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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보는 세상/일상다반사

러시아 여행길에서 마주친 거리의 예술가 두 사람

 

마음씨 좋은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집 근처에는 공원이 있었는데,

그가 자동차를 타고 그 공원을 지날 때마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늘 벤치에 앉아 앞쪽 호텔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슨 연유일까 하고 궁금해해던 부자는 어느 날 자동차를 멈춰세우고  

그 남자에게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매일 여기 앉아서 호텔을 쳐다보고 계시던데, 무슨 까닭이십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집도 절도 없는 신세여서 매일 이 공원에서 지냅니다.

이 벤치에 앉아 저 호텔을 바라보며 저곳에서 사는 것처럼 생각하고,

밤에도 저 호텔에서 자는 꿈을 꾸면서 이 벤치에서 잠든답니다."

 

그 말에 부자는 선뜻 말햇습니다.

"호오, 그러시군요? 알았습니다. 저 호텔에서 지내는 게 꿈이라면

내가 당신의 꿈을 이뤄드리리다. 한 달 숙박비를 내가 내줄 테니

저 호텔에서 가장 좋은 방을 골라서 지내도록 하십시요."

 

그는 기뻐하며 그 호텔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부자는 그가 다시 공원 벤치로 돌아와 있는 것을 보고

다시 그에게 가서 어찌된 까닭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공원 벤치에서 자면서 저 호화로운 호텔에서 자는 꿈을 꿀 때는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지내다 보니 더 이상 뭔가 이루고 싶다는 꿈을 꿀 일이 없어지더군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후면 결국 다시 이 딱딱한 벤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이 짧은 글이 생각난 것은, 요즘 지난 여행중에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오늘 포스팅에 올린 두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여행을 가면 그곳 풍광을 즐기기보다는 사진을 찍는 데 더 여념이 없게 마련입니다.

그 대열에 끼어들기가 싫어서 쭈뼛쭈뼛하고 있으면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무슨 소리야. 나중에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무조건 찍어둬"라고 말하곤 하지요.

 

그래서 저도 질세라 열심히 여기저기 찍긴 했는데, 

정성껏 찍지를 않아서 그런지 요 며칠 사진정리를 하다 보니

그나마 찍은 사진들도 제대로 마음에 들게 나온 게 별로 없네요.

게다가 돌아와서 바로 어느 나라, 어느 거리인지 간단하게 메모라도 해놓았어야 하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여기가 어디였지?", "이 동상은 대체 누구의 동상이었지?"

하고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얼마 전엔 어느 블로그 친구님 댁에 들렀다가

누구의 동상인지 궁금해했던 동상의 사진과 설명이 나와 있어서

꿈에서 님이라도 본 듯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ㅎㅎ)

표토르 대제의 동상이었던 겁니다..  

 

아무튼 제 경험상 말씀드리면, "경치를 감상하는 게 중요하지 사진 찍는 게 

뭐 그리 중요해?"라는 말 절대 듣지 마시고, 멋진 풍광 감상하시는 틈틈이

열심히 사진도 찍으셔야 합니다. 다들 그렇게 하고 계시겠지만,

저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봐 드리는 말씀입니다.(ㅎㅎ)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아무튼 저 위 사진은 아마도(?) 러시아 여행 때 찍은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는 빅토르 최라는 한국계 러시안인인 록가수를 

추모하는 벽이 있는데, 그때 그 벽을 찍으면서 그 옆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분의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그리고 위 사진은 모스크바는 맞는 것 같은데 어느 거리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많은 여행자들이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 어쩌면 사람들의 시선을 은근히 즐기며 자기 일에 열중해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저렇듯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잠깐 머리를 스쳤었습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었지요. 혹여나 제가 잠시나마 부럽게 생각했던

그 삶이 정작 본인에게는 전혀 원치 않는 삶, 또는 피치 못해서 선택한 삶이라면,

그런 속내도 모르고 부러워하는 것이 참으로 철따서니없고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술을 사랑해서 거리에서나마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훌륭한 연주공간이나 멋진 작업공간일 테니까요.

 


 

하지만 오늘 포스팅한 글과 이 두 장의 사진을 보니,

그 생각 또한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었던 게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리스의 괴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왔는데도

황송하게 맞이하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들어줄 테니 말해 보라"는 대왕에게 귀찮다는 표정으로 

"햇빛이나 가리지 않도록 옆으로 비켜서주면 좋겠다"는 말로도 유명합니다. 

어쩌면 저 사진 속 두 분도 디오게네스처럼 누군가 찾아와서 멋진 연주공간과

화랑에서의 작업을 약속한다 한들 단칼에 싫다고 거절해 버릴

지극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지도 모르지요. 

 

결국 어떤 삶이 성공적인 삶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봅니다.

그리고 남들이 뭐라든, 또 남들이 어떤 시선으로 본다 한들,

스스로 행복한 삶이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도 더불어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