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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보는 세상/일상다반사

백담사와 돌탑, 그리고 건강한 퇴행을 부르는 응답하라 1988

 

백담사와 돌탑, 그리고 건강한 퇴행을 부르는 응답하라 1988

 

백담사 전경 

 

TVN [응답하라 1988]의 시청률이 예사롭지가 않다. 뒤늦게 폭풍몰아보기를 하면서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을 보니 "쌍팔년도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왁자지껄 코믹가족극"이라고 나와 있는데, 딱 그 소개글처럼 왁자지껄하니 재미있으면서도 끈끈하고 훈훈한 가족애가 느껴져서 시청률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국민드라마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듯하다. 특히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넘치는 이웃사랑은 요즘처럼 몇 년 혹은 몇십 년씩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아도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삭막한 세상에서는 꿈 같은 일로 여겨질 정도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 9회에서는 다섯 가족들의 염려 속에서 힘겨운 수술을 마친 후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절에 들어간 김성균과 라미란의 장남 정봉(안재홍)이 촛불을 들고 탑 주변을 돌며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백담사여서 깜짝 반가웠다. 지난달 휴일을 이용해 설악산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는데, 설악산 내에 있는 숙소로 가기 전에 잠깐 이 백담사에 들렀었기 때문이다. 

 

백담사와 돌탑, 그리고 건강한 퇴행을 부르는 응답하라 1988

 

탑돌이를 하던 정봉은 수행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극락보전(極樂寶殿)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 몰래 뒤따라가 확인하고는 흠칫 놀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극락보전에서 예불을 하고 있는 그 사람 뒤로 살그머니 다가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려다가 경내로 뛰어들어온 수행원들에게 질질 끌려나가면서도 "그 사람 맞죠?" 하고 호들갑스럽게 놀라는 모습을 연출해 웃음을 주었다. 1988년에 있었던 일  중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큰 사건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거생활을 정봉과의 마주침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백담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버스는 30분 배차간격이었고 약 20분 가량 경사진 계곡을 끼고 좁은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계곡의 흰 바윗돌과 졸졸 흐르는 맑은 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청랑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봄이나 여름, 가을엔 각 계절의 풍미를 마음껏 느끼면서 천천히 올라가면 저절로 힐링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나 차편이 여의치 않아 걸어올라가야만 한다면 두 시간 남짓의 길 자체가 수행의 길이 될 듯싶었다.  

 

 

 

절 입구에 세워져 있는 소개글에 따르면, 대한불교 조계종 백담사는 서기 647년 신라 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되어 여러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다가 1783년(정조 7년) 백담사라고 개칭하게 되었다. 백담사라는 사찰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 전통사찰 24호로 지정된 백담사는 보물 제1182호로 지정되어 있는 목조 아미타불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를 대표하여 3.1독립운동을 이끈 스님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만해(萬海) 한용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도 있다. 현재 백담사 무금선원에는 무문관과 교육기관인 기본선원이 있어 지금도 많은 승려들이 참선 수행을 하고 있다.

 

 

만해 한용운은 백담사에서 정식 승려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자 승려,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은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활동을 했으며 3·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서로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 등이 있다.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저항정신으로 집도 조선총독부 반대방향인 북향으로 지었고 식량배급도 거부했으며, 친일로 변절한 최남선이 탑골공원에서 인사를 하자 모르는 사람이라며 차갑게 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만해기념관이다. 만해 한용운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바깥모습만 찍었다.  

 

 

나한전(羅漢殿)이다.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들인 나한(羅漢)들을 모시는 법당이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을 줄인 말이고, 아라한은 소승 불교에서 불제자 중 번뇌를 끊어서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마땅히 공양을 받을 만한 덕을 갖춘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범종루(梵鐘樓). 해탈문인 불이문을 지나 불국정토로 들어오는 구도자를 환영하기 위해 주악을 연주하는 범종이 있는 건물이다. 종각이라고도 하고 이층의 누각인 경우에는 범종루, 종루라고도 하며, 범종각에는 범종을 비롯해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 등 불전사물(佛殿四物)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들은 중생의 교화를 상징하는 불구(佛具)로 예불의식에 쓰인다. 

