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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화정 김개시 광해군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 여인 김개똥

 

화정 김개시 광해군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 여인 김개똥 

 

 

선조의 딸 정명공주(정찬비)의 기구한 삶을 그린 드라마 [화정]에서 인목대비(신은정)는 선조의 적장자이자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 영창대군(전진서)이 역모의 죄를 쓰고 강제로 끌려가 유폐되자 정명공주도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궐 밖으로 빼돌립니다. 격암 남사고의 예언서는 광해군의 왕좌를 위협하는 문서였는데, 이이첨(정웅인)은 격암의 그 예언이 백성들에게 퍼져나가기 전에 영창대군을 죽여 화근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뒤늦게 "불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라는 격암 남사고 예언의 주인공이 정명공주라는 것을 깨달은 김개시(김여진)는 숨통을 끊어놓아야 한다며 정명공주를 뒤쫓습니다.

 

남장(男裝)을 하고 궁을 나선 정명공주는 목숨을 건 도주를 시작하고, 정명공주와 함께 떠난 최상궁(김소이)은 곧 이이첨의 추격을 받게 되자 공주를 혼자 조각배에 태워보낸 뒤 자신은 다른 배에 공주와 함께 있는 것처럼 위장합니다. 곧이어 최상궁이 탄 화약이 가득한 배는 이이첨이 쏜 불화살에 맞아 폭파되고, 이이첨은 정명공주가 화염 속에서 죽은 것으로 알게 됩다. 폭발사고로 죽을 뻔한 공주는 다행히 지나가던 배에 구조되지만 그 배는 해적선인데다 노예들을 인근의 광산으로 끌고 가던 참이어서 공주 역시 노예가 되고 맙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기에 앞으로 정명공주 앞에 펼쳐질 파란만장한 삶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화정 김개시 광해군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 여인 김개똥

 

왕자와 공주로 태어나 이 세상 누구도 못 누릴 영화로운 삶이 기약된 영창대군과 정명공주였지만, 그들이 이렇듯 참혹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왕위를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권력투쟁의 맨 꼭대기에는 악랄한 대북파의 수장 이이첨과 상궁 김개시가 있습니다. 특히 김개시는 지략가로 권모술수에 능할 뿐 아니라 냉혈한에 가까운 면모로 광해군을 좌지우지하면서 광해군을 위해서라면 어떤 악역도 마다하지 않은 여인이었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광해군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 김개시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본 것입니다. 드라마 화정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조선왕실에서 왕의 수라는 항상 독살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왕들은 독살을 막기 위해 갖은 대비책을 썼지만 독살설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선조의 독살인데, 변덕스럽고 의심 많은 아버지 선조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받았던 광해군이 선조가 폐가입진(廢假立眞)을 외치며 자기 대신 왕위에 올리려 하자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이 독살설의 배후에도 김개시가 있다.

 

 

폐가입진이란 본디 "가왕(假王)을 몰아내고 진왕(眞王)을 세운다"는 말로, 고려 말 이성계 등이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사건을 말하는데, 선조는 가짜, 즉 서자 광해군을 버리고 진짜, 즉 적자 영창대군을 세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결국 이 선언은 선조 스스로 자신을 더 빠른 죽음으로 몰아넣은 셈이 되고 만다.    

 

 

가까이에서 선조를 모시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선조를 독살한 김개시는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하는 공을 세운 후 더욱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뛰어난 지략가인데다 막후공작과 사람의 심리를 잘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어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탁월한 재주를 지닌 김개시는 광해군이 이이첨보다 더 신뢰하는 정치적 동반자였다. 

 

광해군 5년(1613년) 계축옥사로 인목대비의 친정을 멸문시킨 후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저주했다는 사건을 제기해 인목대비까지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인 주동자도 김개시였다. 결국 김개시의 끈질긴 공작으로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었고 그 후에도 죽음 직전에까지 몰리는 수난을 당했다. 이런 과정에서 김개시는 온갖 술수와 모함을 일삼는 정치꾼으로 거듭난다.

