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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바다 시모음]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라

 

오늘 포스팅은 [바다 시모음]입니다.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라고 노래한 오세영님의 [바닷가에서],

호수, 향수 등의 서정적인 시로 유명한 정지용님의 [바다 1,2]

충남 서산 태생이지만 바다가 좋고 섬이 좋아 제주도 성산포에 뿌리를 내리고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고 자랑하시는 이생진님의 [설교하는 바다] 등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와 함께하면서 입속으로 되뇌어보기에 좋을 시들입니다. 

 

또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누구나 하나씩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고 일러주는 정호승님의 [바닷가에 대하여], "나는 다시 바다로 가련다.

그 호젓한 바다 그 하늘로"라고 바다를 열망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영국 시인 존페이스필드의

[바다가 그리워]도 작열하는 여름 햇살에 지칠 대로 지쳐 어서 저 푸른 바다로 달려가고 싶은 

우리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름이면 빼놓을 수 없는 Beach Boys의 유쾌한 노래 [surfin USA]도 영상과 함께 보고 들으시면서 

잠시 더위 식히는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 

 

 

Beach Boys  <surfin USA>

 

 

나는 다시 바다로 가련다. 그 호젓한 바다 그 하늘로.
내 바라는 건 다만 키 큰 배 한 척과
방향을 잡아줄 별 하나
그리고 바다 위의 뽀얀 안개와
뿌옇게 동트는 새벽뿐.

 

나는 다시 바다로 가련다. 조수가 부르는 소리
세차고 뚜렷이 들려와 나를 부르네.
내 바라는 건 다만 흰 구름 흩날리고
물보라 치고 물거품 날리는
바람 거센 날, 그리고 갈매기의 울음뿐.

 

나는 다시 바다로 가련다. 그 떠도는 집시의 생활로
갈매기 날고 고래가 헤엄치는
칼날 같은 바람 부는 바다로.

내 바라는 건 다만 낄낄대는 방랑의
친구녀석들이 지껄이는 신나는 이야기와
오랜 일 끝난 후에 오는
기분 좋은 잠과 달콤한 꿈일 뿐.

 

-존 메이스필드 <바다가 그리워>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정지용 <바다 1>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었다.

 

이 애쓴 해도(海圖)에

손을 씻고 떼었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희동그라니 받쳐 들었다!

지구(地球)는 연(蓮)닢인 양 오므라들고…… 펴고……


-정지용 <바다 2>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오세영 <바닷가에서>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이생진 <설교하는 바다>

 

 

 

 

그와 나는 참 막역한 사이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우리는 마음속 연인,
만날 때마다 은밀히 포옹을 한다.
 
오늘도 방어진 솔나무 숲길 사이로 내가 그를 찾았을 때
그는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무슨 암호 같은 주문을,
바다의 푸른 침묵 사이로.
  

- 옴 아모카 바이로 차나마하
  무트라마니 파드마 트바다
  프라바를 타야훔 타야훔
 
모든 것은 잘될 것이다
상심 말라 수평선과 수평선 사이
아직 시간은 새순처럼 푸르다
세상의 끝은 끝이 아니고
슬픔의 끝도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이제 시작이다
상처가 아무리 막막할지라도
지금이 바로 향기로운 시간!
정담도 없이 지금 내게 악수를 청하는 내 막역한 친구여.

 

-김성춘 <바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독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새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게 좋다

 

-정호승 <바닷가에 대하여>

 

 

 

 

바다에는 커다란 음반音盤이 하나
밤낮 돌면서
제 가슴을 비워
푸른 물소리를 만들고.

 

뭍에서 뜻을 잃은 새들은
바다로 가서
바람에 귀를 씻고
그 소리를 듣고 있다는데.

 

나도 마음 한구석 설레며
바다로 나가볼까
몸 기울여
바다가 될까.

 

가까이 갈수록 바다는

조금씩 몸을 감추었지만
음질音質이 좋은 푸른 음반은 돌면서
흐린 내 귀를 씻어주는데

바다에 몸 기울인 새들은
날아서 뜻을 짓는구나.

 

떠나간 이여
떠나간 이여
바다를 버린 새들만이
진실로 바다로 돌아올 수 있다네.

 

가슴에 막막한 구름 흐르거든
오늘밤 비 내리기 전에
바다를 향하여
마음 열어도 좋으리.

 

-이상호 <바다로 나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