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김명민보다 더 돋보였던 김영애의 차가운 손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김명민보다 더 돋보였던 김영애의 차가운 손

 

 

[신도 버린 사람들]의 저자 나렌드자 자다브는 인도 푸네대학 총장으로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로도 명망높은 사람이다. 누구든 그런 위치에 오르기까지에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하겠지만, 나렌드자 자다브가 처해 있던 상황에서는 거의 죽음도 초월한 정도라고 할 만큼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조국 인도에서 Untouchable,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말 그대로 <접촉할 수 없는 천민>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즉 그림자만 닿아도 오염된다고 해서 학대받고 박해받는 불가촉천민에서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지도자로 우뚝 선 것이다.

 

인도의 힌두사회에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라는 네 개의 계급으로 나누어진 카스트 제도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온 인류의 평등을 부르짖는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더 황당한 일은 이 네 개의 계급 밑에 또 한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달리트(Dalit), <만질 수도, 생각할 수도, 볼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인도인구 12억 중 불가촉천민이 무려 1억 8천여 명이 똑같은 생명을 부여받고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되 제대로 된 인간 대접은 전혀 기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로 시체 처리, 가죽수리, 길거리 청소, 변소 청소, 노동 등으로 근근히 생계를 꾸려가며 죽지 못해 사는 이들은 심지어 다른 계급의 사람과 신체접촉을 했다는 이유로 돌과 몽둥이로 몰매를 맞아 죽거나 총으로 죽임을 당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김명민보다 더 돋보였던 김영애의 차가운 손

 

명품배우 김명민의 멋진 연기를 보러 간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를 관람하는 내내 미안하게도 김명민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배우 김영애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영애의 <차가운 손>이었다. 얼굴엔 억지미소나마 엷게 떠올리고 있지만 빗장이라도 지른 듯 단단하게 마주 포개잡은 두 손은 마치 자신이 이룬 왕국 내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불가촉천민으로 여기는 듯 행여 누구와 손끝이라도 닿을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몹시도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대해제철 회장인 그녀는 바로 그녀 자신이 억울하게 사형자로 누명을 씌워 교도소로 보낸 택시기사 순태(김상호)의 딸 여주(김향기)가 아버지의 무죄를 하소연하며 다가오자 벌레라도 닿는 것처럼 뒷걸음질치고, 다가오던 소녀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위급상황에서도 결코 손을 내밀어 잡아주지 않는다. 아니, 손을 내밀어 붙잡기는커녕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져 널부러진 소녀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 좀 치워줘요"라고 말한다. 

 

그 순간 몇 년 전에도 이분이 이와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영화는 아니고 [로열패밀리]라는 드라마에서였는데, 자신과 신분이 다른데도 침입자처럼 자신의 왕국에 발을 들이민 며느리를 기어이 내치면서 "이것 좀 치워줘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들 눈엔 자신의 패밀리가 아닌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무슨 가구나 소파처럼 물건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인천을 지배하는 대기업 대해제철의 실세 ‘사모님’이다. 한때는 모범경찰이었지만 동료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경찰 옷을 벗고 지금은 ‘신이 내린 브로커’로 펄펄 날아다디는 필재(김명민)가 맞서싸워야 할 강적이다. 지독하리만큼 차갑고 독해서 냉혈한처럼 보이는 그 모습은 얼음나라의 왕녀를 닮았다. 탐욕이 극에 치달했던 마이더스의 왕의 손이 닿는 것마다 모두 황금으로 변했다면, 이 얼음왕녀의 차디찬 손길이 닿는 것은 모두 얼음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우아하고 고상한 척하며 인품을 걸치려 해보지만 내면에서 들끓는 짜증으로 인해 신경질적으로 씰그러진 입매, 늘 뭔가 못마땅해서 습관적으로 찌푸리다 보니 생긴 고약하고 심술궂어 보이는 미간의 주름은 아름다운 외모와 넘치도록 풍요로운 경제력을 가지고서도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솔선수범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덕망 높은 사모님 행세를 하고 있지만 안으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해제철 며느리 살인사건>의 배후에 서 있는 그녀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대기업의 실세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의 손은 결코 더럽히지 않는다. 하긴 그 동안 대해제철 장학생으로 키워온 정재계 인사들을 손가락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데 자기 손을 더립힐 이유가 뭐 있겠는가? (권종관 감독은 2002년 영남제분 여대생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영화를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

 

 

경제적으로는 넉넉지 못해도 딸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그득해서 소풍을 가는 딸을 위해 도시락을 싸가지고 나오는 택시기사 김상호다. 바로 이날 그는 대해제철의 며느리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딸이 보는 앞에서 체포돼 사형수로 감금이 된다. 하지만 딸을 위해 도시락을 싸줄 수 있는 손은 따뜻한 손일 게 분명하다. 그는 그 따뜻한 손으로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달라고 편지를 쓰고, 그 편지는 김명민의 따뜻한 손에 가닿는다. 그리고 김상호와 김명민의 따뜻한 손과 김영애의 차가운 손이 맞서 팽팽하게 벌인 대결은 결국 김상호와 김명민의 따뜻한 손의 승리로 끝나 김상호는 무사히 교도소에서 풀려나온다.

 

 

따뜻한 손이 있는가 하면 차가운 손이 있고, 붙잡아주고 안아주는 손이 있는가 하면 떨쳐내고 밀어버리는 손이 있다. 흔히 손이 차가우면 마음이 따뜻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 경영학 교수 로렌스 윌리엄스 등은 임상실험을 통해 따뜻한 온도가 심리적인 따뜻함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냈는데, 따뜻한 물체를 만지고 나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너그러워져서 더 다정하게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그룹은 따뜻한 커피가 든 컵을, 또 한 그룹은 아이스커피가 든 컵을 잠깐 들어달라고 한 후 커피를 들어달라고 부탁한 사람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묻자 잠깐이나마 따뜻한 컵을 들었던 사람들이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따뜻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사람들에게 심리적 따뜻함을 전달해 준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버트란트 러셀은 "행복의 비결은 폭넓은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관심을 그는 사물이나 사람에게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부족한 듯해도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서 사는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라는 것이다. 따뜻한 반응은커녕 차갑게 밀쳐내버리기만 하면서 사는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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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장 암적인 존재는 갑들 곁에 빌붙어 살면서 갑들이 마구 갑질을 해댈 수 있도록 멍석을 펴주는 박소장(김뢰하) 같은 사람들이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면서 대해제철 사모님 곁을 지키며 살인도 서슴지 않지만, 결국은 쓰임이 다했다 싶은 순간 사모님이 쏘는 총 한 방에 간단하게 죽어가는 어리석은 자의 전형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는 속담이 여기에 걸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갑들이 설치는 꼴보다 갑도 아닌 주제에 갑들에게는 연신 굽실대면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을들을 더 앞서서 괴롭히는 이들이 더 눈꼴실 때가 많다. 그뿐인가. 갑들이 자기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을 때 선뜻 나서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족속들이다.

 

이상,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김명민보다 더 돋보였던 김영애의 차가운 손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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