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으로 보는 세상

이탈리아 콜로세움..맹수와 검투사들

 

이탈리아 콜로세움..맹수와검투사들

 

이탈리아 콜로세움..맹수와 검투사들 

 

이탈리아 콜로세움은 로마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경기장으로 오늘날에도 로마를 대표하는 관광지입니다. 당시 건립된 건축물 중 최대의 건축물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콜로세움은 환호와 야유를 끊임없이 외쳐대는 흥분한 군중들, 포효하는 맹수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함과 더불어 위대한 로마제국의 웅장함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치우커핑의 [의문에 빠진 세계사]에 실려 있는 콜로세움의 맹수와 검투사들에 관한 부분과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을 첨단그래픽과 3D 입체영상으로 완벽복원한 EBS 다큐프라임 중 맹수에 관한 부분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황제의 위엄을 한껏 뽐내기 떨치기 위한 정치적 무대인 콜로세움에서 사람들의 흥미와 즐거움을 충족시키기 위해 먼 나라에서 어렵사리 수송돼 와서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다가 덧없이 죽어간 맹수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 콜로세움..맹수와 검투사들 콜로세움에서 개막식을 올리고 있는 티투스 황제  

 

콜로세움은 70년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80년 건축이 끝나고 100일의 축제기간 동안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개막식을 올렸다. 그 후 콜로세움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경기가 펼쳐졌는데, 그 중에서도 로마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는 단연 맹수들간의 피튀기는 싸움이었다.

이러한 경기는 문화적 차원의 기능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동물들을 정복함으로써 로마가 정복한 도시들을 환기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로마가 더 멀리 진출할수록 더 이국적인 동물들을 데려왔고, 이는 로마의 힘을 과시하는 데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야생 들소와 거대한 곰 같은 맹수들은 먼저 경기장 한가운데에 데려다놓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밧줄로 목을 묶은 다음 땅에 있는 쇠고리에 고정시켜 놓는다. 그 후 옆에서 광대들이 맹수들을 약올리며 잔뜩 흥분시키면 로마 시민들은 뜨거운 피가 난무하는 장면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사람과 맹수 간의 대결 역시 인기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한 사람 혹은 몇 명으로 구성된 검투사들과 표범이나 사자 같은 맹수의 대결은 인간과 자연의 대결로 비쳐졌는데, 온갖 무기로 무장한 검투사들은 맹수들을 죽도록 괴롭히며 볼거리를 선사한 후 모두의 눈앞에서 잔인하게 그 생명을 빼앗았다. 물론 오히려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노예 출신 검투사가 항시 뒤에서 대기하고 있기에 누구 한 사람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는 없었다.

 

 

매해 로마제국에서는 로마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수천 마리의 맹수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곳곳에서 맹수들을 조달해야 했다. 로마 각 지방 도시의 경기장에서는 현지에서 흔히 잡을 수 있는 동물들(북유럽의 경우 주로 곰과 늑대를 사용했다)을 경기장에 넣었고, 간혹 표범이나 호랑이를 잡은 날은 특별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황제의 명령이 있어야만 맹수들간의 경기를 볼 수 있었는데, 황제의 위엄을 한껏 살리기 위해 되도록 외국에서 공수해 온 진기한 동물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엄청난 체구의 동물을 안전하게 공수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야생동물들을 스트레스 없이 건강한 상태로 이송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데, 하물며 현대적인 운송수단이나 도로망도 없던 그 시절에는 더욱 어려웠을 게 분명하다.

 

그 때문에 로마 정부는 로마 시민들에게 매일같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제공해 주기 위해 수많은 동물들을 어떻게 로마로 안전하게 공수할 것인가를 두고 상당한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범선이나 우마차를 이용해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부터 맹수들을 이송해 왔는데 그 수만 해도 엄청나서 동물들을 이송하는 데 동원된 인력과 물력은 로마 정부의 재정에 큰 부담을 줄 정도였다.

 


당시 경기장에서 살아 있는 맹수들의 싸움을 보기 위해 미끼나 함정과 같은 다양한 포획방법이 동원되었는데, 동물들이 자주 물을 마시는 샘에 독한 술을 풀어 그 물을 마신 맹수가 술에 취해 쓰러지기만을 기다렸다가 생포하거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을 구덩이에 넣어두고 그 냄새나 울음 소리를 들은 사자나 호랑이 같은 대형 포식동물들이 몰래 파놓은 구덩이 속에 빠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런 방법을 통해 코끼리까지 생포했다.

 

맹수들을 생포한 후 육로나 수로를 통해 로마로 이송했는데, 이송하는 도중에 맹수들이 죽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햇다. 육로의 경우 우리 속에 갇힌 맹수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도중에 몇 번씩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맹수를 옮기는 수송대에 무료로 먹을것과 쉴 곳을 제공하라는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라 로마의 지배를 받는 모든 지역의 사람들은 이들을 융숭하게 대접해야 했다.

 

 

야생동물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북아프리카는 사방에서 맹수들을 잡아오느라고 분주했던 로마에는 탐나는 먹잇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프리카에는 호랑이가 없었기에 로마인들은 호랑이를 잡으러 페르시아나 인도로 발길을 재촉하기도 했다. 주로 북아프리카에서는 코끼리,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사자를 잡아왔다. 로마가 지배하는 지역에 주둔하는 모든 로마 군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현지에서 맹수들을 생포해서 로마로 보내는 일이었다. 현지 사냥꾼들도 로마 군대를 도와 사냥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송하는 도중에 많은 동물들이 죽어나갔고, 간신히 로마로 수송되었다 하더라도 긴 여정과 스트레스로 대부분 허약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황제는 자신이 특별히 관리하는 동물원에서 맹수들의 야생본능을 되찾아주기 위해 생고기를 먹이거나 마음껏 뛰놀게 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기력을 되찾은 맹수들은 긴 터널이나 우리, 대형 승강기를 통해 콜로세움의 지하실에 있다가 로마 시민들의 여흥을 위해 경기장으로 끌려나가야 했다. 물론 경기가 끝난 후 살아 돌아온 맹수들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죽은 동물들은 그냥 버려지지 않았다. 가죽은 시민들에게 선물로 주었고 고기는 이후 진행될 맹수사냥을 위해 우리에 갇혀 있던 맹수들의 먹이가 되었다. 그 후 버려진 뼈들이 콜로세움 하수구에서 발견되곤 했다.

 

이탈리아 콜로세움..맹수와 검투사들에 관한 이야기,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