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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검은사제들 강동원 김윤석의 극장판 엑소시스트

 

검은사제들 강동원 김윤석의 극장판 엑소시스트

 

 

강동원 김윤석 주연의 영화 [검은사제들]은 악령에 씌인 영신(박소담)이라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신비스럽다기보다는 살벌하게 여겨지는 구마예식을 행하는 두 사제의 스토리를 담은 미스터리다. 그 동안 주로 외화로 접했던 [엑소시스트]의 한국판이고, 몇 년 전 꽤 오랫동안 TV에서 방영됐던 심령솔루션 [엑소시스트]의 무대를 영화관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극장판 엑소시스트였다. 

 

이 심령솔루션 엑소시스트는 현대의학으로도 밝혀지지 않은 초자연적 현상들이나 빙의된 사람들을 퇴마사며 영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검증된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해 나가는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실사례자들의 100퍼센트 실제 상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넘쳤던 프로였다. 그리고 [검은사제들] 초반부에 가톨릭의 구마예식과 오버랩되어 나오는 우리나라 민속신앙 <굿>도 악귀를 쫓는 의식이라는 점에서는 엑소시스트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검은사제들]에 대한 평 중에 신선하다, 새롭다는 말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없었던 것뿐이지 소재 자체는 그다지 참신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면 평소 자주 접하기 어려운 <사제들>이 악령을 쫓는 퇴마사 역할로 등장한다는 점은 좀 의외였다. 가톨릭에서는 악귀들린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퇴마사가 아니라 구마사(驅魔師)로 부르긴 하지만 말이다. 

 

검은사제들 강동원 김윤석의 극장판 엑소시스트

 

가톨릭교에서 이루어지는 구마사의 구마예식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 용어에 대한 기본지식이 필요하다. 장재현 감독은 영화 초반에 친절하게도 그 용어들을 자막으로 미리 잘 알려주고 있다. 사제란 가톨릭교의 주교와 신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부제란 부제품을 받아 사제를 돕는 성직자를 말한다. 구마란 악령에 씌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가톨릭교의 예식이고, 장엄구마예식이란 과거에는 비공식으로 행해졌지만 2014년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승인한 교회법조에 따라 특별히 집전되는 예식이다. 그리고 부마자란 활동하지는 않아도 악령이 몸속에 존재하는 사람을 말하며, 12형상이란 부마의 징후들로 장미십자회에서 일련변호를 붙인 악령의 종류를 가리킨다. 즉 구마예식이란 구마자와 부마자의 쫓고 쫓기는 대립인 셈이다.

 

[검은사제들]에서는 구마예식을 집전하는 사제 역을 김윤석이 맡았고 김신부를 돕는 부제 역을 강동원이 맡았으며, 몸속에 악령을 간직하고 있는 부마자 역은 박소담이 맡았다. 평소에도오 로지 한 길만 보고 나아가는 단순무지함의 두려운 힘을 잘 표현해 주었던 김윤식은 말 그대로 구마자에 빙의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딘가 묘하게 신비스러운 느낌을 간직한 꽃미남 부제 강동원, 아직 어린 소녀로서 결코 쉽지 않았을 부마자 역을 깔끔하게 해낸 박소담 등 세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장면들 하나하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잠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했다. 특히 로만칼라가 달린 사제복 차림의 강동원은 영락없는 신부 모습이어서 신부가 되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사제복이 어울린다고 해서 그 험난한 신부의 길을 택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ㅎㅎ 그리고 박소담은 베테랑이며 사도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 차세대 기대주다.          

 

 

[검은사제들]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두 주인공 김윤석과 강동원은 악령을 쫓아내는 임무를 위해 선택받은 자들이다. 평소 주위를 개의치 않는 기행으로 교단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된 김신부는 성당에 다니던 소녀 영신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후 이상증세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악령에 씌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영신에게 깃든 악령을 쫓아내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해 교단으로부터 갖가지 의혹을 받으면서도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영신을 데려다놓고 구마예식을 행하고 있는 참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또 한 명의 부제가 필요한데, 다들 기피하는 가운데 신학생인 강동원, 즉 최부제가 선택된다. 최부제는 김신부를 도와 구마예식을에 참여하면서  흉흉한 소문의 근원지인 김신부가 대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감시하라는 임무도 함께 부여받는다. 한편 그 동안 이 구마예식을 함께 거행했던 부제가 10명이나 잔뜩 겁먹은 얼굴로 도망가 버린 터여서 김신부는 이번에야말로 부제를 잘 선택하고자 고심한다.

 

김신부가 요구하는 부제의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먼저 장엄구마예식의 부제는 부마자가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듯한 말을 그대로 따라 적어야 하므로 라틴어며 독일어, 중국어 등에 능통해야 한다. 또 어둡고 음습한 악령을 접해야 하니 용감하고 대범한 성격이어야 하며, 영적으로도 예민한 기질을 가진 호랑이띠(50년, 62년, 74년, 86년생)여야 한다. 또 구마예식 중 허락없이 부마자를 쳐다보거나 대답해서도 안 되고, 기도 없이는 그 말을 듣지도 말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절대로 자신의 존재를 들켜서는 안 된다. 한편 구마예식 중에 부제가 울려야 하는 '프란체스코의 종'은 고대 수사들이 악령이 씌인 동물이 있는 숲을 지날 때 치면서 지나간 종으로, 성 프란체스코가 직접 만들었으며 장엄구마예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도구다.

