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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따뜻한 말 한마디> 갑질이 그렇게나 하고 싶을까?

 

"나 어미한테 계속 갑질하면서 살고 싶다.

네가 딴 년 만나 노는데 내가 계속 어미 볶을 순 없다."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중 시어머니 추여사(박정수)의 대사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미경(김지수)의 시어머니 추여사(박정수)는

아들 재학(지진희)에게

 

“내가 요즘 왜 어미 달달 볶은 줄 아냐.
내 눈에도 네가 달라 보였는데 어미가 몰랐을 리 없다.
어미 정신 빼놓느라 일부러 더 그랬다.
어미 네 아버지 한 번도 실망시킨 일 없는 여자다”

 
라고 말한다. 이어서 추여사는

 
“나 어미한테 계속 갑질하면서 살고 싶다.
네가 딴 년 만나 노는데 내가 계속 어미 볶을 순 없다.
딴 년이랑은 가끔 만나기나 하면서 살아라.
일주일 자리 비워주겠다. 알아서 풀어라”

 

고 덧붙인다.

아들의 불륜을 알면서도 이혼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에

일부러 모른 척하겠다는 뜻이다.

또 추여사는 자리를 피해주기 위해 여행을 떠나면서 며느리에게는

 

"재학이 잘 챙겨라. 넌 우리 재학이 잃으면 다 없어지는 거다.

네가 가진 것 중에 네 손으로 이룬 게 있냐?"

 

며 독설을 퍼붓는다.

아무리 아들 부부의 이혼을 막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말이었다고

한 수 접어서 생각한다 해도,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었다면

과연 그런 독한 말을 퍼부을 수 있었을까 싶다.

그야말로 "갑질을 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전형적인 시어머니의 모습"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어린시절, 옆집에 박정수님만큼이나 예쁘장한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다.

여장부 타입이었던 우리 엄마와 달리 
그분은 성품도 아주 여성스러웠고 목소리도 고왔다.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정겨운 얼굴로 먼저 다가와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시곤 하는 모습이 너무도 좋아서 
어린 마음에 순간순간 그 할머니가 우리 엄마였으면...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우리 엄마가 그 할머니 같았으면...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은

그렇게 따뜻하고 다정하고 상냥하며 예쁜 할머니가

며느리들에게만은 더없이 표독스러웠다는 것이다.

아들이 셋이었으니 며느리도 셋이었는데,

왜 그토록 하루가 멀다 하고 지옥 같은 갈등을 겪으면서도

세 아들을 분가시키지 않고 다 데리고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매일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더니

결국 세 아들이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며 매달리는 그 할머니를

가차없이 뿌리치고 하나씩 하나씩 다 분가를 해서 나갔다.

 

벌써 수십 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는 한 가지 기억은

둘째며느리에 관한 일이었는데,
그 와중에 둘째아들이 외도를 했고,
놀랍게도 그 외도의 당사자인 여자가 선물 꾸러미를 싸들고
그 할머니 집을 스스럼 없이 방문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할머니가 당신 며느리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180도 다르게 만면에 다정스러운 웃음을 띠고 그 여자를 맞이하더라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저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하고 정말 이해가 안 갔지만

어른들이 쉬쉬하는 통에 더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그 후 그 둘째아들은 제 가정으로 돌아왔지만,

둘째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두 번 다시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며느리는 장례를 치르는 내내 나타나지 않았다.

 

 

 

 

왜 시어머니는 하나같이 며느리에게 갑질을 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니, 왜 다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갑질을 며느리에게는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완장은 누가 채워준 것일까?
물론 이 드라마에서는 아들이 며느리에게 잘못하면
내가 며느리에게 떳떳하고 당당할 수 없으니
어서 그 바람을 잠재우라는 의미로 아들에게 한 말이라고 받아들여야겠지만,
정말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될 때조차
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만큼은 “갑질을 못해" 안달을 한단 말인가?
 

요즘이야 세상이 크게 달라져서 저런 시어머니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접하는 거라고 믿고 싶다.

더불어 요즘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집의 가훈처럼 "입장 바꿔 생각하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