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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가혹한 현실을 이기는 판타지의 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가혹한 현실을 이기는 판타지의 힘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를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도 늘 버거운 탓에 책이나 영화, 드라마도 SF나 판타지처럼 공상으로 가득하거나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이랄까 허황되게 느껴지는 것에는 크게 흥미가 없는 편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열화와 같은 호응을 보인 [해리 포터 시리즈]조차도 그냥 의무적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봤었다. 그 때문에 가위손, 비틀쥬스, 배트맨 시리즈, 혹성 탈출,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놀라운 상상의 세계를 그려내는 데 가히 천재적인 팀 버튼 감독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도 개인적으로는 크게 흥미가 끌리지 않았지만, '의무적으로' 보러 갔다. 솔직히 예매순위 1위라는 말에도 약간 혹해서, 혹여 좋은 영화를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챙겨본 점도 있었다. 

 

역시나 내 취향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미스터리 판타지를 표방한데다 주인공이 여러 명 등장해서 그렇지, 재치있고 영리한 어린 꼬마가 우락부락하지만 멍청한 도둑들을 마음껏 곯려먹던 맥컬리 컬킨 주연의 영화 [나 홀로 집에]가 연상되기도 했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가혹한 현실을 이기는 판타지의 힘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내용으 정도만 간략히 소개하면, 할아버지 에이브(아브라함 포트만)의 죽음의 단서를 쫒던 주인공 제이크(에이사 버터필드)는 시간의 문을 통과해 놀라운 비밀과 마주한다. 시간을 조정하는 능력을 가진 미스 페레그린(에바 그린) 과 그녀의 보호 아래 무한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적 할로게스트가 이들을 해치기 위해 뒤쫓고 있다. 

 

미스 페레그린과 제이크를 비롯한 이상한 집의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가진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여 할로게스트에 맞서는데, 주인공 제이크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할로게스트를 보는 능력을, 공기보다 가벼운 몸이 공중에 뜨는 것을 막기 위해 언제나 무거운 납구두를 신고 있는 엠마는 구두를 벗으면 어디든 날아오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에녹, 식물을 마음대로 크게 키워내는 피오나, 머리 뒤에 달린 입으로 식사를 하는 클레어, 손끝에서 불을 뿜어내는 올리브, 입에서 정체 모를 곤충을 뿜어내는 휴 등 다양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여느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팀 버튼의 마법 같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이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보살피는 미스 페레그린 역을 맡은 에바 그린은 신비로우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대단한 카리스마에, 에바 그린이 아닌 다른 미스 페레그린은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매력적인 모습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눈길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45주 연속 선정될 만큼 인기였던 랜섬 릭스의 소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영화로 만든 팀 버튼 감독은 인터뷰에서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자신이 남들과 다르거나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 또한 어릴 때 ‘별종’ 취급을 받았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다"며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특이함에 대한 찬가>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 <남들과 다른 개성을 지닌 아웃사이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하긴 자신과 다르면 그것이 비록 남다른 능력일지라도 비정상으로 취급하거나 찍어눌러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무엇보다도 놀라운 팀 버튼의 상상력은 시간을 조정하는 능력과 새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임브린>(미스 페레그린 역의 에바 그린)을 통해 24시간을 주기로 리셋되는 <루프>를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오랜 옛날부터 늘 많은 사람들이 꿈꿔 온 이상향, 즉 유토피아를 연상케 하는 곳이 바로 루프다. 이곳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살기 좋으며, 끔찍한 전쟁이니 굶주림 같은 가혹한 현실과는 완전히 차단된 세상으로, 여기서 아이들은 미스 페레그린의 보호 아래 그저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기만 하면 된다. 힘겹고 어두운 현실일지라도 상상에서나마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펼치면서 한 줄기 향기로운 훈풍을 느끼면 답답한 숨통이 트일 거라는 팀 버튼표 판타지인 셈이다.

 

 

[그림동화 X파일]이라는 책이 있다. 그림 형제가 쓴 [빨간 모자]와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 두 편을 분석한 내용으로, 동화의 이면에 깃든 잔혹하고 무서운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아름다운 동화를 굳이 적나라하게 파헤칠 이유가 있을까 의구심을 가질 독자들을 의식해서인지 <정말로 알고 싶지 않은 그림 동화의 으스스한 비밀>이라는 부제까지 붙어 있는 이 책 중 특히 [헨젤과 그레텔]은 어린이 살인과 카니발리즘(人肉)을 먹는 풍습)을 낱낱이 분석해 나간다. 가난에 찌들린 부모가 자신들부터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본능으로 자식을 외딴숲에 버리고 살해하는 것을 넘어 카니발리즘에까지 이른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그야말로 끔찍함 그 자체였는데, 얼마 전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게 되는 기회를 가지면서 그때만큼은 끔찍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현실이 나이들어 가면서 사실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눈이 생긴데다, 카니발리즘까지는 아니어도 부모에 의한 어린이 유기(遺棄)나 살해에 관한 뉴스를 요즘은 현실에서도 이따금 듣게 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20년도 채 안 된 사이에 사회가 참으로 급격하게 사악하게 변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든다.  

 

 

하지만 이렇듯 무자비한 진실을 파헤쳐 잔혹한 현실에 맞서게 하는 작가도 있지만 안데르센처럼 가혹한 현실을 아름다운 동화로 승화시킨 작가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자신이 쓴 동화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았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집안 대대로 유전되는 정신병으로 죽었고, 어머니 역시 거렁뱅이 생활을 하다가 정신병원에서 사망했다.

 

부모로부터 이런 유전자와 불우한 환경을 물려받은 안데르센은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몸부림쳤으며, 사랑하는 여성들에게도 매번 구애를 거절당해서 단 한 번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숫총각으로 일생을 보냈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이렇듯 비참하고 불행한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동화라는 창작의 세계에서 그 도피처를 구했다.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야말로 자신의 저주받은 피를 깨끗이 정화시켜 주는 유일한 안식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안데르센의 아름다운 동화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동화로 승화시킨 천재작가의 선물인 셈이다.  .

 

 

팀 버튼의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도 굳이 말하자면 안데르센이 우리에게 선물한 동화들처럼 가혹한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아름다운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일 나치의  폭격도, 할로게스트의 공격도 저마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혹은 서로가 가진 능력을 합쳐서 거뜬히 이겨내고 매일매일 행복과 기쁨과 사랑으로만 가득한 유토피아 같은 루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힘겨운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고, 나아가 다시 기운을 내어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판타지 없이는 이 고약한 세상을 견뎌내기 힘들 거라는 것을 팀 버튼 감독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상,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가혹한 현실을 이기는 판타지의 힘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