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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따뜻한 말 한마디>엄마를 이런 시궁창에 빠트려! 엄마더러 어떻게 하라구!

 

“엄마를 이런 시궁창에 빠트려! 엄마더러 어떻게 하라구!
아니, 어떻게 이렇게 파렴치한 짓을 할 수가 있어.
엄마 어떻게 살라구!”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딸(은진, 한혜진)의 불륜을 알고 오열하는 친정엄마(고두심)의 대사다.

 

딸에 대한 믿음이 와르르 무너진 데서 오는 절망감, 거기에다 부모로서 올바르게 잘 키웠다고

자부심을 가질 만큼 방정하다고 믿었던 딸이 다른 것도 아닌 유부남과의 외도라는 몹쓸짓을 한 데 대한 

분노가 뒤섞여 억장이 무너지는 엄마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엄마의 절규다. 

  

 

은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집으로 찾아간 엄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 은진의 불륜을 알고 

“어떻게 내 자식이 이렇게 뒤통수를 치냐? 네가 더 나쁜 년이다”라며 분노한다.

그런 엄마에게 은진은 애절한 눈빛으로 “엄마와 얘기하고 의논하고 싶었어”라고

하소연하듯 말하지만, 엄마는 “뭐 잘했다고 같이 의논을 해! 그딴 드러운 짓 너 혼자

감당하는 게 맞아. 엄마까지 엮어서 엄마를 그런 구덩이에 밀어넣고 싶었어!”라며 호되게 다그친다.
그리고 은진이 넋이 나간 막막한 표정으로 “그래서 못했어. 숨막혀 죽는 줄 알았어”라고 말하자 
“네가 한 짓은 숨막혀 죽어도 싼 짓이야!”라고 무섭게 호통을 친다.

 

불륜이라는 용서할 수 없는 잘못, 그리고 누구보다 믿었던 딸인 만큼

그 배신감에 더욱 치가 떨렸을 거라는 엄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엄마가 절규하듯 쏟아내는 그 단죄의 말들을 듣고 있다 보니 

딸이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을지언정, 그리고 이제 막 그 잘못된 짓을

알게 된 터여서 제정신을 가누지 못할 만큼 화가 난 상태였을지언정, 

딸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히려 그런 딸을 둔 부모로서의 수치심으로 인한 분노가 

더 앞선 것 같아 왠지 좀 씁쓸했다. 부모라면 지금 그 누구보다도 힘든 사람은

바로 딸일 거라는 생각은 왜 못해 줄까 싶기도 하고.

 

치명적인 잘못을 한 딸을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감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또 개중에는 실제로 잘못한 딸을 분별도 않고 역성들고 나서는 꼴불견 모습을 보여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부모들도 종종 있긴 하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친정엄마는 상당히 공정하고 합리적인 성품이어서

그 분노의 홍수가 잦아들면 현명하게 분별력을 발휘해서 딸을 바로잡아주고,

아무리 용서하기 힘든 잘못을 저지른 딸일지언정 결국은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줄 거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이 된다.

하지만 그 훗날이 아닌 바로 지금, 돌이키기 힘든 잘못을 저지른 데 대한 후회로

죽고 싶은 심정에 처해 있는 이 순간, 딸에게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은 

"엄마를 이런 시궁창에 빠뜨려! 엄마더러 어떻게 하라구! !"

“어떻게 이렇게 파렴치한 짓을 할 수가 있어. 엄마 어떻게 살라구”라는 

엄마의 차갑고 냉정한 절규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다.    

 

 

 

타사의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도 상황은 좀 다르지만 이와 흡사한 장면이 나온다.

이 드라마에서는 딸(연수, 이지아)이 불륜을 저지른 건 아니고,

반대로 딸과 재혼한 사위가 외도를 해서 두번째 이혼을 생각하며 집으로 온 딸을

친정엄마(오미연)과 친정아버지(한진희)가 맞는 장면이다.

