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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베테랑 황정민의 핵존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베테랑 황정민의 핵존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하루 종일 푹푹 쪄대는 무더위를 간신히 견디고 집에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한 후 차갑게 냉장해 둔 캔맥주를 치익~! 따서 마셨을 때의 그 첫모금 같은 맛..이었습니다. 영화 [베테랑] 말입니다. 그 동안 범죄오락액션을 내세운 영화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그저 냉방이 잘된 영화관에서 킬링타임용으로 두 시간 잘 보고 나오면 되겠거니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뻔하디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이렇듯 가슴속을 뻥 뚫어주는 영화를 만드는 류승완 감독과 믿고 보는 명품배우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등의 베테랑급 역량이 베테랑이라는 영화 제목을 부끄럽지 않게 해줍니다. 특히 명동 8차선 도로 한복판에 80여 대의 차량을 투입해 나흘 밤에 걸친 촬영했다는 서도철(황정민) 형사와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스릴 만점 추격씬은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주는 시원한 소나기 같았고, 마지막 격투씬에서 서형사가 조태오를 향해 날리는 회심의 강펀치는 돈과 권력의 힘만 믿고 세상과 여느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갑들에 대한 확실한 응징 같아서 대리만족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베테랑 황정민의 핵존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어느 분야에서나 명장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물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인데, 이 영화의 강점 또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아마도 계영배(戒盈盃)의 교훈이 주는 절제의 미덕을 류승완 감독은 확실하게 체득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류승완 감독의 전작 [부당거래]에서 승진에 눈이 멀어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는 데 동참하는 광역수사대 에이스 최철기 형사 역을 맡았던 황정민은 이번 영화 [베테랑]에서는 돈에도 권력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불도저 서도철 역을 맡아 비록 영화에서나마 부당거래에서의 오명을 깨끗이 씻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스틸컷과 동영상을 바탕으로 스토리 위주로 [베테랑]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내가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

 

 

"내가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 하고 호통치는 황정민의 멘트는 기회만 있으면 갑질을 해대는 많은 갑들은 물론 그런 갑들에게 빌붙어 찌질이 짓을 서슴지 않는 많은 을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갖가지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그들이 결국 가닿는 곳은 결국 절망의 구렁텅이입니다. 아니,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을 종치고 말 때까지 그들은 죄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맞을 테니까요.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

 

 

물론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 하며 황정민의 경고를 코웃음치며 비웃는 갑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재벌 3세 조태오가 바로 그런 갑질의 대마왕인데, 순진무구한 얼굴이어서 그 잔학함이 더 으스스하게 여겨지는 이런 괴물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좋다고, 돈의 힘을 알게 된 갑의 1세대들이 갑의 2세대, 3세대들에게 물려준 더럽고 비열한 유산입니다. 그것이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약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 갑질이 도를 넘칠 때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지는 최근 갑질로 인해 패가망신뿐 아니라 기업 자체가 흔들리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환각파티를 즐기는 것도 물질적인 것은 넘치도록 제공받아도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 정신적으로는 공허함과 황폐함이 가득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애쓰지 않고도 주변에 흘러넘치는 돈이 사람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신경쓰지 마.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갑들이 세상을 우습게 보며 갑질을 계속하도록 부추기는 또 한 무리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내 선에서 알아서 처리할게"라며 오만방자한 갑들을 보호하고 제 한몸을 던져 밀착방어하는 찌질한 을들입니다. 이 영혼 없는 좀비들은 갑 대신 골프채로 죽도록 얻어맞는 것도 불사하고, 갑이 궁지에 몰린다 싶으면 대신 나서서 살인청부도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 갑이 저지른 죄를 대신 덮어쓰고 감옥에도 기꺼이 가줍니다. 아마도 그들은 갑 옆에만 죽어라 붙어 있으면 자신도 갑이 될 수 있을 듯한 환상에 빠지나 봅니다. 환상은 환상일 뿐, 그 환상이 무너질 때의 을들의 모습은 갑들이 키우는 개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 원 밖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을들의 말로가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는데, 환상에 빠진 그들 눈엔 앞날이 창창할 것 같은 미래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돈이 법보다 세다

 

 

돈이 법보다 세다고 믿기에 돈 앞에서라면 알아서 기는 찌질이 을들이 빚어내는 가장 큰 폐해는 갑들에게 마음껏 갑질을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일입니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로 자신의 비열한 짓을 슬그머니 무마하려는 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을들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돈보다 센 것이 가오"라며 핵존심을 꿋꿋이 지키는 을들도 엄연히 존재하니까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서형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라며 돈가방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또 명품백과 그 속에 가득한 돈으로 자신을 매수하려는 최상무(유해진)의 유혹에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기어이 자존심을 지켜내는 서형사 아내(진경)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니들 돈으로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갑들의 눈에는 이렇게 "니들 돈으로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하고 무대포처럼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서형사 같은 사람이 어이없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돈의 힘으로 많은 을들을 자기 앞에서 발발 기게 만드는 재미로 사는 그들에겐 <돈>보다 <가오>를 택하는 사람들이 아마 이해불가한 존재일 겁니다.    

 

 알량한 형사 신분으로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사실 진짜로 어이없는 사람은 그런 서형사를 "알량한 형사 신분으로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비웃는 갑도 아닌 을 최상무입니다. 찌질이 을의 최고봉인 최상무야말로 알량한 상무 신분으로 언제 갑의 손에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데, 자기 걱정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이가 없네

 

 

또 하나, 갑들의 눈에 어이없는 존재로 비쳐지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태오의 눈에도 감히 겁없이 자신을 찾아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겠다는 원칙을 들이대는 배기사(정웅인)이 황당하다못해 어이가 없는 인간으로 비쳐졌을 겁니다. 마치 모욕이라도 받은 듯 불쾌한 얼굴로 "어이가 없네"라고 말하는 조태오, 진짜 어이없는 인간은 바로 자신임을 알게 될 날이 과연 올까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뜬금없이 <어이없다>는 말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도 처음에 <어이없다>는 말의 뜻을 알고 말 그대로 어이가 없었던 적이 있는데, 아마 류승완 감독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설명을 덧붙이자면, <어이>란 맷돌의 손잡이를 말합니다.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말도 있듯이 어이 없는 맷돌도 완전 무용지물이지요. 어이 혹은 어처구니라고도 불리는 손잡이 없이는 맷돌을 갈 수가 없으니 그 황당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판 뒤집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두 개로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여느사람들이 살고 있는 을들의 세상이고 또 하나는 그 평범한 서민들을 자신들이 키우는 반려견 정도로 내려다보며 살고 있는 갑들의 세상입니다. 더욱이 이 갑과 을들의 세상은 점점 더 날이 갈수록 그 간극이 넓어져 가고 있어서 이대로 가다가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서로의 존재 자체를 모르게 되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아, 그 사이에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있네요. 바로 최상무 같은 갑도 아닌 주제에 을이고 싶어하지도 않는 기회주의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저질러온 만행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한일강제병합 때도 일본인들보다 더 자국민을 괴롭혔다는 자들, 6.25전쟁 당시에도 공산당보다도 더 잔인하게 자국민을 처단하려 했던 자들이 이 악질적인 기회주의자들의 선조입니다. 그들은 이미 갑들로 판이 짜여진 이 세상에서 움치고 뛴들 뭐가 달라질 수 있겠느냐며 제 이익만 챙기기에 급급할 뿐 아니라 인간만이 가진 소중한 자존심도 헌신짝 버리듯 내칩니다. 하지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돈과 권력에 굴하지 않는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판이 뒤집힙니다.>

 

이상, 베테랑 황정민의 핵존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