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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경주 최부자집의 육연과 가거십훈, 장기 경영전략 원모심려

 

경주 최부자집의 육연과 가거십훈, 장기 경영전략 원모심려 

 

 

'부자병'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돈많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모든 것이 넘치도록 충족되다 보니 선악의 개념조차 없어져 범법행위나 차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몹쓸짓을 저지르고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질병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최악의 갑질로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던 사람들도 필시 부자병에 걸려 있었던 모양입니다. 병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돈이 많다고 해서 다 그런 갑질을 해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떠돌던 바이러스가 신체의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들에게 침투해 병을 일으키듯이, 부자병 바이러스도 뭐든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정신구조를 가진 사람들을 골라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여느사람들로서야 부자병에 걸려도 좋으니 제발 돈만 많았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부자병에 걸려 갑질을 해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도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이유도 남들에게 마음껏 갑질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가족은 물론 주변사람들과 돈 걱정 하는 일 없이 잘 살고 싶기 때문일 테니까요.

 

경주 최부자집의 육연과 가거십훈, 장기 경영전략 원모심려

 

이 부자병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휘트만(F.C.Whitman)인데 풍요(Affluence)와 질병(Influenza)을 조합해 어플루엔자(affluenz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풍요로운 부모의 재산인 만큼, 자식이 이 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물론 자식을 위해서라면 이 세상에 없는 것도 만들어서 갖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인데, 없어서 못해주는 것도 아니고 부를 잔뜩 쌓아두고도 자식들에게 절제심을 가르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말도 있듯이, 자식대에서도 부를 유지하고 부자병이라는 인면수심의 질병에 걸리는 일 없이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삶을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 선조 중에는 참다운 부자의 삶을 통해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가문이 있습니다. 3대를 못 간다는 부를 무려 5백년간이나 지켜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경주 최부자집입니다. 동의대 경영학과 최해진 교수의 [경주 최부자 5백년의 신화]를 통해 알아본 경주 최부자집의 육연과 가거십훈, 장기 경영전략 원모심려입니다. 읽어보시면 부자만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누구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침이기도 해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육연(六然) - 참부자를 위한 6가지 행동지침

 

육연(六然)은 인간이 행동하는 데 있어 자연의 순리대로 행하라는 행동지침이다. 이 육연은 누가 정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부자 가문에서는 소중하게 생각하고 생활의 지침으로 엄하게 지킨 교훈이었다. 

 

1 자처초연(自處超然) - 혼자 있을 때도 정도를 걸어라

자처초연이란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처신하는 자세를 말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삼가고 조심해도 혼자 있으면 자칫 방심하거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따라서 혼자 있을 때도 스스로 초연하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2 대인애연(對人靄然) -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라

남을 대할 때는 자연의 온화한 기운이 우리를 감싸듯 부드러움을 가지고 화기애애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또한 너무 시시비비를 명쾌하게 하여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도 삼가는 것이 좋다.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세상은 곧 냉혈한 동물사회로 변해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고 만다.

 

3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는 밝은 마음을 가져라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일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일은 쉬운 일도 있고 어렵고 힘든 일도 있다. 또한 현재의 일도 있고 앞으로의 일도 있다. 이때 쉬운 일이나 반복되는 현재의 일을 할 때에는 잔잔한 맑은 물이 소리없이 흐르듯 조용히 행동하되, 일이 없을 때에는 밝은 마음으로 조용히 원래대로의 모습을 가지라는 것이 무사징연이다. 무슨 일이든 억지로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순리가 무엇인가를 알아 그대로 행하는 것이 진정한 사람의 도리다.

 

4 유사감연(有事敢然) - 일을 할 때는 결단성있게 행하라

일이 없을 때는 조용히 장래를 대비해야 하지만 막상 일이 생겼을 때는 태풍이 몰아치듯 일거에 매듭지어야 한다. 아무 준비 없이 있다가 일이 눈앞에 닥쳐 허겁지겁하거나 졸속으로 처리하면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대개 훌륭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큰일을 하는 배경에는 평소 치밀하게 준비해서 후일에 대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일이 없을 때는 밝은 마음을 가지고 지내다가 일이 닥치면 분연히 일어나 일사분란하게 일을 처리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5 득의담연(得意淡然) - 뜻을 이루었다고 자만하지 마라

득의담연이란 사람이 뜻한 바 또는 목적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자기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말고 담담하고 의연하게 처신하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자만하게 되면 다음 단계의 일을 그르치거나 주위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스스로 겸허한 마음으로 낮추고 자중자애해야 한다.

