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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송곳 인간의 비열함에 대처하는 자세

 

송곳 인간의 비열함에 대처하는 자세

 

 

하루하루 눈물겨운 투쟁 속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 [미생]의 계보를 잇는 [송곳]은 대형마트 푸르미에서 직원들을 부당해고하기 위한 물밑작전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3,4회에서는 부진노동담소 소장 구고신(안내상)의 도움을 받아 노동조합을 결성한 과장 이수인(지현우)과 푸르미마트 직원들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사측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는 시위에 나선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권운동가이자 권리신장운동가로 미국 내 흑인의 인권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 킹은"어떤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말했는데, 푸르미 직원들이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을 깨고 사측의 비열한 해고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거친 아우성의 한 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송곳 인간의 비열함에 대처하는 자세

 

동생들보다 키가 작은 우리 큰외삼촌은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을 떨쳐내기 위애서인지 평소 지나치다 싶을 만큼 당당한 태도를 보여주곤 합니다. 키는 좀 작아도 권투도 좀 하고 태권도며 유도도 좀 해서 그런지 지금도 여전히 날렵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이 외삼촌에게서 어릴때 귀가 따갑도록 들은 무용담이 있습니다. 고교 때 학교에서 힘 좀 쓴다는 선배한테 맞은 적이 있는데, 그 다음날부터 매일 아침 그 선배 집으로 가서 맞기를 자청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맞고, 모레도 맞고, 또 그 다음날도 맞으러 가기를 열흘 넘게 계속하자, 아침마다 주먹질을 하던 선배가 먼저 두손두발 다 들고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제 제발 그만 와라" 하고 사정하더라는 겁니다. 

 

매번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열흘이 보름이 되기도 하고, 선배가 동네에서 난다긴다하는 깡패가 되기도 하는 등 디테일한 면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보면 백 퍼센트 사실인 것 같지는 않지만, 평소 작은 몸집으로도 늘 자신만만하고 용기백배한 모습으로 봐서는 만일 실제로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면 분명 그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대항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믿고 있습니다.(ㅎㅎ) 게다가 외삼촌이 그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불의에 굴하지 말고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것, 그리고 그 불의에 끈기있게 맞서면 상대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에게는 더없이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턱없이 약해서 금세 꼬리를 내리는 것이 인간의 내면 한구석에 깃들어 있는 비열한 속성이니까요.

 

 

부진 노동삼담소를 찾아간 이수인 과장은 구고신 소장으로부터 독일과 프랑스 등과 달리 우리나라의 형편없는 노동현장 실태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가 손을 들어 묻습니다. "소장님 말씀을 들으니 프랑스는 노조에  우호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푸르미는 프랑스 회사이고 점장도 프랑스 사람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라고 묻습니다. 그에 대한 고구신의 답이 충격입니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키면서 손해를 보겠나.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이면 그렇게 되는 거야. 노동운동 10년 하다가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인간이야."

 

그리고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더니" 하는 불만어린 말들이 들리자 구고신 소장은 비감한 표정으로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말라며 "싸움은 경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어떤 놈은 한 대 치면 열 대를 갚지만 어떤 놈은 놀라서 뒤로 빼. 찔러봐야 상대가 어떤 놈인지 알 거 아니냐"고 덧붙입니다. 주먹을 날렸을 때 겁먹고 납작 엎드리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사람들보다 더 얕보일 뿐 아니라 그 후로도 계속 비열한 인간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습니다. 즉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저들의 잘못된 믿음을 깨뜨리는 것이 인간의 비열함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입니다.   

 

 

악화일로인 불경기인 만큼 정규직들을 내보내고 좀더 값싸게(?) 부릴 수 있는 계약직들로 채우려는 기업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함께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을 해온 직원들을 내보내 밥줄을 끊는 것 자체가 제대로 된 고용주라면 가슴아파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해고에 따르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제발로 걸어나가도록 없는 잘못을 끄집어내 닦달을 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비열한 짓거리까지 하는 것은 그저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죄밖에 없는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이런 비열한 행태에 맞서기 위해서는 자기만 살고 보겠다는 이기심이나 밟으면 밟히는 대로 당하는 나약함이 아니라 자신의 귄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저 사진에서처럼 더 이상 머뭇거리기를 멈추고 부당해고에 당당하게 맞서기로 결심한 이수인 과장이 "직원들에게 노조에 가입하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라는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황당해하면서도 바짝 얼어붙은 정민철(김희원) 부장의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저 표정 속에는 뭔가 두려워하는 듯한 느낌도 살짝 엿보입니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이제 정민철 부장은 이수인 과장을 심정적으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의 비열함은 상대가 나약한 모습을 보일 때 더 잽싸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이런 인간의 비열한 속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휩싸는 두려움이나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좀더 단호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은 요구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그래야 주먹을 날린 놈이 "한 대가 열 대가 되어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대는 또 다른 교활한 수법으로 기어이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할 게 분명하니까요. 이를 위해서는 "아는 게 힘"이라고, 더 공부를 해서 대처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구고신 소장이 이수인 과장에게 취업규칙을 좀 보자고 하면서 "알아야 싸울 것 아니요?"라고 한 말이 정답입니다. 앞으로 푸르미 직원들이 어떻게 하나하나 공부를 해가면서 사측의 비열한 해고에 맞서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를 지켜낼지 본방사수하면서 더 열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쏜살같이 날아와 귀에 꽂히고 가슴을 치는 명대사들이 너무 많습니다. 나중에 그 명대사들만 한꺼번에 잘 모아 살펴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상황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확연하게 알 수 있겠다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어떤 기사를 보니 "이 드라마가 불편한가 아니면 통쾌한가?" 하며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기도 했지만, 이 드라마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단순히 고용주와 고용인들의 대립이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자는 데 있다고 믿기에 굳이 보면서 마음 불편해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송곳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이상, 송곳 인간의 비열함에 대처하는 자세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