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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골든크로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거짓말과 [억울함의 상처]

 

 

 

며칠 전에 올린 거짓말을 위한 변명-인간은 타고난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의 딜레마> 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거짓말을 위한 변명"이라는 카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는 선의에서 하는 하얀거짓말과 빈말, 치렛말, 허풍과 과장 등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나가는 데  윤활유가 되는 거짓말은 불가피한 게 아닐까 하는 문제를 짚어보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라는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거짓말, 즉 검은거짓말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오로지 제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고,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심지어는 남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하고도 증거가 드러날 때까지! 태연자약하게 자신이 한 짓을 부정하는

몰염치하고 파렴치한 거짓말에 대해서까지 그런 딜레마에 빠질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검은거짓말, 즉 진짜 거짓말 중에서도 그 어떤 거짓말보다

더 억울하고 슬픈 거짓말은 자신이 한 짓을 안 했다고 부정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자신이 안 한 짓을 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거짓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KBS2 수목드라마 <골든크로스>에는 바로 그 억울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이대연)가 나옵니다. 가스관에 시한폭탄을 장착해 놓고는,

만일 자신의 친딸을 죽였다는 거짓자백을 하지 않으면 즐겁게 개업축하잔치를 벌이고 있는

아내(정애리)를 죽이겠다는 협박에 굴복한 아버지는 스스로 살인자라고 억울한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사정을 알 리 없는 아내와 아들로부터 갖은 원망을 들으면서도 

가족의 장래를 위해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다구!" 라는 거짓말을 밀고 나가는 아버지가

얼마나 억울한 심정에 휩싸여 있을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지난 포스팅 [트라우마 테라피] 세월호 침몰사고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서

소개한 적 있는<트라우마 테라피>에서  마음경영 전문의 최명기님은

굴욕의 상처, 무시의 상처, 배신의 상처, 공포의 상처, 간섭과 통제의 상처,

따돌림의 상처, 냉담의 상처 외에 억울함의 상처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각각의 상황이 어떤 심리구조를 통해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지,

그리고 각 상황이 남긴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데, 

다음 글은 중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드는 [억울함의 상처]를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이자면, 이 챕터에는 비서실에 근무하던 여직원이 파렴치한 사장 아들이

접근해 오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자, 화가 난 사장 아들이 그녀를 지방으로 발령을 내고,

거기에 불복한 그녀가 고발을 하고 나서자 오히려 그녀가 사장 아들에게 접근해 왔다면서

꽃뱀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하는 억울한 일을 겪어야 했던 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오해나 누명은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죄를 뒤집어쓰게 되면 분노는 억울함으로, 억울함은 우울함으로 이어진다.

억울함의 상처는 세상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기에 나 역시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다.

윤리도, 도덕도, 상식도, 법도 모두 무의미해진다.

 

마음내키는 대로 아이를 대하는 변덕스러운 부모나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한 외골수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경우 억울한 마음이 더 크게 자리잡는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불행한 역사는 그러한 심리적 억울함에 사회적 억울함을 더해주었다.

아무 이유 없이 간첩으로 몰리거나 빨갱이로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끽소리라도 하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까 두려워 사람들은 참았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힘들었다.

시집살이를 하려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지금도 상명하복의 전통이 강하게 자리자고 있는 정부조직과 기업이 적지 않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도 억울함에 일조한다. 

 

 

억울함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1)  나만큼은 진정 나를 믿어야 한다

 

잘못한 것이 없어도 궁지에 몰리다 보면 자기 존중감이 낮아진다. 

이렇게 자신의 정당성을 버리고 타인의 의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일종의 세뇌다.

자신보다 교주를 더 믿고 교주가 시키는 대로 집단자살을 하는 경우는 종교집단에 세뇌가 된 것이고

군인들이 명령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도 세뇌가 되어서 가능하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살테러를 감행해 수많은 무고한 시민을 죽게 하는 이들도 세뇌가 된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아이 같은 사회적 약자는 자기 잘못이 아닌 것도

무조건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이 미덕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자식은 무조건 부모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면서도 참았다.

