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로 보는 세상

화정 광해군의 화기도감과 조선 비밀병기 비격진천뢰

 

화정 광해군의 화기도감과 조선 비밀병기 비격진천뢰

 

 

선조의 딸 정명공주(이연희)의 기구한 삶을 그려나가고 있는 드라마 화정에서 영의정 한음 이덕형(이성민)은 강주선(조성하)으로부터 광해군(차승원)이 은밀히 화약을 제조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첨괘정(枕戈亭)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광해군이 중신들도 모르게 단독으로 무기를 만드는 일에 골몰해 있는 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분노합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분노하는 이덕헝에게 차라리 이렇게 밝혀져 잘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소. 난 여기서 은밀히 무기를 제조하고 화약을 만들고 있었소. 화기도감(火器都監) , 그것이 이 기구의 이름이 될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허약한 조선을 맹주로 만들겠다, 침략받지 않기 위해 침략해야 하는 힘을 기르겠다며 자신의 오랜 꿈을 당당히 드러냅니다.

 

화정 광해군의 화기도감과 조선 비밀병기 비격진천뢰

 

이어서 변변한 무기조차 없을 뿐더러 가장 중요한 화약을 제 손으로 만들지 못해 고작 명이 공급해 주는 것으로 연명하는 조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광해군은 필요할 때는 조선을 총받이로 쓰면서 조선이 강해질까봐 두려워 화약 제조법을 숨긴 채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어온 명에 대항할 뜻을 밝힙니다. "나의 조선은 다를 것이오!"라며 자신을 반대하는 이덕형과 강하게 대립하는 광해군입니다.

 

실제로 명과 후금, 일본 등으로 인해 늘 불안에 떨면서도 무기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조선을 안타깝게 생각한 광해군은 선조 때 세워진 조총청을 발전시킨 화기도감을 통해 새로운 비밀병기를 만들어냅니다. 화기도감과 이 화기도감에서 제작된 병기 중 블랑기, 현자총통, 삼안총에 대해 알아보고, EBS 역사채널e에서 방영한 '귀신폭탄', 즉 조선의 신병기 비격진천뢰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드라마 화정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화기도감

화기도감 조직도(이미지 출처 드라마 화정 홈페이지)

 

화기도감은 조선시대 총포를 제작하기 위해 설치한 병조 소속의 임시기구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군은 조총으로 초기에 전세를 잡았다. 충격을 받은 조정에서는 이에 대응하고자 조총청(鳥銃廳)을 만들어 총포 제작을 시도했다. 광해군 때 청나라의 세력이 급진적으로 확대되자 북호(北胡)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총포 제작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대신들의 건의가 이어졌고,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1614년 조총청이 화기도감으로 개칭되었다. 화기도감은 1615년 1차 업무를 마친 뒤 별다른 역할이 없다가 1904년 행정제도 개편에 따라 군기창(軍器廠)으로 개칭되었다. 화기도감에서 제작한 화포의 종류는 동철로 만든 불랑기(佛狼機), 현자총통(玄字銃筒) 등이 있고 정철(正鐵)로 만든 삼안총(三眼銃) 등이 있다. 

 

 불랑기

불랑기(이미지 출처 두디피아)

 

불랑기는 프랑크(frank)의 한자식 표기로, 명나라 사람들이 유럽인들을 프랑크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당시 유럽인들이 보유했던 화포로, 임진왜란 중 명군(明軍)에서 본격적으로 전래되어 17세기 이후에는 조선군의 주력 화포로 사용되었다. 

 

현자총통

현자총통(이미지 출처 문화재청)

 

보물 제1233호인 현자총통(玄字銃筒)은 불씨를 손으로 점화 발사하는 유통식(有筒式) 화포(火砲)다. 그 크기와 사용되는 화약의 양, 발사거리에 따라 4가지로 분리해 천자문에서 그 이름을 따 천(天), 지(地), 현(玄), 황(黃)자총통이라고 붙였는데, 이 중 크기가 세번째에 해당하는 중화기다. 

 

 삼안총

삼안총(이미지 출처 문화재청)

 

임진왜란 중에 명군으로부터 전래된 삼안총(三眼銃)은 개인이 휴대할 수 있게 만든 작은 총이다. 하나의 손잡이에서  세 개의 총신(銃身)이 뻗어나간 특이한 형태 때문에 삼혈총(三穴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주로 살상용이지만 신호용으로도 사용했다.

