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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이선균 아이유의 [나의 아저씨]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녜요

 

이선균 아이유의 [나의 아저씨]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녜요

 

 

깔끔하게 사는 걸 잘사는 삶이라 생각했다. 남에게 신세지는 일 없이, 행여나 질척대는 일은 더더욱 없도록 이리 털고 저리 탈탈 털면서 반듯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 여겼다. 행여 본의 아니게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일이 있거나, 누군가로부터 과분하게 여겨질  정도의 도움을 받으면 하루라도 빨리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아무리 세상이 자유롭게(?) 변해간다 해도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염치'라는 것을 삶의 철칙으로 삼았던 아버지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었으리라.    

 

이선균 아이유의 [나의 아저씨]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녜요

 

그런데 지난주에 종영한 tvN의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를 보던 중 "뭘 갚아요.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녜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누군가 뒤통수라도 한 대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지안(아이유)이 병든 몸으로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마지막 길이나마 행복하게 보내드린 박동훈(이선균) 삼형제와 희노애락을 함께해 온 후계동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 꼭 갚을게요"라는 감사인사를 하자 제철(박수영)이 한 대답이었다. 

 

예전이라면, 누군가로부터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야"라는 말에 불쾌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비록 드라마 대사일망정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뭔가 마음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탁 풀어지는 듯하면서 그 자리로 따스한 물이 흘러들어와 천천히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그 동안 어렵게나마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깔끔하게 살고자 한 삶이 힘겨워서였을까? 

 

아니면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하며 이른바 '낄끼빠빠',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지지 못하는 오지라퍼들을 조금은 경멸하면서도 그들의 초긍정마인드가 부러웠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저 내 부모, 내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내 팀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그저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일이 생기면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5형제처럼 득달같이 달려오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끈끈한 인간미가 그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배경인 후계동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누가 뭐라든 지안의 편을 들어주고, 지안이 심지어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을 듣고도 오히려 나 같아도 그랬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따뜻한 가슴으로 감싸안아주는 그들. 그들의 그 얼척없는 사랑은 지안의 무표정한 얼굴에 엷게나마 미소를 떠오르게 만들고, 꽁꽁 얼어붙은 입에서 놀랍게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만든다. 그뿐인가. 이 세상에는 자신이 그 동안 겪어온 사람들처럼 표독하고, 폭력적이고, 이기적이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저 이용할 도구나 수단으로만 보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속을 툭 터놓고 마음껏 기대도 기꺼이 얼싸안아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믿음마저 들게 만든다. 

 

병든 몸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해서 손녀딸 지안과 수화로 말을 주고받아야 했던 할머니(손숙)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면서도 할머니를 다른 장소로 옮겨가기 위해 어두운 밤을 틈타 마트에서 훔쳐온 카트에 태우고 허겁지겁 뛰던 지안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더없이 외롭고 힘겨운 지안을 지켜주던 마지막 보루였다. 그렇기에 지안에게 있어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이제 얼마나마 고생을 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결코 상쇄될 수 없는 깊디깊은 절망이었다. 다행히 동훈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노인장기요양원에서 가서 치료도 받으며 잠시나마 제대로 쉴 곳을 찾지만, 결국 가엾은 손녀를 혼자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 

 

 

그런 할머니의 빈소가 풍성할 리 없다. 그러자 그 빈약한 빈소를 바라보던 동훈의 형 상훈(박호산)은 집에 계시는 어머니(고두심)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돈을 보내라고 한다. 뇌물을 받고 회사에서 잘리는 바람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통장도 못 만드는 상훈이 그 동안 5만원권을 한 장 두 장 방바닥에 깔아가면서 모은 돈이다. 그 피 같은 돈을 그는 썰렁하기 그지 없는 할머니의 장례를 위해 아낌없이 턱 내놓는다.

 

 

할머니의 빈소는 생전 만나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귀한 마음 덕분에 이렇듯 풍성해졌다. 최근 일본에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가족이나 친구가 있어도 그들에게 폐끼치기가 싫어서 신원을 밝혀줄 소지품을 없앤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데, 모든 인연을 끊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 해서 절연사(絶緣死)라고 부른다고 한다. 

 

모든 인연을 끊고, 심지어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폐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죽고 싶어하는 그들이 만일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녜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조금쯤은 생각을 달리해 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주변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삶을 마치기 위해 절연사를 택하는 절박한 심정의 사람들을 두고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깔끔하게만 사는 것이 올바른 인생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좀더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마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안타깝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겹도록 힘들게만 살아온 지안의 할머니가 손녀딸을 돕는 사람들을 향해 “참 좋은 인연이다. 귀한 인연이고. 가만히 보면 모든 인연이 다 신기하고 귀해”라며 인연을 귀하게 여기면서 돌아가실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복받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장례 때에는 사람 부조도 큰 부조라는 말도 있듯이, 상훈과 동훈의 동생 기훈(송새벽)은 후계동 사람들이 빈소를 찾아오도록 연락을 취한다. 썰렁하던 장례식장은 우르르 몰려오는 사람들 덕분에 북적북적대는 분위기로 바뀐다. 이 또한 할머니 가시는 길을 풍성하게 해준 또 하나의 따스한 마음씀이었다.

 

 

상훈은 자신이 한 일에 스스로 감동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한다. 비록 큰돈은 아닐지언정 전 재산을 다 내놓고도 마치 로또라도 맞은 듯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일 다시 무일푼의 거지로 돌아간다 해도 기쁘기만 하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돈이란 바로 그렇게 쓰라고 열심히 벌고 모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정은 더없이 깊은 기훈 또한 안 그런 척하면서도 남들을 돕는 일에는 망설임이라곤 있을 수 없다.

 

 

할머니 장례식을 마친 후 상훈과 지안은 서로 각자의 길을 간다. 이 드라마는 첫 회부터 [나의 아저씨]라는 제목 때문인지 중년남자와 아직 나이어린 여자와의 불륜을 연상케 한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롤리타증후군까지 들먹이면서 또 하나의 막장드라마가 탄생한 것뿐이라는 말도 많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남자와 여자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저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꼭 남자여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꼭 여자여서 애정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모를 상처와 애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아픈 상처를 다독여주는 인간적인 사랑이다. 그렇기에 지안과 동훈은 할머니의 장례를 마친 후 서로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기꺼이 돌아설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둘 다 더없이 밝은 얼굴로 재회한다.   

 

 

잠시 짧은 이야기를 나눈 후 두 사람은 따스한 미소와 악수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지안도 동훈도 이젠 충분히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혹여 세상살이에 늘상 따르게 마련인 어려움과 고난에 처하는 일이 생긴다 해도 마음으로나마, 아니, 실제적으로도 도움의 손길을 뻗으면 기꺼이 달려와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소개글을 보면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라고 되어 있다. 바로 그 소개글처럼 동훈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이 보여준 사람내음 그득한 모습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 또한 가슴을 시도때도없이 툭툭 치고 들어와 울컥해지곤 했다. 남들이 보기엔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더 건질 것도 없을 것 같은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어떻게 본유의 인간성을 저버리지 않고 그토록 따스한 가슴으로 서로를 치유할 수 있었을까. 가슴을 울리는 대사들로 [나의 아저씨]를 뛰어난 드라마로 만들어주신 박해영 작가님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그 동안 두 달가량을 수요일과 목요일이면 [나의 아저씨]를 시청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지안과 상훈처럼 나 역시 그리 깔끔한 삶은 아니어도 좋으니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이상, 이선균 아이유의 [나의 아저씨]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녜요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