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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역사채널e] 세종대왕의 [초가에 살리라]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세종 제1계명)

 

7월 31일 EBS 시사교양프로그램 [역사채널e]에서 방송한 세종대왕[초가에 살리라]에 관한 포스팅입니다.

세종 즉위 초기, 강원도에 큰 가뭄이 있었는데, 그때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세종 제1계명>으로 삼았던

세종대왕은 경복궁 내 화려한 연회장인 경회루 옆에 작고 소박한 초가집을 짓고, 그곳에서 흉년에 피폐해진

백성들을 위해 세심하게 정사를 보살펴나간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EBS [역사채널e] 세종대왕의 [초가에 살리라]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세종 제1계명>으로 삼은 세종이야기

 

 

E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역사채널e]에서는 나라에 자연재해가 있을 때 굶주림에 처한

백성들의 안위를 그 어떤 일보다도 우선순위로 보살폈던 세종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EBS [역사채널e] 세종대왕의 [초가에 살리라] 경복궁 내 누각 경회루

 

 

경복궁 서쪽 연못 앞에 세워진 누각 경회루. 이곳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여는 가장 화려한 공간입니다.

 

 

세종대왕의 초가살이. 경회루라는 가장 화려한 연회장 옆에 가장 허름한 초가집이 세워진다

 

 

그런데 그 곁에 경복궁 내 가장 허름한 집이 세워집니다. 바로 기근 때 겸허한 마음으로

백성들의 안위를 위한 정사에 몰입하고자 세종이 지은 초가집입니다. 

 

 

 

 

1418년 세종은 2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세종 즉위 10년간 단 한 해도 가뭄이 들지 않은 해가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세종 재위 4~5년엔 발생한 강원도 대기근으로 강원도 영서지방의

총가구 9,509호 중 굶주림으로 인해 없어진 가구는 2,567호나 되었습니다.

 

 

 

 

게다가 황폐화된 토지는 61,790결이나 되었고, 굶주린 이들은 심지어 흙을 파서 떡과 죽을 만들어 먹어야 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맞은 세종은 무엇보다도 먼저 백성들의 구호 업무에 온힘을 쏟았습니다.

 

 

 

 

매일 일을 아뢸 적에는 흉년에 관한 정사를 제일로 삼으라고 했고,

수령들에게 현지의 실태를 거짓없이 정확하게 보고할 것을 강조했습니다([세종실록], 세종 4년)

 

 

 

 

그리고 기민들이 먹을것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심하게 야위고 부종이 있는 사람은 출신지역에 관계 없이 회복될 때까지 보살피게 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고향을 떠나서 떠도는 백성들이 많았지만 굶주려 죽는 사람은 적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국무를 보았던 경회루 동쪽의 작은 초가집.

이곳은 세종의 사정전(집무실)이자 강녕전(침소)이었습니다.

 

 

 

 

앞서 임금이 경회루 동쪽에 버려둔 재목으로 별실 두 칸을 짓게 하였는데,

주춧돌도 쓰지 않고  모초(억새풀)로 덮게 하였으며, 친히 명령하여 모든 장식을 검소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세종은 정전에 들지 않고 이 별실에 기거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신료들은 왕의 잠자리를 염려하여 몰래 초가집 바닥에 짚더미를  넣었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어찌 이런 것을 만들었느냐? 지금부터 내 허락 없이는 비록 작은 물건 하나라도

안에 들이지 말라"고 신하들을 꾸짖었으며, 그 어떤 편의도 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니 직접 나가서 벼농사 형편늘 살펴보겠다며 돌아보고는

농사가 잘 되지 못한 곳에서는 반드시 농부에게 까닭을 물었고,

점심을 먹지 않고 궐로 돌아왔습니다.

 

 

 

 

세종은 직접 현장을 방문해 문제를 파악하고 백성의 소리를 제일로 삼았습니다.

연이은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진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고통을 함께 느낀 세종.

세종의 초가살이는 2년여 동안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율곡 이이는 [율곡전서]에서 "우리나라 만년의 운이 세종에게서 처음 그 기틀이 잡혔다.

백성들의 살림이 넉넉해지고 인구가 많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세종처럼] (박현모)에는 세종 십계명이 나오는데,

이 중 제1계명은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라는 핵심 언명입니다.

 

임금으로 있으면서 백성이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조세를 징수하는 것은 진실로 못할 짓이다.

하물며 지금 묵은 곡식이 이미 다 떨어졌다고 하니,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준다 해도 미치지 못할까 염려되거늘,

오히려 굶은 백성에게 조세를 부담시켜서 되겠는가.
더욱이 감찰(어사)을 보내어 백성의 굶주리는 상황을 보게 하고서

조세조차 면제를 해주지 않는다면,

백성을 위하여 혜택을 줄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세종실록]에 나오는 말입니다.

세종은 국왕이 해야 할 첫번째 일은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근본인 ‘백성’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억울함에 괴로워한다면

왕이나 수령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는 세종대왕의 말입니다.

 


 

세종대왕이 그토록 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국가의 일을 내 책임이라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세종이 이러하기에 여러 인재들도 "임금은 비록 세종이지만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라는

마음으로 소임을 다했지요. 이것이 세종리더십의 가장 핵심적인 비결입니다.

세종대왕의 지식경영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세종대왕의 지식경영과 토론의 적 네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