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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보는 세상/일상다반사

진정한 사랑이란 영원한 가까움인 것을(어버이날에 부치는 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1930년에 발표된 시인 김영랑님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라는 시에서 따온 싯귀를 제목으로 한 책인데,

10년 전사단법인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로또공익재단의 후원하에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어온 환우들의 체험담을 모아 펴낸 수기집입니다.

 

  

 

 

책에는 온몸이 마비되어 식물인간처럼 사지를 묶인 채 살아가고 있는 환우,

태아알코올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떠안고 평생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사는 환우,

딸과 엄마가 혹은 아빠와 아들딸이 다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려 사투를 헤매는 환우,

장 절제수술을 무려 여섯번이나 하면서도 목숨자락을 놓지 않는 환우,

태어나면서부터 입천장이 뚫려 인큐베이터에서 간신히 목숨을 연명해 나가는 아기 등

여러 환우들의 사연과 그 곁을 지키면서 환우 못지않은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이 책을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질병이 환우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단지 고통을 준 것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눈이 안 보이자 시각장애인들의 고통을 느끼고,

말을 못하게 되자 언어장애인들의 고통을 느끼고,

팔다리가 마비되자 지체장애인들의 고통을 몸소 느낌으로써

오히려 자신보다 더 큰 불행과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생각하는 눈과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고통의 늪에 빠져 불행하다는 생각만 할 것 같은 그들이지만,

환우는 물론 그 가족들은 누구할 것 없이 똑같은 말을 합니다.

즉 만일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자신들의 가슴속에 

이토록 큰 사랑이 가득했다는 것을 절대로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퍼내도 퍼내도 더욱 맑게 샘솟는 샘물처럼 사랑이 샘솟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부모님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고통을 준 자식이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합니다.

여느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건강이나 명예, 물질, 학력 같은 조건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게 아님을 알게 된 덕분이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내 모습이 이렇게도 못난 것은 누구를 가슴 터지도록 사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내 마음이 이렇게도 텅 빈 것은 조그만 마음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내 이 조그만 마음그릇을 모두 모두 채워 사랑해 보리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상대의 고통을 기꺼이 내게 달라고 하는 것,

아픈 몸으로도 내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다고 하는 것,

자신들 앞에 다가온 불행을 또 다른 행복의 시작으로 여기는 것.

그 중에서도 그 어떤 인연보다도 깊고 질긴 부모님의 사랑은 이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겠지요.

 


 

한용운님의 <인연설 1, 2, 3 >을 함께 올립니다.

한용운님의 사랑에는 좀더 큰 의미가 담겨 있겠지만,

어버이날을 맞은 오늘만큼은 그 사랑을 어머니께 바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은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나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표정은 이별의 시작입니다.

 

떠날 때 우는 것은 잊지 못한다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인연설 1>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 원망치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애처로운 사랑이라도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렵니다

 

<인연설  2>

 

 


 

세상 사람들은 참 어리석습니다.
그리고 눈이 너무 어둡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스스로 우스워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먼 먼 더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가까운 것은 벌써 가까운 것이 아니며
멀다는 것 또한 먼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가까운 것은 먼 곳에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먼 곳도 가까운 것도 아닌
영원한 가까움인 줄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말이 없다는 것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많다는 것은 정작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사를 한다는 것은 벌써 인사가 아닙니다.
참으로 인사를 하고 싶을 땐 인사를 못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더 큰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인연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