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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동주 찬란한 부끄러움을 노래한 윤동주(강하늘)

 

동주 찬란한 부끄러움을 노래한 윤동주(강하늘)

  

 

언제 별을 보았던가? 아니, 별은커녕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하늘을 우러러본 것도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준익 감독 영화 [동주]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동주(강하늘)가 읊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부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서정 가득 넘치는 시어(詩語) 하나하나에 그렇게나 가늠할 길 없는 아픔과 고뇌, 고통의 삶이 깃들어 있었던가 생각하니, 좀 부끄러웠다. 시의 주제니, 시의 본뜻이니 하며 공부했어도 겉핥기식으로 했던 탓인지 한 편의 영화 [동주]가 주는 아픔만큼 짙은 아픔은 느끼지 못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묵화 같은 흑백영화의 담백함이 그 아픔을 안으로 삭여넣은 듯해서 그 여운이 더 컸던 탓도 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 서거 71주기를 맞아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어둠의 시대 속에서도 시인의 꿈을 품고 살다 간 윤동주의 청년시절을 정직하게 그려낸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 보게 된 것은 <부끄러움>에 대해서였다. 물론 그 부끄러움이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수줍음이나 창피함 수준의 부끄러움은 아니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분노로 점철되었던 일제강점기에서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사람들이건 아니면 이미 독립을 이룬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서민이건, 혹은 직업불문, 남녀노소를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존감, 자긍심, 자부심을 의미하는 보다 근원적이고 존엄한 본연의 부끄러움, 그리하여 그 부끄러움을 잃으면 몸은 살아 있으되 정신과 영혼은 불꺼진 창이 돼버린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 그런 부끄러움이다.      

 

동주 찬란한 부끄러움을 노래한 윤동주(강하늘)

 

중딩시절 아버지의 책장에서 꺼내 읽는 책에서 이 부끄러움을 잃게 되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따분한 하루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보낸 그 남자는 엷은 어둠이 내리자마자 입던 옷차림 그대로 슬리퍼를 찍찍 끌며 동네 포장마차로 향한다. 거기서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한잔 하던 그에게 몇 명의 건장한 사나이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붙잡아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가 끌려간 곳은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바로 저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인간으로서는 차마 견뎌내기 힘든 굴욕과 모멸을 겪다가 사방팔방으로 그를 수소문해서 찾은 가족들 덕분에 간신히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후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가차없이 날아드는 몽둥이질 앞에서 잘못한 것도 없이 땅바닥을 기라면 기고, 누우라면 눕고, 뛰라면 뛰고, 허벅지를 겨냥해서 날아드는 삽자루 앞에서 무릎 꿇고 제발 살려만 달라고 빌었던 기억, 시키는 대로 안 했다고 밥을 안 줘서 굶기를 밥먹듯이 하다가 결국 배고픔을 못 견뎌 눈앞에 쏟아놓은 밥을 개처럼 엎드려 핥아먹었던 기억...들을 도무지 지울 길 없어서였다. 본인이 굳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부끄러움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 부끄러움을 잃었던 자신이 못내 부끄러워 더 이상 생을 이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부끄러움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지독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한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하기보다는 꾸역꾸역 가슴속으로 잘 쟁여넣고 승화시켜서 과거의 굴욕을 기어이 떨쳐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방법은 이렇듯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시인 윤동주라면 오로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비겁한 삶보다는 부끄러움을 잃지 않는 삶 쪽을 택했을 것 같다.        

 

 

맹자의 4단(四端)은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네 가지 마음씨, 즉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말한다. 측은지심이란 인(仁)에서 우러나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 즉 곤경에 처한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말하고 사양지심이란 예(禮)에서 우러나는 사양하는 마음, 즉 남을 공경하고 사양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리고 수오지심이란 의(義)에서 우러나는 부끄러워하는 마음, 즉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말하고 시비지심이란 지(智)에서 우러나는 시비를 따지려는 마음, 즉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이 중 수오지심이 시인 윤동주가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부끄러움과 닮아 있다. 즉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인간의 부끄러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고난 본성이다. 다만, 그 본성이 맑게 드러나느냐 아니면 흐릿하니 가려져 있느냐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하늘은 부끄러움이고 양심은 그 하늘, 즉 부끄러움을 밝히는 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하기에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해 있는 하늘이지만, 그 하늘을 우러러보지 않는다면 내면의 부끄러움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고, 부끄러움을 볼 수 없으니 별처럼 반짝이는 양심은 더더군다나 볼 길이 없다. 즉 요즘처럼 주구장창 대기권에 머물러 있는 미세먼지가 하늘을 희뿌옇게 만드는 것처럼 정체도 알 길 없는 숱한 욕망들이 우리의 부끄러움을 뒤덮어 우리 내면의 별처럼 반짝이는 양심을 못 보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다이아몬드도 갈고 닦아야 반짝이듯이 우리의 양심과 부끄러움도 늘 들여다보고 닦아주고 매만져주어야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는 법인데 말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흑백영상으로만 진행되는데, 이준익 감독은 흑백사진으로만 봐오던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흑백 화면을 선택했다고 한다. 흑백은 컬러에 비해 배우에게만 오롯이 집중해 캐릭터의 심리나 상황을 더욱 주목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어서 시대에 아파하는 청춘 동주와 몽규의 감정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주효해서, [동주]의 흑백화면에서는 몰입하게 만드는 깊이와 강인한 힘만이 아니라 저마다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는 여운과 여백의 미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지나칠 만큼 자극적인 내용도 마다않는 영화들이  판치는 요즘, 눈을 흐리게 만드는 과장된 거품을 싹 걷어내고 속알맹이, 민낯만의 영화를 내놓은 이준익 감독의 선택과 용기에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강하늘과 윤동주

