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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으로 보는 세상

<텅 빈 찻잔> 매일 새로운 날을 맞는 고마움과 기쁨

 

한 고승이 침상 곁에 늘 찻잔을 놓아두고는
매일 밤 잠들기 전이면 그 찻잔을 거꾸로 뒤집어놓았다가는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깨면 어젯밤 거꾸로 놓아두었던 찻잔을 다시 똑바로 돌려놓았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미승이 그 연유를 물어보니 고승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매일 밤 찻잔을 뒤집어놓는 것은 생명의 잔을 비움으로써
내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다.
오늘 할 일을 다 했으니 죽음이 찾아와도
충분히 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 다시 찻잔을 똑바로 놓는 것은
새로운 날이 주는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고승은 이렇게 한 번에 하루씩 삶을 받았다.  
매일 새벽, 삶이 주는 놀라운 선물을 고맙게 여기고,
하루가 끝나는 밤이면 그 삶을 기꺼이 포기했던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삶이 주는 놀라운 선물을 감사히 받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이것이 삶을 고맙게 여기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고승은 매일 밤 찻잔을

거꾸로 뒤집어놓았다가는 다음날 아침 다시 똑바로 세워놓는 것을 통해 알려준 것이다.

 

 

 

이 글을 보니 매일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가를 일깨워주었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 생각난다. 이 영화에서 거만하고 냉소적인 기상캐스터 필(빌 머레이)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리는 봄 축제에 관한 탐방기사를 취재하러 갔다가

갑작스러운 폭설로 발이 묶여 호텔에 묵게 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 그는 조금씩 날이 밝아져 오는 속에서

이상하게도 그 날이 어제와 똑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라디오에서 들려나오는 멘트도 어제와 똑같고, 또 어제 분명히 축제에 관한

취재를 마쳤건만 마을이 여전히 축제 준비로 부산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꼼짝없이 매일 똑같은 살도록 강요받는 시간의 포로가 된 그는 처음엔 당황하고 절망하고 반항해 보지만,
결국 누구도 자신의 현재의 삶을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차츰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거만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사람들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다음날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돕기도 하는 등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열어나가자 어느새 마을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람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도 얻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진정한 새로운 날의 도래를 맞이한다.

 

이 영화를 보면 끝도 없이 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이 얼마나 무료한 일인가를, 

또 매일 새로운 날이 아닌 어제와 똑같은 날을 맞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알게 된다.

더불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가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