 

6 실의태연(失意泰然) - 실패했어도 낙심하지 말고 당당하게 처신하라

일을 하다가 혹 실패하더라도 그 일에 너무 연연하여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미 결과가 나타난 일에 매달리거나 실패한 일을 생각하면서 자칫 억울해하거나 실망하게 되면 다음 단계의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지나간 일의 실패는 낙심하거나 상심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그보다는 실패한 원인을 연구해 보고 그보다 더 치밀한 계획을 세워 더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해야 한다.

 

 

가거십훈(家居十訓) - 후대에 귀감이 된 부자의 도리

 

가거십훈(家居十訓)은 3대 부자 최동량이 66세 되던 해 겨울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해 남긴 글이다. 후일 자손들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실천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 가르침은 후손들이 오만과 지나침 없이  살아가는 지렛대 역할을 해주었다. 

 

1 오륜은 인륜의 근본이니 이를 마음속에 새겨라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오륜은 하늘이 내려준 법으로 동서고금에 모두 따라야 할 공통된 도리다. 이에 밝지 못하면 사람이 능히 사람답지 못하며, 가정이 능히 가정답지 못하게 된다. 최동량의 아버지 최진립은 항시 오륜을 마음에 두고 잊지 않았다.

 

2 어버이를 섬기고 효도를 다해야 한다

부자관계는 선천적으로 맺어진 천륜이며, 이른바 효라는 것은 덕의 근본이요 행실의 근원으로, 가르침이 그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다. 북송의 유학자 요옹은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가 없으나 혹 부모가 자애롭지 못하더라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최진립은 언제나 자제들에게 남의 자식 된 자는 마땅히 자식으로서 그 해야 할 직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3 임금을 사랑함에 충성으로 해야 한다

임금과 신하의 큰 윤리는 하늘의 법도요 땅의 의리이므로 함께 나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남의 신하가 된 자는 반드시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것처럼 임금을 섬겨야 진실로 신하의 도리를 다하게 된다. 최진립은 일찍이 사람들에게 "임금을 섬김에 충성을 다하고 어려움에 임해 절의를 다해야만 마침내 목숨을 바쳐 인(仁)을 이루게 된다"고 했으며,실제로 자신의 말대로 목숨을 바쳐 충신의 반열에 올랐다

 

4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남자는 밖에서 위치를 바로하고 여자는 안에서 위치를 바로하여 밖의 말이 안방에 들어가지 않고 안의 말이 바깥에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남편은 몸가짐을 조심해 아내를 거느리고 아내는 몸가짐을 조심해 남편을 받들면 화평하고 즐거우며, 나아가 즐겁게 부모의 뜻에 순종하면 집안의 법도가 바로선다. 최진립은 소학을 읽다가 "부부가 서로 공경하여 마주하기를 손님을 대하듯 했다"는 구절을 읽고 반복해서 읽고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5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야 한다

형은 아우에게 우애하고 아우는 형을 공경해야 하며, 노여움을 품고 서로 다투어 천륜을 괴멸시키지 말아야 한다. 최진립은 우애가 지극하여 형을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했고 아우에게 우애하여 마치 어린아이처럼 대했으며, 그 정은 후대를 이어 대물림되었다.

 

6 붕우간에 신의가 있어야 한다

벗은 반드시 단정한 사람으로 사귀되, 서로 충고하며 착한 길로 인도해야 한다. 단, 벗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한다. 혹 막역한 사이라도 서로 희롱하다가 이해관계에 얽혀 원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크게 경계해야 한다. 최진립은 사람들과 사귀면서 오래도록 서로 공경하여 종신토록 변하지 않았다.

 

7 여색을 멀리해야 한다

임금이 여색을 좋아하면 그 나라가 망하고, 대부가 여색을 좋아하면 그 집이 망하고, 선비나 서민이 여색을 좋아하면 그 몸을 망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집에 화근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최진립은 함경북도 경원에서 돌아오던 중 눈길에 막혀 함경도 경성에서 몇 달을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친구 되는 이무백이 이름난 기생을 단장시켜 곁에서 모시도록 했지만 끝내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8 술에 취함을 경계해야 한다

술이란 예법을 나타내고 성품을 기르며 환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환난이 되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최진립은 "술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약이다. 술은 기쁜 것이지만 기쁘도록 마셔서는 안 된다"며 손님이 오면 술을 내놓았으나 안주는 포와 식혜, 나물국에 불과했고, 술은 두세 순배에 그쳤다. 술을 경계하는 데 이렇게 엄격했다.

 

9 농업과 잠업에 힘써야 한다

농업은 천하의 큰 근본이다. 그러므로 농업을 부지런히 하고 잠업을 다스리는 것은 가정의 가장 급한 용무다. 최진립은 관직에 있을 때 농업과 잠업을 권장했다.