 

 조선 비밀병기 비격진천뢰 - 우리 민족 최초의 시한폭탄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혼비백산케 한 조선의 비밀병기다. 하늘에서 날아와 땅에 떨어진 후 천지를 울리며 터지는 폭탄이라고 해서 비격진천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 중기 군사목적으로 사용된 비격진천뢰는 선조 때 화포장 이장손(李長孫)이 처음 발명했다. 류성룡의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진영 적진에서 괴물체가 날아와 땅에 떨어졌다. 군사들이 모여들어 이리저리 굴러보며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폭발했다. 왜군들은 모두 귀신이 한 짓이라고 생각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른바 귀신폭탄이었다.

 

비밀병기의 핵심 1 폭발지연장치

 

조선시대 병기서적 융원필비(戎垣必備)에 따르면, "빨리 폭발시키려면 10회를, 더디게 폭발시키려면 15회를 감는다"고 기록돼 있다. 화약선의 길이로 폭발시간을 조절하는 시한폭탄이었던 것이다. 화약선이 화약에 닿지 않게 죽통에 넣어 차단한 다음 화포를 이용해 멀리까지 발사할 수 있었으며, 완구(박격포)에 실어 발사하면 300보(약 380미터)를 날아갔다. 폭발시간을 조절하는 기술이 없던 시대 당시의 포탄은 폭발하지 않는 단순한 고체덩어리였다. 그러나  심지에 불을 붙이고 기구를 이용해 발사 적진에 떨어진 후에야 폭발하는 신개념폭탄인 비격진천뢰는 일본군에게 무시무시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비밀병기의 핵심 2 치명상을 입히는 쇳조각


폭탄 속에 화약과 함께 넣은 날카로운 쇳조각은 폭발과 동시에 수많은 왜군들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살상용 작열포탄이었다. 적들은 귀신의 짓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류성룡의 징비록에는 "왜적들은 비격진천뢰를 가장 두려워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일본측 기록인 정한위략에도 “적진에서 괴물체가 날아와 땅에 떨어져 우리 군사들이 빙 둘러서 구경하고 있는데, 이것이 갑자기 폭발해 그 소리가 천지를 흔들고 철편이 별가루처럼 흩어져 맞은 자는 즉사하고 맞지 않는 자는 넘어졌다‘고 기록돼 있어 일본군을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시켰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비격진천뢰(이미지 출처 두피디아)

 

비격진천뢰는 우리나라 독창적인 무기다. 중국이 비격진천뢰와 유사한 작열탄 종류인 진천뢰라는 무기를 12세기부터 사용했지만, 이는 철로 만들어진 용기 안에 폭발성이 강한 화약을 채워넣은 것으로, 도화선을 사용해 점화함으로써 손으로 던지는 휴대용 폭탄에 가까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비격진천뢰는 중국의 진천뢰와는 성격이 다른 독창적인 무기다. 
 

비격진천뢰(이미지 출처 두피디아)

 

대완포구(大碗砲口)로 발사하여 5~6백보의 사정거리를 갖는 비격진천뢰는 둥그런 쇠모양의 무쇠 속에 오늘날 폭탄의 신관 역할을 하는 죽통이 들어 있다. 죽통 속에는 나선형 홈이 파여 있는 목곡이 들어 있고, 목곡에 도화선인 화약선을 감았다. 여기 감긴 화약선의 숫자에 따라 폭발시간이 다르다. 이는 죽통 속의 목곡이 원시적 형태의 신관 역할을 대신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화약선이 목곡을 타고 돌며 타들어갈 때 화약이 폭발하지 않도록 죽통에 넣은 점은 매우 획기적이다. 즉 죽통이 형성돼 있어 폭발시간을 지연시킴으로써 완구에 의해 발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단순히 폭발하는 작열탄이 아니라 날아가 폭발하는 작열포탄인 셈이다.

 

 

비격진천뢰는 1592년 가토오 가요마사 휘하의 군사들에게 함락당한 경주성을 탈환하는 전투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일본군은 비격진천뢰의 공격에 혼비백산하여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채 패주했다. 당시 사용된 화기들이 주로 목표물에 충격을 주는 무기였으나 비격진천뢰는 목표물에 날아가서 폭발하는 작열포탄이었기에 그 폭발력에 일본군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뒤이은 진주대첩에서도 일본군 3만여 명을 맞은 조선군은 단 6일간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상 화정 광해군의 화기도감과 조선 비밀병기 비격진천뢰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