학생은 무조건 선생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학교에서 부당하게 구타를 당해도 참았다.

처녀성에 대한 집단세뇌 때문에 성폭행을 당하고도 숨기는 여성들이 많았다.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가정폭력이 횡행했다.

억울하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인내했다.

 

하지만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당신이 처하는 불이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냥 참으면 그 상황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아니, 참으면 참을수록 상대방은 자신이 정당하다고 착각한다.

사람들에게 당신이 이 상황을 억울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리고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그 노력이 쌓이면서 사람들은 당신이 처한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 상식이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에 세상과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 재산, 명예, 체면같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가치에 종속되다 보면,

세상이 나를 저버릴 때 나 역시 나 자신을 저버리게 된다.

나만이 인정하는 나 자신의 고유 가치를 보존해야만

세상이 나를 저버릴 때도 나는 끝까지 나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2) 피해의식을 점검하라

 

남들은 그냥 넘어갈 일인데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생긴 오해를 사람들이 일부러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고도 한다.

어느 정도는 본인이 오해를 받게끔 자초한 것인데 자기 잘못은 잊고 무조건 남 탓만 하는 경우도 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자동적으로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꾸 일을 만드는 타입이 있다.

내재적인 분노가 잠재되어 있는 경우 그러하다.

이렇듯 세상은 변해가는데 본인이 바뀌지 않으면 억울한 일이 많이 생긴다.

하물며 매번 세상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면 그 결과는 끔찍하다.

법보다 무서운 것이 상식이다.

 

어떤 직장상가가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회식에서 신입 여직원의 손을 한번 잡았는데

그것이 성희롱으로 문제가 된 경우가 있었다.

직장상사의 입장에서는 그저 손 한번 잡은 것이 성희롱으로 회부된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세상이 바뀐 것이다.

이혼을 하면서 배우자에게 재산의 대부분을 위자료로 넘기게 된 경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세상이 그렇게 바뀐 것이다.

연예인이 술을 마시고 길에서 소란을 피워서 파출소에 갔는데

인터넷 게시판에 인간말종이라는 댓글이 계속 올라온다.

억울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실수가는 용인이 안 된다.

점점 나이, 성별, 학벌, 직급, 출신과 상관 없이 타인을 존중해야 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3)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면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다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망원경을 거꾸로 보면 물체가 도리어 작게 보이게 된다.

망원경 내의 볼록렌즈는 오목렌즈로 작용을 하고

오목렌즈는 볼록렌즈로 작용하면서 자그마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목표만 지향하는 삶에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잔재미가 결여되어 있다.

억울한 사정에 처한 삶을 이해하고 도와줄 때 우리는 가장 인간다워질 수 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비로소 우리 눈에는 다른 억울한 사람들이 보이게 된다.

그 동안 내 시야에서 벗어나 있던 절반의 또 다른 세상이 내 삶에 추가된다.

동경의 대상인 강자들의 삶이 아닌 연민의 대상인 약자들의 삶이 시야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항상 높은 곳만을 향하던 시선이 밑을 향하게 되면서 삶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예상치 않았는데 나를 위로해주는 이를 통해서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에는 내가 이기고 짓밟아야 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세상에는 내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4) 억울함을 통해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간디는 변호사였지만 말주변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변호사 생활을 위해 아프리카로 갔는데, 그곳에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다.

법정에서 판사가 터번을 벗으라는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벗지 않았다.

기차에서 1등 칸에 있다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억울한 일들을 통해 간디는 과거의 간디가 아닌 인도를 독립으로 이끄는

간디로 다시 태어났다. 억울함을 견디어내면서 당시 영국을 지배하던 대영제국도

지배할 수 없는 우주와 같이 커다란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이다.

죽음만이 해결책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고립무원의 순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비통함, 외로움, 슬픔, 공허함과 마주대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 밑바닥까지 깨닫게 된다.

몸은 살아 있더라도 정신은 죽은 상태다.

 

그렇게 마음이 한번 죽었다 다시 살아나게 되면 삶이 달라진다.

과거에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매달렸던 것들이 덧없이 느껴지고

몰랐던 삶의 가치를 내 안에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