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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이순신처럼 경영하라..기업가 정신과 현장의 힘 7가지

 

이순신처럼 경영하라..기업가 정신과 현장의 힘 7가지  

 

현충사에 모셔졌던 충무공 영정,1932년 청전 이상범 그림(이미지 출처 충무공이순신싸이트)

 

골든에이지 박종평 대표의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를 읽다 보면 이순신 장군이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놀랍고 위대한 분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모두 알고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타고난 영웅은 아니었지만 시련을 통해 자신의 잠재능력을 깨닫고 긍정적인 생각과 습관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발한 분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자신만의 성공이나 특정 조직의 성공을 넘어 백성들의 성공을 추구한 점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급함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피하고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보았으며, 척박한 현실은 인정했지만 해결방법을 먼저 고민했던 그는 역사적 영웅이자 장수이며 시인이자 경영자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박종평 대표가 들려주는 이순신처럼 경영하라..기업가 정신과 현장의 힘 7가지를 요약정리해 보았습니다. 위기에 더욱 빛났던 이순신 장군의 삶과 경영의 지혜를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충무공 화폐본 영정 1975년 월전 장우성 그림. 한국은행 소장

 

1 가장 큰 자산은 신뢰와 인격이다

 

이순신은 ‘신뢰’라는 재산으로 위급한 전쟁 중에도 빈손으로 군사와 물자를 모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부흥시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통을 극복하고 모든 난관을 극복한 기업가 정신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다. 그의 일기는 두려움과 고통, 엄청난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려는 몸부림이며, 오늘날 경영자들의 경영일기와 같다.

 

이순신은 앞장서서 일하고, 앞장서서 싸웠음에도 언제나 부하들의 공로를 우선으로 삼았다. 그런 행동은 부하들과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게 했으며, 그 신뢰로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또한 경영자 이순신을 특징짓는 가장 큰 특성은 우선순위에 따른 판단과 소통능력이다. 독선과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대책을 회의하며 그 결과를 즉시 실천했고, 실천의 내용을 계속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언제나 온갖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고독과 번뇌를 벗삼은 경영자 이순신은 고귀한 인격이라는 가장 큰 재산을 무기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다.

 

2  창의적 기업가는 씨앗에서 거목을 본다

 

이순신의 기업가 정신은 농사와 어업, 소금 제조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는 전쟁 중에도 일자리를 만들어 백성들이 자립하고 식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또한 혁신적 창업가인 이순신의 거북선 발명은 판옥선이라는 기술을 토대로 한 혁신이고, 정사준을 시켜 개발한 신무기 정철총통은 기술발전에 따르는 혁신이며, 둔전제도와 해로통행첩은 기술과는 관련 없는 혁신의 대표적 사례다.

 

이순신은 상황과 조건에 맞춰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사와 백성, 조정의 기대를 근본적으로 바꿨고 고객만족을 이끌어냈다. 경영은 현재에서 미래를 보는 힘이며, 자원을 이동시키고 재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이순신은 전쟁과 부족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기업가 정신으로 씨앗에서 거목을 보았고, 창조적 혁신으로 거목으로 키워냈다.

 

 

3  일자리가 복지, 복지가 일자리다

 

이순신은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성장과 분배의 우선순위 논쟁이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전쟁 중에도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이뤘고, 일자리와 복지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1593년 1월 이순신은 흥양의 돌산도 목장에서 피난민들이 농사를 짓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장계를 올렸다. 그는 병조가 조정의 말을 기르는 곳이라며 반대하는 것에 대해 백성 구호가 우선이라며 백성과 말을 함께 살리자고 건의했고, 조정은 결국 그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그해 9월 이순신은 피난민의 농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관청이나 군사를 활용해 농사를 짓는 둔전을 제안했다. 비어 있는 목장이나 섬을 관청이 주도해서 농사를 짓거나 백성들에게 주어 병작케 하거나 입대할 군사들을 시켜 농사짓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농사짓기는 한산도를 본영으로 하면서 더욱 안정화됐고 고하도와 고금도에서 재기하는 데 큰 노하우가 되었다. 그는 단순한 군사기지가 아니라 백성과 군사가 일체가 되고 생산과 복지와 국방을 하나로 만들었다. 일자리가 복지였고 복지가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4  전리품도 나라와 국민의 물건이다

 