 

이미 한 번 이혼한 딸, 그리고 위자료 대신 제 아이만 데리고 나온 딸이 

그 아이마저 버려두고 재혼한 지 얼마 안 돼 다시 이혼하겠다며 짐을 싸들고 왔으니 

그 부모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고 참담한 심정이었을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 딸이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의 은진처럼 불륜이라는 죄를 저지른 건 아니라 해도

오직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보려고 한다면 부모의 얼굴을 깎아먹고 크게 체면을 구기는

망신스러운 일임에는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딸이 짐을 싸들고 온 것을 알고 놀라는 엄마에게
“법석떨지 말고 묻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고 그냥 두자구.
그냥 말하면 들어주고 산다면 그래라, 안 산대도 그래라 그러자구”라며 

불행에 처한 딸을 보듬어주는 말을 한다. 

또 엄마가 “ 지 시집에서는 뭐래?”라고 묻자

“안 물어봤어. 다른 데 가려다 우리 너무 걱정시킬 같아서 왔대”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어디로? 집 두고 어디로 가?”라고 울먹이는 엄마를 아버지는

“그래, 우리한테로 왔으면 그것만도 고맙다 생각해”라는 말로 다독인다.

 

 

이 두 집안의 부모를 보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나 다를 바 없겠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방법은 너무나도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륜이니, 재혼이니, 이혼이니 하는 문제는 논외로 치고

지금 가장 고통스럽고 궁지에 몰려 있는 자식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자식으로 인해 자신의 도덕성에 흠집이 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부모보다는,

그리고 자식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부모의 입장을 내세우기보다는

화가 치밀고 가슴은 아프지만 말없이 지켜봐주는 부모에게서 더 큰 기운을 얻지 않을까.

 

연수의 부모도 자신들의 체면만을 생각한다면 은진의 엄마만큼이나 실망도 컸을 테고,

또 행여 두 번씩이나 이혼하게 될지도 모르는 딸에게 주변사람들이 보낼 비난을 떠올리면

그 못지않게 견디기 어려운 참담한 심정일 게 분명하다. 

그래서 은진의 엄마가 하는 식으로 한다면 연수의 엄마 또한  

“네가 어떻게 또 이혼을 하겠다고 집을 나올 수 있어? 위자료 한푼 안 받고

니 딸만 주면 된다면서 이혼하고 나온 년이 그 딸 버리고 또 다른 남자 좋다고

결혼했을 때는 어지간한 일이 생겨도 국으로 참고 살아야지! 남들이 알면

대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해댈 거야!  어떻게 내가 너 같은 딸을 뒀는지 모르겠다!“며 

다그치고 호통쳐도등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연수의 엄마와 아버지는

그저 염려하는 마음으로 실의에 차 있는 딸을 지켜보는 것으로 

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출간한 <시네마 테라피>에는 자식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한 부모의 역할은

자식을 불행으로부터 보호하는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자식의 불행만 막아줄 수 있어도 그것만으로 좋은 부모라는 것이다.
이 말처럼 부모는...자식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지금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거라면..그 잘못을 낱낱이 짚어내기보다는 그저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이 최상이자 최선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자식이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했거나,

남부끄러운 죄를 저질렀다 해도 무작정 달려가 그 품에 안겨 울 수 있는 사람,

속모르는 남들이 그저 재미삼아 손가락질하고 비난을 한다 해도 

상처입은 자식이 걱정 않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든든한 담벼락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플로리앙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나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라고 했다.

너무 도덕적이고 엄격해서 차라리 가혹하기까지 한 부모,

그래서 오히려 부모가 알까봐 두렵고,

그 때문에 부모가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부모보다는,

가장 초라하고 헐벗은 모습으로도 그 앞에 설 수 있을 만큼 너그러운 품으로 감싸주고

따뜻한 말로 다독여주는 부모가 자식에겐 더없이 크고 든든한 울타리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