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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검사외전 꽃미남사기꾼 강동원의 재롱잔치와 다혈질검사 황정민의 고해성사

 

검사외 꽃미남사기꾼 강동원의 재롱잔치와 다혈질검사 황정민의 고해성사

 

 

거친 수사로 악명을 날리는 다혈질 검사 변재욱(황정민)과 전과 9범인 꽃미남 사기꾼 치원(강동원)의 버디 무비 [검사외전](이일형 감독)은 오락범죄물답게 가족들과 함께 두 시간 남짓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에 딱 좋았다. 아마 설연휴여서 여느때보다 마음이 느긋하고 시간이 여유로웠던 것도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후의 느낌은 역시 찝찝했다. 마치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들어 있네?"라는 말이 회자됐던 것처럼 포장이 빵빵해서 잔뜩 기대를 가지고 뜯어보니 정작 과자는 몇 개 안 되고 질소만 가득 채워진 과자봉지를 보고 실망한 느낌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다행히 그 몇 개밖에 안 들어 있는 과자가 그런대로 맛은 있어서 과대포장쯤 그럭저럭 눈감고 지나갈 만했다는 것이 가장 솔직한 표현일 것 같다.

 

검사외전 꽃미남사기꾼 강동원의 재롱잔치와 다혈질검사 황정민의 고해성사

 

종횡무진 베테랑 형사로 멋진 활약을 펼쳐보이던 황정민은 히말라야로 가서 휴먼원정대를 이끄는 대장으로 인간미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어느새 다시 돌아와 열혈검사로 거칠게 범죄자들을 때려잡다가 취조 중이던 피의자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살인누명을 쓰고는 15년형을 받고 감옥에 간다. 국제시장 윤덕수 할아버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아무리 대단한 황정민이라 한들 매 영화에서 비슷비슷한 캐릭터로 겉옷만 갈아입고 나온 듯한 모습에서는 더 이상 신선함을 바라기가 어려웠다. 

 

물론 이경영, 오달수, 배성재 등 황정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다작 배우들도 많다. 하지만 이 배우들은 각 영화에서 꽤 인상깊은 연기를 펼쳐 기억에 오래 남아 있어도 영화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는 것은 아니어서 그런지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주연급일 경우는 좀 문제가 다른 것 같다. 매 영화마다 전혀 다른 캐릭터로 나오지 않는 이상 식상함을 떨쳐버릴 수는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에는 연기력으로 잘 커버해 왔다 해도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황정민을 누구보다 좋아하기에 조심스러운 염려를 해본다.

 

 

감옥에 들어간 황정민은 자신에게 살인누명을 씌운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 복수를 하겠다고 이를 갈던 중 5년 후 자신이 누명을 쓰게 된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꽃미남 사기꾼 강동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자 황정민은 자신의 검사 노하우를 총동원하여 강동원을 무혐의처리해서 감옥 밖으로 내보낸 후 자신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도록 한다. 하지만 워낙 자유분방한 사기꾼으로 살아온 강동원이기에 황정민에게서 벗어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면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재롱잔치를 펼친다.

 

영화관에 간간이 터졌던 웃음은 모두 강동원 덕분이었다. 특히 선거유세장에서 강동원이 보여준 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탁 풀고 함께 한바탕 즐기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할 만큼 유쾌했다. [검사외전]이 황정민, 강동원의 투톱 영화라고 하지만, 만일 강동원이 아니었더라면 영화의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강동원의 활약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많았다.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많은 사람들에게 더없는 신뢰감을 주는 캐릭터로 인식되어 온 이성민은 [검사외전]에서는 오랜 경력의 베테랑 검사이자 황정민의 상사인 우종길 역으로 출연한다. 강한 역은 했어도 악인 역을 한 것은 본 적이 없는 이성민은 자신의 정치적 발판이 흔들리게 될 위험에 처하자 뒤로는 부하검사 황정민에게 살인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내면서도 앞으로는 그 죄를 밝혀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해주겠다고 어르며 가차없는 배신을 때린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선한 사람의 모습과 악한 사람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미소지은 남자]의 역을 충실히 해낸다. 미소지은 남자란 겉으로는 선한 척하면서 뒤로는 악행을 서슴지  않는 일명 두 얼굴의 사나이를 빗댄 말이다.

 

늘 한결같은 믿음을 주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이성민의 부드러운 인상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악행을 저지르다 보니 표정이 일그러지고 고약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최근 상영 중인 [로봇, 소리]의 아버지 이성민과 [검사외전]의 악질검사 이성민만 놓고 보더라도 어떻게 같은 사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매서운 독기를 뿜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든 나이 마흔을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이 때문에 나온 것이리라. 그 사람이 매일 생각하고 매일 말하는 것이 바로 그 얼굴에 그대로 씌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살인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던 초기에 황정민은 그 동안 자신의 손으로 감옥에 보낸 죄수들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엄청난 구타를 당한다. 물론 황정민이 죄도 없는 사람을 감옥에 보낸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함부로 다루고 빨리 불지 않는다고 마구 주먹을 휘둘렀던 대가를 고스란히 치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구타를 당하면서 황정민은 어쩌면 자기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는 데까지도 생각이 미친다. 아픈 사람의 심정을 자신도 아파봐야 비로소 아는 것처럼, 가차없이 날아드는 주먹이 얼마나 아프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자신이 직접 당해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개과천선해서 지난 세월과는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더욱 복수의 칼을 가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다행히 황정민은 전자의 사람이다. 강동원을 이용해서 자신의 살인누명을 말끔히 벗은 후 그가 한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법정에서 '감옥에 들어오기 전 검사생활을 하면서 폭력검사로 악명을 드높였던 것, 진정으로 뉘우친다, 지난 5년간 감옥에서 지낸 것으로 그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긴 것이다.

 

까라면 까는 게 대한민국 검사이고, 정의보다 불의를 위해 더 자신들이 갈고 닦아온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검사로 알려져 있는 요즘이기에 그 말이 마치 검사들의 고해성사처럼 들린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이상, 검사외전 꽃미남사기꾼 강동원의 재롱잔치와 다혈질검사 황정민의 고해성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