 

 

마침내 영신을 구할 수 있는 단 하루의 기회, 김신부와 최부제는 모두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구마예식을 시작한다. 소금을 뿌려 경계를 만들고 책과 성물, 촛불 등으로 예식을 준비하는 음산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예식이 진행되자 영신의 몸에 깃든 악령은 천사의 얼굴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가 하면, 다음 순간 가공할 모습으로 저주를 퍼부으며 구마의예식을 행하는 두 사제를 쥐락펴락한다. "그 몸에서 나와!"하고 단호하게 소리치는 김신부의 명령에 악령이 하나, 둘, 셋, 넷..나타나지만, 마지막 하나 남은 악령은 무려 5천살 이나 먹은 더없이 강력한 악령이다. 이 악령을 처치해야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문제는 영신을 죽이지 않고는 이 강력한 악령도 쫓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소녀의 고틍올 모른 척하실 거냐"고 신에게 기도하며 고뇌하던 김신부는 결국 영신의 목을 졸라 죽이는 선택을 하지만, 최부제가 이 모습을 보고 뛰어들어 방해하는 바람에 첫번째 예식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되살아난 악령의 공격에 혼비백산한 최부제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곳을 뛰쳐나가고 만다.

 

하지만 영화 포스터에서처럼 "저에게는 갚을 빚이 있다"고 말하는 최부제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다시 돌아온다. 그에게는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게 만들고 신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남모를 사건이 있었는데, 어린시절 여동생이 개에게 물려 죽을 때 맞서싸우지 못하고 멀찍이 도망갔던 일이다. 이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시달려오던 최부제는 "이번에는 결코 도망가지 않겠다"며 다시 돌아와 김신부를 도와서 예식을 진행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임무, 즉 영신의 몸에서 나온 악령들이 숨어든 새끼돼지를 들고 만 하루의 시간이 지나기 전에 한강으로 집어던지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려간다. 달려가는 동안에 악령들은 갖가지 사고를 일으켜 최부제를 방해하고, 한강에 이르렀을 때에도 무려 5명의 악령이 깃든 돼지인지라 너무 무거워서 들어올릴 수가 없자 최부제는 돼지를 안고 한강으로 몸을 던진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죽은 줄 알았던 영신도 살아난다. 죽음을 무릅쓰자 삶을 부여잡은 것이다.  

 

 

예전에 (제목이 확실친 않지만) <바람의 소리>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무에 깃들어 사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 바람은 심심해지면 이 마을 저 마을, 이 사람 저 사람 사이를 날아 옮겨다니면서 이간질을 하는 아주 고약한  바람이었다. 예를 들면 A라는 사람에게 가서는 B라는 사람이 당신을 욕을 하더라면서 얼른 가서 싸우라고 하거나, 남편에게는 아내가 당신을 곤경에 빠뜨릴 궁리를 하고 있으니 "화나지? 화나잖아? 어서 가서  혼을 내주라니까"라고 하거나, 형에게 가서는 동생이 당신 몫을 채가려고 죽이려고 하고 있으니 "빨리 가서 당신이 먼저 선수를 쳐! 동생을 죽여야 하지 않겠어"라며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결국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의의 사건사고는 이 못된 바람의 꼬드김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이 바람의 소리는 진짜 바람의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 깃들어 죄짓게 만드는 악마의 소리를 가리키는 것이었을 듯하다.

 

검은사제들에서도 몸속 악령이 쫓겨가거나 해서 분노하면 자동차 사고가 나고 전신주가 뽑혀나가는 온 도시가 아수라장이 된다. 아마 이 악령은 우리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죄악에 묻들게 하는 모든 악을 총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죄는 우리로 하여금 악의 씨를 뿌리게 하여 사고를 내고 패륜을 저지르게 만든다. 이 악령은 최부제가 악령이 깃든 돼지새끼를 안고 한강으로 온몸을 내던졌듯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 세상이 이만큼이나 돌아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악령과 싸우는 김신부나 최부제 같은 사람들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톨릭교에서는사후 세상을 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으로 나눈다.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가지 못한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 연옥인데, 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다. 꼭 가족이나 친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구든 연옥을 떠돌고 있는 혼들을 위해 천국으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면 된다.

 

지난 11월 2일은 가톨릭교회의 축일 중 하나인 위령의 날, 즉 모든 죽은이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와 모든 성인(聖人)의 크나큰 공덕에 의해 죽은이는 사후 정화(淨化)를 받는 연옥에서 빨리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11월 2일 위령의 날이 있는 11월은 위령성월로 정하고 있는데, 죽은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특별한 신심기간이다. 하늘문이 열리는 이 달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느냐에 따라 숱한 혼들이 천국에 갈 기회를 얻게 된다. 

 

연옥을 떠도는 혼들처럼 우리 가슴속에도 미처 해결하지 못한 죄의식이며 상처들이 떠돌고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제들의 구마예식 같은 의식도 필요하겠지만,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악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떨쳐내는 작업도 필요할 것 같다. 김신부와 최부제의 구마예식이 또한 악령을 죽이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영신이라는 소녀를 살려내고자 하는 예식이었듯이 우리의 그 작업도 죄에 물들지 않은 제대로 된 삶을 위해 꼭 치러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이상, 검은사제들 강동원 김윤석의 극장판 엑소시스트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