 

 

맑고 푸르른 식물처럼 깨끗하고 담백한 느낌을 주는 윤동주 역을 요즘 잘나가는 배우 강하늘이 맡았는데, 강하늘의 바른생활 사나이 같은 착하고 반듯한 이미지와 아주 잘 맞아떨어져 캐스팅 면에서는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든다. 모습으로나 이미지로나 윤동주를 꼭 닮은 강하늘이라는 배우 자체만으로도 윤동주의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낭독하는 윤동주의 시들도 특별한 기교 없이 담담하고 진정성 어린 목소리 때문인지 더 가슴을 잔잔하게 파고들었다.

 

강하늘은 “영화를 찍으면서 윤동주 시인 역시 질투, 사랑, 미움, 행복을 느끼는 인간적인 면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촬영 전부터 윤동주의 시집과 관련 서적을 읽고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와 북간도 사투리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은 그는 대사에 감정을 담기 위해 먼저 냉장고 앞에 대사를 붙여놓고 일본어와 사투리 대사를 외울 만큼 치열하게 연습했으며,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점점 수척해지는 동주를 표현하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또 일본군에게 강제로 머리카락이 잘리는 장면에서 실제로 삭발을 자처했으며 극중 시를 쓰는 모든 장면에서도 자신이 직접 글씨를 쓰는 등 동주에게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덕분에 시인 윤동주에 빙의된 듯한 강하늘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    

 

 박정민과 송몽규

 

 

송몽규 역을 맡은 박정민도 서로 느낌이 많이 흡사하다. 뒷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와 함께 옥사함으로써 윤동주와 일생을 고스란히 동행한 박정민은 윤동주의 고종사촌이기도 하다. 윤동주와 박정민 두 사람 다 문학에 심취하고 소질을 보였지만 송몽규는 특히 정치적 성향이 강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곧바로 행동으로 나타냈다. 

 

박정민은 “나 역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주변을 개의치 않고 하는 편이어서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자신의 뜻을 이뤄나가려는 몽규와 닮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작품에 매료돼 홀로 중국 용정에 있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생가를 찾아갈 정도로 캐릭터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열의를 보였고, 덕분에 더욱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고향에서의 연설 씬과 일본에서 유학생을 모아놓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장면은 박정민의 피나는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한다. 입에 붙지 않는 북간도 사투리로 긴 연설을 해야 했던 그는 감정의 결까지 살려낸 대사로 씬의 완성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물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부모님을 만나는 장면을 앞두고는 기력이 쇠해진 몽규 역을 잘 해내기 위해 이틀 전부터 밥과 물을 전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윤동주의 삶과 문학(고운기 시인의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참조)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시인 윤동주는 명동소학교와 용정의 광명중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 문과를 졸업했다. 1944년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독립운동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가 1945년 2월 16일 큐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시신은 가족들에게 인도되어 그 해 3월 장례식을 치른 후 간도 용정에 유해가 묻혔다. 

 

그가 죽고 10일 뒤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 오라'는 전보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인수, 수습하러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큐슈(九州帝大)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 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후일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이를 두고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온 이것을 본 집안 사람들의 원통함은 이를 갈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9세에 옥중에서 요절한 그는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으로 인한 사망인 것으로 사료된다는 견해가 있으며 또한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확실하지 않다. 일제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했다.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윤동주 집안은 1941년 말 '히라누마'(平沼)로 창씨한 것으로 돼 있다. 일본 유학에 뜻을 둔 윤동주의 도일을 위해서는 히라누마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것이다. 창씨개명 후 윤동주는 매우 괴로워해서 고통과 참담한 비애를 그린 시 <참회록>(懺悔錄)을 썼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이상, 동주 찬란한 부끄러움을 노래한 윤동주(강하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