 

10 경학을 익혀야 한다

경학은 사서오경 혹은 유학의 또 다른 말이다. 힘써 행하기만 하고 글을 배우지 않으면 옛 성현이 이뤄놓은 법을 알지 못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도리를 벗어나 세상을 어지럽게 할 수 있다. 최진립은 제자를 가르칠 때 반드시 소학을 먼저 가르친 뒤 경서와 사기를 가르쳤다.  

 

 

최부자의 장기 경영전략 원모심(遠謀深慮)

 

최부자가 장기간 부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먼 훗날을 깊이 생각하면서 큰뜻을 차근차근 실천하는 원모심려(遠謀深慮}하는 자세에 있었다. 즉 양반 신분으로서 정쟁에 휩쓸리지 않고 가문과 부를 유지하는 것은 최부자 가문의 당면한 전술이자 장기 전략목표였다. 

 

1 부자에 걸맞는 신분을 유지하라

기업가나 부자가 정치에 참여하거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 없는 정치논리나 정치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일찍이 최부자의 선대들은 이런 사실을 깨닫고 후손들에게 가훈이나 유훈으로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벼슬에 나가 자칫 정치적 시류를 잘못 타면 당사자가 욕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영남 일원의 양반들과의 혼인관계를 통한 지위를 유지하려 한 것은, 사화와 당쟁이 끊이지 않던 조선시대에 가문을 안정시키고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조치이자 가문의 내일을 생각하는 장기적 전략목표였다.

 

2 부자도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다

가문의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조선시대 양반가의 주요목표였다. 명성은 단순히 벼슬길에 나아간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선비의 덕목을 실천할 때 세상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선비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릴때부터 글공부를 시키고 예의범절을 가르쳐야 한다. 최부자 가문 또한 가족 구성원의 지배적 이념인 유교적 덕목과 불교적 시혜사상이 어우러져 실천하는 구체적 행동들, 즉 빈민구휼, 소작료 인하 등을 실천했으며, 과객들이 이 가문의 명성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전파하는 전령사 역할을 했다. 종가에서 노비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분가된 집에서는 노비들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한 것은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러한 것이 명성의 유지라는 장기적 목표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이었다.

 

3 부자일수록 근검절약하라

축적한 부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 최부자 가문의 또 다른 장기적 전략이었으며 이를 위한 실천방법인 근검절약은 누대를 거치면서 가문 전체의 사상과 가족문화로 정착되었다. 특히 창고열쇠를 가진 안방마님은 살림을 알뜰하게 꾸렸고 자손들에 대해서도 귀한 도련님으로 애지중지하지 못하게 했다. 어릴때부터 올바른 교육이 되어야만 가문도 부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가문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시집온 후 시어른들의 모범적인 모습을 통해 동화되었고 이는 곧 자연스러운 태교로 이어졌다. 이런 태교를 받고 태어난 아이는 겸손하고 검소한 가정의 문화에 젖어 양반과 부자라는 오만에 빠질 수 없었으며 오히려 겸손과 검소함을 자랑과 긍지로 알았다. 따라서 이들이 성인이 된 후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할 것인지를 스스로 체득하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4 더불어 살아야 부자가 된다

내가 잘 살려면 내 이웃과 형제자매가 모두 잘 살아야 한다. 혼자만 잘 살면 이웃과 형제자매와의 관계가 좋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잘 살기 위한 방법은 모든 이웃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다. 최부자가 끊임없이 그 부를 이웃을 위해 사용한 것은 이러한 기본원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최부자 가문은 지역사회 전체의 안정이 곧 모두 잘 사는 길이라고 믿었다. 흉년이면 곳간을 열어 식량을 나누고, 지방관아나 향교에서 쓰는 경비도 그 쓰임새에 따라 제공했다. 이러한 노력은 흉년이 되어 백성의 생활이 어렵거나 외침(外侵)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 지역주민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다, 

 

5 나라가 있어야 부자도 있다

최부자들이 지속적으로 목표로 삼았던 것은 나라에 대한 충성이었다. 최진립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 최동량은 가거십훈을 통해 국가에 충성하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이러한 가훈을 실천했고, 일제 35년 동안에도 조국을 독립시키기 위해 소리없이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평화시에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에 힘쓰던 이 가문은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재물과 몸을 던져 국가를 위해 일했다. 그러므로 외적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급할 때는 격퇴하고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이 가문의 또 하나의 목표였다,

 

이상, 경주 최부자집의 육연과 가거십훈, 장기 경영전략 원모심려였습니다. 도움이 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