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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젊은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젊은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젊은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2007년 [더 로드](The Road)로 퓰리처상을 받은 코맥 맥카시의 동명소설을 조엘 코언, 에단 코언 형제가 영화화한 작품이다. 2007년에 개봉됐고 2018년 8월에 재개봉된 이 영화는 제80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을 받기도 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털끝만큼의 감정이나 동요도 없는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우연히 돈이 가득 든 가방을 주운 후 쉬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르웰린 모스(조시 브롤린), 살인청부업자 쉬거를 쫓는 보안관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이 열연을 펼치는 이 영화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쉬거는 주연보다 더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역대급 살인마로 등장해 시종일관 다음 순간을 예측하기 힘든 긴장감과 위압감, 극도의 몰입감으로 범죄 서스펜스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젊은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 르웰린 모스(조시 브롤린)

 

미국의 텍사스, 사막에서 사냥을 하던 카우보이 모스는 마약거래를 하다가 총격전이 벌어져 시체들이 가득 널부러진 사건 현장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총을 수거하던 그는 2백만 달러가 든 가방을 발견하고 훔쳐 달아나다가 죽은 줄만 알았던 한 사람이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물을 달라고 청하는 것을 냉정하게 뿌리치고 급히 그 현장에서 떠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후 아무래도 죽어가는 사람을 내버려두고 온 것이 양심에 걸린 그는 어리석은 짓인 줄 알면서도 물을 주러 다시 그곳에 갔다가 살인청부업자 쉬거를 만나 마침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독안에 든 쥐처럼 쫓기는 신세가 된다. 

 

 

살인마 쉬거는 총 대신 산소통을 들고 다니며 그것으로 살인을 하고 자물쇠도 날려버린다. 모스는 쉬거에게 쫓기면서 치밀하게 돈가방을 숨기지만, 사실 돈가방에는 추적장치가 달려 있어서 쉬거는 쉽게 모스가 숨은 곳을 찾아내곤 한다. 독특한 단발머리, 늘 들고 다니는 살인무기 산소통, 미소지은 얼굴만으로도 섬뜩한 살의를 내비치는 쉬거다.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

 

한편 늙은 보안관 벨은 이 사건을 맡아 조사를 시작한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보안관이었던 그 역시 25세 때부터 보안관을 맡아 일해 오다가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오랜 경력이 말해 주듯 사건을 꿰뚫어보는 식견과 경험으로 사건을 조사해 나가지만, 번번이 뒤늦은 행보로 헛물만 켤 뿐이다. 급격히 잔혹하게 변모해 가는 범죄와 폭력을 감당하기 어려운 데서 빚어지는 그의 시니컬한 표정에서 허무함이 엿보인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처음에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 잠시 혼란스러웠다. 제목만으로 봐서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나 생활환경이 좋지 않은 것을 문제삼고 고민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쉬거라는 무시무시한 살인마가 등장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들을 죽여나가는 서스펜스 스릴러인 것을 알고는 제목과 스토리를 일치시켜 보려고 나름 고심했다. 원제가 잘못 번역된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No Country for Old Man이라면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도 않아서 더 헷갈렸던 듯하다.

 

하지만 결국은 제목과 스토리의 일치점을 찾았다. 그렇게 일치점을 찾고 보니 오히려 아주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있을까 하는 생각 역시 한편으로는 강하게 들었다.

 

 

노인세대를 상징하는 보안관 벨이다. 범인을 열심히 뒤쫓지만, 번번이 범인의 자취만 밟을 뿐이다. 이미 나이가 들 대로 들어서 무력해지고 무기력해진 그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말만 길게 늘어놓을 뿐, 정작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다. 젊은이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이른바 꼰대의 잔소리다. 기력이 없으니 마음만 앞설 뿐, 더 이상 욕심을 부릴 수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조용히, 일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그다. 나이들어 가는 것을 서러워하면서 말이다.

