 암투를 다룬 이야기였다. 여기서 왕은 무능하기로 치자면 선조와 1,2등을 다투는 인조였는데, 이 인조 역을 이덕화씨가 맡았었다. 

 

당시 이 드라마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인조가 남한산성 삼전도에서 청태종을 향해 삼배구고두례라는 의식을 행하는 치욕적인 장면이었는데, 삼배구고두례란 앞으로 나아가면서 한 번 절할 때마다 머리를 세 번 땅에 조아리는 것을 세 번 하는 의식을 말한다. 그러니까 총 아홉 번을 땅에 머리를 찧게 되는 것이다. 왕의 옷이 아닌 하급관리의 의복색인 남색 옷을 입고 절을 하면서 청태종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인조의 이마에서는 어느덧 피가 흐르기 시작했는데, 이덕화씨가 이 장면을 얼마나 실감나게 연기해 주었던지 그 치욕과 굴욕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남한산성 죽음보다 치욕을 택한 최명길(이병헌)의 주화론

 

그런데 황동혁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병헌, 김윤식, 박해일, 고수 등 기라성 같은 명품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나니, 그 치욕의 삼배구고두례 장면보다 그 의식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온 인조가 수치스러움과 굴욕감을 견디지 못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부리고, 툭하면 버럭버럭 화를 내며 심기 불편해하던 모습이 새삼 더 인상깊게 떠오른다.

 

그때는 얼마나 무능하면 오랑캐라 불리던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분을 이기지 못해 쩨쩨하고 비겁하게 뒤에서 화나 내고 있는지 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왕이구나 싶었는데, 이 역시 [남한산성]을 보고 나니 그래도 인조가 잘한 일이 있다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디고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능이 극에 달해 나라와 백성을 상상 불허의 도탄에 빠뜨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전쟁을 피해가려는 일념으로 그 수모를 기어이 견뎌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조 - 박해일

 

만일 인조가 그 수모를 겪지 않겠다고 계속 뻗댔다면 얼마나 더 많은 애꿎은 목숨들이 스러져 갔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물론 그 후 청나라는 조선 백성을 50만 명이나 끌고 가 전쟁 못지않은 폐해를 남기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전쟁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두말하면 잔소리일 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좀더 나이가 어렸을 때는 혈기왕성한 힘만 믿고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을 비겁한 자의 변명으로만 생각하고, 또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배우는 것 역시 나약한 자의 도피가 아닐까 여기곤 했다. 하지만 이젠 분노할 때는 당연히 분노해야 하지만, 그저 개인적인 생각과 관점이 다른 데서 빚어진 화를 억누르지 못해 싸움을 자초하는 것이 얼마나 쓸데없고 어리석은 일인지 조금씩 알게 되어가는 것 같다. 또 순간의 분노를 이기지 못해 맞붙어 싸우고, 심지어 목숨까지 거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미련스러운 일이라는 깨달음도 얻어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을 잃는다면, 그것으로 게임 끝이니까. 살아 있어야만 치욕도 수모도 되갚아줄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 아니, 비록 영원히 그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타협하고 화해하고 용서하면 피해갈 수도 있는 싸움으로, 혹은 탐욕에 눈이 먼 지도자나 실리보다는 명분을 택한 한두 사람의 고집에 의한 전쟁으로 애먼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니까.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 - 이병헌

 

인조를 위해 싸움보다는 타협을 제시하는 실리추구로 절체절명의 조선을 구한 최명길이 죽음보다 치욕을 택했던 것도 바로 그런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 왕과 백성들의 생사가 백천간두에 섰을 때조차도 제 몸의 안위에만 혈안이 돼 있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오랑캐' 청나라에 복속되는 것을 죽음보다 더 큰 치욕으로 느껴 온몸으로 화친을 막고자 했다. 이 와중에 척화야말로 나라와 백성을 죽이는 길이라며 주화론을 주창한 최명길은 그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역적 취급까지 받았지만 나라와 왕, 백성을 구하기 위해 그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을 이름과 명분을 내던진 것이다.

 

이 최명길 역을 이병헌이 맡아 참으로 빛나는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광해군 역을 맡았던 이병헌과 오버랩되는 느낌이었다. 광해 역시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을 택함으로써 전쟁을 피하고자 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광해군의 중립외교다. 광해도 최명길도 명분을 따지기보다는 실리를 따지는 실용주의자였던 것이다.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대로 스토리를 소개하자면, 영화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명나라의 쇠퇴와 청나라로 이름을 바꾼 후금의 번성, 이어지는 청의 새로운 군신관계 요구와 이에 척화로 맞선 조선. 그로 인해 병자년 12월, 청이 조선을 침략하며 병자호란이 발발한다.