이순신은 해전을 하면서 빼앗은 왜군의 배에 선적된 곡식이나 왜군이 후퇴하고 간 뒤에 남겨둔 왜군의 식량을 재빠르게 탈취했다. 1차 옥포승첩 장계에 따르면 이순신의 수군은 왜군의 쌀 300석을 노획했고, 그 후의 각종 전투에서도 쌀과 옷감 등을 노획해 군사들의 식량이나 물품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옥포 승첩시에 눈에 띄는 사실은 이순신이 노획물을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자신이 갖거나, 그 즉시 부하들에게 분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하들의 사기를 위해 노획물을 곧바로 나눠줄 수 있었음에도 분배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노획한 물품들을 조정에 자세히 보고하고 그 물품을 사기 진작을 위해 군사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요쳥했으며, 조정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배분했다. 빼앗은 적의 물품조차도 그는 국가 소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5 현장에서는 계급장을 떼라


굶어죽는 백성, 굶주리는 군사들을 위해 식량을 확보하고 먹을거리를 만들기 위한 이순신의 노력은 농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난중일기]의 기록을 보면 이순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바다라는 지역적 특성을 이용해 고기를 잡고 소금을 구웠으며, 섬지역에 있는 나무를 잘라 전선을 만들거나 남는 나무를 팔기도 했다. 가장 유용한 재원 확보방안은 고기잡이였는데, 잡은 생선(주로 청어)로는 군량을 샀다.

 

그는 이처럼 부하들과 함께 때로는 어부가, 때로는 나무꾼이, 때로는 소금을 굽는 노동자가 되었고, 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행동으로 생산을 하고, 그 생산으로 군사와 백성을 먹여 살린 것이다. 이순신의 고결함은 순수한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

기 위해 체면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였다.

 

6 현장에서 격려하고 확인하라

 

이순신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앞장서서 이끌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후의 그의 활동을 보면 최소 3분의 1 이상을 매달 자신의 사무실이 아닌 현장을 순시하고 점검했다. 현장에서 부하들과 함께하면서 현장에서 듣고,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군사 소집, 성벽을 쌓는 것, 전투선을 점검하는 것, 거북선 건조 등 현장에서의 전쟁준비 상황을 자신이 배를 타고 가거나 말을 타고 찾아가서 일일이 확인하고 준비가 안 된 경우는 처벌하기도 하고 잘된 경우는 격려했다.

이순신은 기록상 화려한 모습이 전혀 없다. 류성룡이 단아한 모습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내적인 수양을 우선하는 선비적인 기질로 인해 차분한 모습으로 부하들의 깊은 신리를 얻는 스타일이었다. 그가 현장에서 부하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도 평범하기 그지 없어서 자연스럽게 부하들과 함께 평상시에 해야 할 일들을 찾아 하는 백성의 모습이다. 즉 이순신은 군사들과 백성득과 현장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친구처럼, 선배처럼 이끌었고, 위협적이거나 겉치레 대신 친근감으로 부하들의 신뢰를 얻었다,

 

7 오늘의 현실에서 답을 찾아라


이순신은 전투를 준비할 때나 업무처리를 할 때도 철저하게 현실에 기초했다. 각종 정보를 수집해 자신의 역량에 맞게 준비하고 이길 수 있

는 싸움을 했다.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이 비일비재했던 조정이나 상급기관의 판단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입장에서 해답을 찾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판단한 해법을 적극적으로 보고해서 잘못된 정책을 수정케 할 정도였다.

 

이순신의 이러한 현실주의는 1594년 이순신의 진영에서 과거를 실시하는 진중과거시험을 실현케 했다.  게다가 한산도라는 공간의 특수성으로 무과시험 과목인 말을 타는 것이 어렵기에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 대신 활을 쏘는 것으로 시험과목을 변경해 달라는 요청까지 한했. 그가 현실적인 상황을 중시하지 않았다면 부하들은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고, 비현실적인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시험을 보게 됐을 것이다. 그의 설득력 있는 제안은 받아들여져 그해 과거시험에서 100명의 급제자가 나왔다.

이처럼 이순신은 언제나 철저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과거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또 미래로 책임을 미루기보다는 지금 당장, 이 순간산에 해야 할 임무를 우선시했으며, 그 현실에서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이상, 이순신처럼 경영하라..기업가 정신과 현장의 힘 7가지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