 

 

모스는 중년세대의 상징이다. 아직 젊음의 혈기가 남아 있어서 되도 않는 욕심도 부려보는 그다. 그러기에 어리석게도 2백만 달러가 든 가방을 들고 도망쳐 다니는 만용에 소중한 목숨을 건다. 얼마나 악마 같은 인간이 자신을 뒤쫓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타인의 눈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리고 그 끝은 죽음에 이르는 길뿐이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본인만 못 알아차린 채 마지막 용트림을 한다.

 

 

쉬거는 용모로 봐서는 전혀 아니지만 아직 젊은 혈기에 넘치는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 무기력한 중년세대와 노년세대를 우습게 여기는 그는 젊음을 무기로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이지만,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허무적이다. 앞선 세대를 보면서 인생이란 참으로 별볼일없는 것이며, 잘사는 것도 못나는 것도 또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저 운이자 우연일 뿐 아니겠느냐고 그 광기에 넘치는 모습으로 강력히 주장하는 것 같다.

 

하긴 누구도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 오직 우연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니 쉬거처럼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 후의 삶이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 해도 평생 잘살라는 법도 없고,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운나쁜 일을 겪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때로는 남들에겐 행운으로 보이는 많은 돈과 권력이 오히려 목숨을 단축시키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삶 아닌가.  

 

 

그러고 보면 확률 50프로인 동전 맞추기 같은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인지 실제로 쉬거는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먼저 동전을 던져 상대에게 삶과 죽음을 선택하게 만든다. 앞면이 죽음이고 뒷면이 삶인지, 아니면 반대로 앞면이 삶이고 뒷면이 죽음인지도 알려주지도 않고 미리 정해놓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때그때 자기 마음내키는 대로 삶과 죽음을 택하는 것이니, 말 그대로 우연에 의한 삶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나마 운나쁜 삶을 면하려면 되도록 욕심을 덜 부리고, 위험할 듯싶은 자리에는 애초에 가지 않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쉬거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이 세상 어디에도 노인을 위한 나라든 젊은이를 위한 나라든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주유소 습격사건]의 유오성이 한 말처럼 '한 놈만 패는' 것 같은 집요함으로 모스를 쫓던 쉬거도 신호위반을 한 자동차에 치여 중상을 입고는 고통을 호소한다. 자신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억 소리도 못하고 죽어가게 만들어온 주제에, 아프다고 절절매는 꼴이 가관이다.

 

다행히(?) 그는 우연히 그 옆을 지나가던 소년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데, 이 장면은 젊은 세대도 곧 뒤에서 차고 올라오는 소년세대의 도움을 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일까? 어른들이 흔히 "너도 늙어봐라" 혹은 "너는 안 늙을 줄 아냐"며 어깃장놓듯이 하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렇듯 무기력한 노인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도 못 받고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 것에 분노해 폭주하는 노인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무기력한 노인이든, 분노하고 폭주하는 노인이든, 젊은 세대와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고립된 삶을 사는 것은 매한가지다. 이래저래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는 몇 년 후면 인구의 20퍼센트가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된다고 하는데,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면 다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이처럼 지금은 혈기에 넘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젊은 세대도 노인을 위한 삶은 없는 인생길을 뒤밟아가다가 역시 무력하고 무기력해져서 허망하게 죽어갈 것이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를 위해서도 가장 현명한 방법은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일 텐데, 이러한 깨달음은 혈기왕성한 젊음이 끝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해 고통받는 중년이 지나고 나서야 찾아드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과연 있나' 하는 문제가 남는다. 젊은 세대라고 해서 중년세대나 노년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도 없는 게 오늘날 우리네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면서부터 이미 학자금 대출이라는 덫에 목덜미를 잡힌 많은 젊은이들은 취업이 힘들어 알바로 하루하루의 삶을 연명하듯 해결하면서 결혼도 포기하고, 출산도 포기하고, 심지어 연애조차 포기한 서글픈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더 못사는 자식세대의 출현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는 말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이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젊은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