 

 

 

 

 

화엄실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도 나왔듯이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前)대통령 내외가 대(對) 국민사과성명을 발표한 후 백담사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이 화엄실에 머물렀다고 한다.  

 

 

역사의 현장이다, 누구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푸른 수의를 입고 두 손에 오랏줄을 감은 대통령의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안타깝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한 일이다. 하지만 요즘 붐을 이루고 있는 역사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니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권좌에 오르면 끝간 데 모를 권력을 휘두르다가 유배를 떠나고,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사람이 또 똑같은 길을 걷는다. 바로 코앞에서 어떻게 스러져 가는지를 똑똑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전혀 안 되는 것이다.   

 

 

백담사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계곡마다에 셀 수도 없을 만큼 갖가지 모양으로 쌓아올려진 돌탑들의 모습이었다. 백담사를 다녀간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쌓은 것이라고 하는데, 처음엔 무심코 바라보다가 눈길 닿는 곳마다 가득한 돌탑의 돌 하나하나가 많은 힘겨운 사람들의 근심걱정인 것처럼 여겨져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소원을 가슴에 담고 그 소원이 꼭 이뤄지기를 바라면서 저렇게 쌓아올렸을까 생각하니, 너나할 것 없이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심정이 돌탑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져 왔던 것이다. 이런 돌탑은 낙산사에서도 또 신흥사에서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돌탑들이 잔뜩 늘어난 건지 아니면 전에는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돌탑들이 이번엔 눈에 일일이 다 들어온 건지 궁금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

 

 

1박 2일을 백담사와 낙산사, 속초 동명항, 설악산 권금성, 신흥사 등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불과 이틀을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ㅎㅎ) 그 사이에 또 다른 전 대통령인 김영삼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마치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어 있더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김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지나칠 만큼 우호적으로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공과(功過)를 따지는 잣대를 들이댈 때 과(過) 쪽으로 좀더 기울어 있었다면, 운명을 달리한 순간 그 잣대가 공(功) 쪽으로 확 기울어진 느낌이랄까.  

 

물론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가진 악감정이 있을 리 없으니 너도 나도 치하를 하고 나서는 것도 모자라 눈물까지 보인다 한들 굳이 삐딱한 시선으로 그 진정성을 의심할 것은 없었지만, 한 사람의 죽음으로 평가가 급변하는 것이 좀 어리둥절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럴 거면 왜 살아 계실 때 좀더 우호적인 평가를 해주지 않았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김대통령에 대한 대체적인 의견은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는 것으로 모아지는 것 같았다. 간디는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개념은, 그 체제하에서는 가장 약한 자가 가장 강한 자와 똑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간디의 말처럼 부디 약자와 강자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기 위해 김영삼 대통령을 위비롯해 많은 분들이 힘겹게 지켜내온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일은 없었으면 싶다.

 

 

 

 

심리학에서 퇴행(退行)이란 성숙/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위험이나 갈등을 겪게 될 때 어리다는 이유로 모든 걸 허용했던 과거 유치한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을 말한다. 힘겨움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느니 어린시절로 ‘퇴행’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초기단계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칫 퇴행이란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게 마련이지만, 퇴행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퇴행이 큰 위로를 줌으로써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른바 <건강한 퇴행>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야말로 건강한 퇴행을 부르는 마술지팡이라고 할 수 있다. 저녁이면 각각의 집에서 만든 반찬을 이웃과 나눠먹으려고 부지런히 나르다 보면 어느덧 집집의 반찬이 모두 똑같아지는 밥상, 자기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공부를 잘하는 형제나 친구와 비교하지 않고 너그러운 눈으로 지켜봐주는 어른들, 자칫 치부 같은 속내를 드러내도 흉을 잡히기는커녕 남모르게 도움의 손을 뻗어주는 이웃들, 경제적인 부의 잣대로 이웃의 가치를 가르지 않는 속깊은 사람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말은 단 1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쌍문동  다섯 가족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잘 놀기만 하면 되었던 어린시절로 되돌아간 듯 가슴속에 따스한 물살이 번져오면서 다시금 힘차게 살아나갈 힘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상, 백담사와 돌탑, 그리고 건강한 퇴행을 부르는 응답하라 1988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