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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미드 체르노빌 살아서 만난 가공할 지옥

미드 체르노빌 살아서 만난 가공할 지옥

 

미국 케이블TV HBO에서 방영한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은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북서쪽 14.5킬로미터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했던 사고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침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플레이에서 공개해 주어 부랴부랴 보았습니다.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로 일어난 이 방사능 누출 사건은 원자로 시험 가동 중 안전절차를 무시해서 발생한 것으로, 50여 명이 목숨을 잃고 화재 진압과 복구에 동원되었던 20여 만 명이 방사능에 피폭되었으며, 방사능 낙진이 유럽은 물론 아시아 일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체르노빌의 이웃도시인 프리피야트는 주민이 모두 피난하여 그 후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대로 변했습니다.

 

드라마 [체르노빌]의 간략한 리뷰와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대한 좀더 자세히 포스팅해 보았습니다.

 

미드 체르노빌 살아서 만난 가공할 지옥

 

발생한 사고가 행여 자신의 과오가 될까봐 축소시키려는 자들이 항상 문제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드라마 [체르노빌]의 초반부에서는 어느 분야에서나 이런 식으로 별일 아닌 것처럼 치부하려고 하는 자들이 수두룩이 등장한다. 하지만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그저 덮으려 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게다가 이것은 여느 사고도 아니고 핵폭발로 인한 방사능 유출사고다. 그럼에도 실무자가 누누이 위험을 경고해도 안전불감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여유자적한 사람들이 어처구니없기도 하거니와 정말 두렵다. ㅠㅠ

 

미드 체르노빌 살아서 만난 가공할 지옥

 

그 후에 열린 재판 과정을 보면 이 엄청난 사고가 충분히 예견된 인재였을음 알 수 있다. 상관이 지시하는 태도나 명령하는 태도를 보면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싸그리 무시해 버린다. 원자로를 눈앞에 두고도 그토록 조심성없는 태도를 보이다니. 그리고는 서로 책임을 미루고 비난이나 해대느라 정작 해야 할 말, 해야 할 행동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상관들의 고압적인 태도가 눈살이 찌푸려지게 만든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말이다.

 

그로 인해 피폭된 사람들이 셀수없이 죽어나가고 그 도시는 물론 인근도시는 완전히 폐허가 돼버렸으며 이웃나라에도 큰 피해를 준 소련이다. 하지만 소련은 자국의 범죄를 최소화시키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나머지 원자로도 검사해 봐야 하는데 계속 미루고만 있었다고 한다.그 이유가 다른 원자로들을 검사하는 건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는 꼴이 되어서였다고 하니, 악마의 집단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식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려고 하는지 정말 끔찍하다. 

 

 

몇몇 사람의 부주의와 무모함과 고압적인 자세가 만들어낸 대참사다. 그런데도 진실이 마음에 안 들면 거짓말을 하고 또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변명이나 해댄다. 그러다가 진실이 존재한단 사실조차 잊혀져 덮이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것일까?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진실 앞에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다. 늦든 빠르든 반드시 죄의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니. 그 거짓의 대가가 바로 체르노빌 대참사였던 것이다. 그 진실을 증언한 핵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는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진실을 대가를 치러야 했고.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체르노빌 방사능 유출사고에 대해 그 단초부터 자세히 알게 해준 고마운 드라마였다. 대부분의 크고 작은 사고가 사람으로 인해 빚어니고, 제 안위를 위해 진실에 눈감을 때 그 사고는 더 큰 참사를 불러온다는 큰 깨달음에 저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지옥도가 펼쳐진 것과 같은 사고 속에서도 자신의 할 바를 다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분들에게도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

 

 

증언대에 서서 진실을 말했던 발레리 레가노프는 1988년 4월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후 정확히 2년 뒤였다. 레가노프의 회고록 음성 테이프는 소련 과학계에 유포됐다. 그의 자살로 인해 테이프를 묵살하기란 불가능했다. 그의 사망 후 소련의 각료들은 마침내 PBMK 원자로 결함을 인정했다. 

 

역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증언대에 섰던 에너지 발전부 장관 보리스 셰르비나는 1920년 8월 22일에 사망했다. 체르노빌로 파견된 지 4년 4개월 후다. 그리고 체르노빌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빅토르 브류카노프, 아나톨리 댜틀로프, 니콜라이 포민은 강제노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원전 폭발 당시 기수분리기 순환 기사였던 발레리 호뎀추크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원자로 4호기 밑에 영원히 안치됐다.

 

 

소방대원들의 제복은 여전히 프리피야트 병원 지하에 남아 있다. 현재까지도 방사능 수치는 위험한 수준이다. 400명의 광부가 노심의 완전 용해를 막으려고 한 달간 밤낮없이 일했는데, 이 중 최소한 100여 명이 마흔 전에 사망된 것으로 추정된다. 60만 명 이상이 출입금지 구역 복무를 위해 징집됐다. 저장조 물을 뺀 잠수부 세 명은 영웅적인 행동의 결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오염된 출입금지 구역은 최종적으로 2,600평방킬로미터 면적에 달한다. 대략 30만 명이 자신의 집에서 쫓겨났는데, 임시적인 소개라고 했지만 아직도 그곳은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폭발 후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암 발샐률이 빠르게 치솟았다. 가장 높은 발생률은 어린이들에게서 나타났다. 체르노빌의 희생자 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추정되는 사망자 수는 4,000~93,000명이다. 소련의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1987년부터 그대로다. 31명.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91년 해체 전까지 소련을 통치했다. 2006년 그는 체르노빌의 노심 용해가 소련 붕괴의 진짜 원인일 수도 있다 썼다. 2017년 체르노빌의 새 안전 격납고 시설이 완공됐다. 건축 비용은 2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시설의 수명은 100년으로 설계되었다.

 

 

19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에서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세계원자력협회는 체르노빌 원전 사태의 원인이 원자로 설계의 결함과 부적절한 관리교육 및 안전장비에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4월 26일 토요일 새벽 1시 24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외곽에서 약 1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인 체르노빌 원전 4기에서 두 번의 큰 폭발음이 들렸다. 원자로 내부에서 나온 방사선 가스와 물질들이 약 1킬로미터 상공의 대기를 덮었고, 북유럽도 이 방사능 구름으로 뒤덮였다. 당시 실험에는 중대한 결함이 6가지 존재했고, 이로 인해 원전이 폭발하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결함들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상 냉각 시스템을 중단했던 것인 듯하다. 

 

2주 뒤인 5월 14일,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을 표명했고, 한 달 뒤에는 사태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들이 공개되었다. 당시 발레리 레가소프 라는 핵물리학자와 에너지 발전부 장관이었던 보리스 셰르비나를 통해 해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위험성이 정부에 보고되고, 뒤늦게 방대한 병력이 투입되지만, 훗날 언론이 통제된 소련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밝힌 진실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이상, 드 체르노빌 살아서 만난 가공할 지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