 

적이 기병을 앞세워 한양 인근까지 빠르게 진격해 오자 조선의 왕과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하지만, 청의 대군에 둘러싸인 채 성 안에 고립된다. 추위와 굶주림, 적의 거센 압박과 무리한 요구, 그 안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채 치열하게 조선의 앞날을 논했던 남한산성에서의 47일(1636년 12월 14일-1637년 1월 30일)이 스크린에 처음으로 그려진 것이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청과의 화친을 통해 후일을 도모하려 하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과 청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의 조용한 대결이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두 신하의 날카로운 논쟁과 갈등은 옳고 그름을 넘어 ‘무엇이 지금 백성을 위한 선택인가’에 대한 고민과 화두를 던진다. 

 

 

1620년대 중반 조정에는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의 위협에 대해 오랑캐와는 군신의 의리를 맺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척화론(斥和論)이 더 강세였다. 김윤식이 맡은 김상헌이 대표적인 척화론자였다. 반면에 최명길은 이에 반대하여 겉으로는 화약을 맺고 안으로는 군대를 양성하여 명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했다.  

 

인조가 항복한 후 청군이 물러가자 최명길은 이조판서와 우의정으로 일하면서 흐트러진 국내정치를 일신하고 국력을 키우는 데 앞장섰다. 또 청나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의 포로들을 귀환시켰고, 임경업을 명나라에 파견해 한동안 우호관계를 지속시키다가 탄로나 청나라로 잡혀갔을 때는 조선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혼자 떠맡음으로써 청나라 사람들의 감탄을 사기도 했다. 때문에 반청론의 입장에서 만든 [인조실록]에서도 최명길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 - 김윤식  

 

반면에 척화론을 주장한 김상헌은 나라의 명분을 죽음으로라도 지키고자 켰던 인물로, 그가 최명길이 쓴 항복서를 찢어버린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싸우다가 안 되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나라가 망하더라도 명의를 지켜야 나라를 회복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던 그는 패전하여 남한산성에서 나온 후 고향 안동으로 내려갔는데, 왕을 잘못 모셨으니 신하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그는 척화신으로 청에 잡혀가 절개를 지키다가 온갖 고초를 당하기도 했는데, 나라를 지킬 힘이 없는데도 명분만을 내세우며 척화를 주장한 척화파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청나라는 김상헌의 꼿꼿한 절개에 “조선을 정복할 수는 있어도 통치할 수는 없다”는 감탄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니 인조가 청태종에게 항복을 하고도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주화파의 적절한 대응력에 김상헌과 같은 척화파의 꼿꼿한 선비정신이 더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김상헌이 자결을, 그것도 할복(?)을 하는데, 실제로는 최명길보다 더 오래 살았다고 한다.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묵직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김윤식의 연기도 더할 나위 없이 빛났다.  

 

대장장이 서날쇠 - 고수

 

대장장이 서날쇠 역을 맡은 고수다. 왕이 아무리 무능한 정치를 펼치든, 탐욕스러운 중신들이 아무리 명분없는 입씨름에 하루 해를 보내든, 또 아무리 전쟁이 일어나고 그 전쟁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남한산성에 고립되든간에 언제 어디서든 그저 묵묵히 제 일에 충실한 백성들을 상징하는 날쇠다.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  개정판에서 “나는 졸작 [남한산성]을 쓰면서 서날쇠가 나오는 대목이 가장 신났다. 그의 삶의 모든 무늬와 질감은 노동하는 근육 속에 각인되어 있다”고 쓴 바 있다. 백성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정의 운명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을 먹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날쇠는 오늘도 생계를 꾸리느라 여념이 없는 소시민들의 모습을 닮았다. 나라가 아무리 갖가지 일로 혼란스러워도, 그것이 특히 지도자들의 무능으로 빚어진 혼란 때문일지라도 이렇게 멀쩡히 굴러가고 있는 것은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첫봄이 되면 언 땅을 뚫고 피어나는 끈기와 인내의 상징인 민들레처럼 하루하루 힘겨운 상황에서도 자신과 가족을 위해 밥벌이에 충실한 수많은 날쇠들 덕분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영화 흥행에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고수가 늘 안타까웠는데, 현재 340만 명의 관객몰이를 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그도 기분좋게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볼 것 같다. 

 

이상, 남한산성 죽음보다 치욕을 택한 최명길(이병헌)의 주화론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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