 

 

김개시는 의인왕후의 능에 저주의 물건을 묻어둠으로써 인목대비와 그 외척들, 그리고 영창대군을 역모의 누명을 씌우기도 했는데, 이때 그 저주의 물건을 묻고 온 나인도 간단히 처치해 버린다. 나인에게 따뜻한 청주 한 잔을 권한 김개시는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면서 '쓰임새'에 관한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어린시절 아비의 노름빚에 팔려 궁궐에 들어온 김개시는 쓸모없는 나인 중 하나로 지냈지만 어느 날 서책을 찾는 광해군에게 시경과 서경의 구절을 혼동한 것을 지적해 주목을 받게 된다. 그때 광해군은 개똥이의 한자식 표현인 ‘개시’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에게 “세상이 틀렸구나. 너처럼 귀한 아이를 그리 하찮은 이름으로 부르다니..”라고 말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쓰임새’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김개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인이 별안간 피를 토하고 죽는다. 김개시가 건네준 청주는 독이 든 술이었던 것이다. 김개시의 말대로라면 그 나인은 자신의 쓰임을 마치고 죽어간 셈이다.

 

 

이처럼 자신을 도와준 나인마저 행여나 말이 새어나갈세라 독주를 마시게 해서 죽이고는 증거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집까지 태우면서도 김개시는 태연자약하게 “서러워 말거라. 누구에게도 생이란 본시 이리 허망한 것일 테니. 허나 살아 있는 동안은 누구든 저렇게 타올라야 하는 구나. 나를 태우고 모든 것을 태워서라도” 하고 말한다. 이름조차 하찮고 아비마저 닷냥에 팔아넘긴 그런 쓸모없는 삶 속에서 스스로를 불태워서라도 자신이라는 존재를 우뚝 세우고자 안간힘을 다한 여인이 바로 김개시였던 것이다. 

 

 

김개시는 어렸을 때 입궁해 상궁에까지 올랐지만 정식 후궁이 되지는 못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의하면 김개시는 천예의 딸, 즉 천한 노예의 딸이었다. 노비의 딸이었으니 당연히 노비의 신분이었던 그녀는 궁녀로 입궁한 후에도 주로 공노비인 내수사 출신의 궁녀들과 어울렸다. 게다가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다고 한다.

 

 

김개시는 애초에 훗날의 광해군이 되는 동궁 소속의 궁녀로 입궐했지만 그 후 어찌된 연유인지 선조의 나인이 된다. 아마도 김개시가 글도 잘 알고 문서 처리에도 능숙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인 듯하다. 그러나 선조가 세상을 떠나고 광해군이 즉위한 후 김개시는 다시 광해군의 지밀나인으로 옮긴다.

 

광해군은 자신의 궁녀를 데려온 것이지만, 김개시가 아버지 선조를 모셨던 궁녀였던 만큼 비난의 소지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광해군이 그런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김개시를 옆에 둔 이유는 세자 시절에 맺은 인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궁중에서 자신을 위해 성심으로 충성할 궁녀, 그것도 똑똑한 궁녀가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광해군은 김개시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보임으로써 김개시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도록 만들었다.

 

 

한편 정명공주도 죽고 영창대군도 죽었다는 말을 듣고 피붙이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광해군에게 김개시는 너무도 당당하게 이제 인목대비만 남았으니 인목대비마저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김개시를 보고 광해군은 탄식을 하며 “넌 끝내 내 앞에서 조아리지도 않는구나. 나는 널 죽일 수도 있다. 영창과 공주를 시해한 죄를 물어서!”라고 분노하며 칼을 빼든다. 하지만 김개시는 침착한 얼굴로 “허면 그리하시지요. 하지만 전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언젠가 하셔야 할 일을 제가 대신 한 것뿐이라는 걸“이라고 답한다. 자신을위해 피를 묻히는 일에 나서기를 마다 않으며 충성을 다하는 김개시를 광해군으로서도 차마 잘라내버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김개시(金介屎)는 조선시대 천민의 흔한 이름으로 '시'(屎)는 '똥'을 뜻해 역사학자들은 김개시의 본명이 김개똥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노비의 딸로 궁녀가 된 김개시는 선조와 합궁한 후 김가희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선조와 광해군 사이를 중재하며 광해군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고, 그 후로는 광해군의 후궁도 아니면서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왕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휘두르던 김개시는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반정군에게 처형당했다. 인조반정은 광해군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처사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일어난 것이었는데, 인목대비를 유폐한 만행은 반인륜적인 처사였다. 광해군의 반인륜적인 만행의 중심에는 언제나 김개시가 있었다. 결국 광해군의 빛나는 앞날을 주고자 그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어떤 악행도 마다 않은 김개시였지만 그런 그녀의 악행이 결국은 광해군의 앞길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상 화정 김개시 광해군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 여인 김개똥이었습니다. 흥미롭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