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가 목숨과 맞바꾼 영화 일 포스티노

이탈리아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가 목숨과 맞바꾼 영화 일 포스티노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 마시모 트로이시 주연의 [일 포스티노]는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느와레)와 우편배달부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시)의 스토리를 다룬 이탈리아 영화다. [일 포스티노]는 이탈리어로 '우편배달부'라는 뜻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개봉되었고 2017년 3월에 재개봉되었다.

 

로맨틱 시인이기도 한 네루다는 공산주의자로 다른 좌익 인사들과 함께 몸을 숨겨야만 했으며, 자국인 칠레에서 체포영장이 떨어지자 이탈리아의 작은 섬 칼라 디소토로 와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어부의 아들 마리오는 네루다로 인해 엄청나게 늘어난 우편물을 보내주고자 오직 네루다 한 사람만을 위한 우편배달부로 고용된다.

 

이탈리아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가 목숨과 맞바꾼 영화 일 포스티노

 

네루다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며, 또 특히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을 알고 자신도 네루다처럼 섬마을 여자들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마리오는 그와 우정을 쌓아가면서 시와 은유의 세계를 만나게 되고, 아름답지만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여인 베아트리체와도 사랑을 이루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뜨거운 감성을 발견해 낸 일이었다. .

 

섬마을에서 살면서 배 타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 것을 따분하게 여기던 마리오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마을에서 그나마 겨우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청년이었지만, 영혼의 멘토 네루다를 만나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밖으로 내뱉는 말들이 곧 시가 되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동안에는 그의 감성을 두드려준 사람이 없었기에 내면에 갇힌 채 숨죽이고 있던 말들이었다.

 

이탈리아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가 목숨과 맞바꾼 영화 일 포스티노

 

물론 마리오의 이러한 변화는 네루다의 따스하고 온화한 이끎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1971년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최고의 시인 네루다와 이탈리아 조그만 섬마을의 무엇 하나 똑부러지게 내세울 것 없는 마리오라는 청년, 얼핏 보기엔 도저히 어울릴 듯싶지 않은 두 사람이 시를 매개로 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쌓아나가는 우정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게다가 감동의 스토리도 스토리이지만, 눈부시게 펼쳐지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시인 네루다를 만나고 세계지도를 펼쳐 자신이 사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고 그 자리에 동그라미를 그리던 마리오. 이렇게 자신의 존재에 눈을 뜬 그는 이후 시뿐만 아니라 자기 생각도 말로 명확하게 밝힐 줄 아는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진 삶을 살게 된다. "사람은 의지만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네"라는 네루다의 말도 그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런데 [일 포스티노]에서 주인공 마리오 역을 맡은 마시모 트로이시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데 대한 스토리를 MBC [신비한 TV서프라이즈]에서 다룬 적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1994년 3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작은 섬에서 한 영화의 촬영이 시작된다. 그런데 의사도 오고, 산소 텐트도 준비되고, 대역도 대기하고 있는 등 이 영화의 촬영 현장 분위기는 다른 곳과 사뭇 달랐다.

 

 

1995년 미국 LA에서 열린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화제가 된 영화는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이 연출한 이탈리아의 [일 포스티노]였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살리나 섬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작은 섬의 눈부신 풍경도 잘 어우러져 외국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각본상 등 무려 5개 부문의 후보로 올랐는데, 특히 외국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스웨덴 영화 [절규와 속삭임] 이후 22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화제가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우체부 역할을 맡은 주연배우 마시모 트로이시 때문이었다. 1981년 28살의 나이로 코믹영화 [리코민치오 다 트레]의 각본과 감독을 맡고 주연배우로까지 출연하며 이탈리아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마시모 트로이시는 이후 [호텔 클로니얼](1987년), [스플랜도르](1988년) 등 다수의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건강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사실 그는 심장의 혈액이 역류되지 않도록 하는 판막에 이상이 있었고 10대 시절부터 수차례 인공판막 삽입수술을 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처음 영화계에 발을 딛게 된 것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영화를 통해서 비로소 삶의 기쁨을 느낀 그는 비록 몸 상태는 점점 좋지 않아졌지만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연기를 계속했다.

 

 

그러던 1993년,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그는 평소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단 3주 만에 [일포스티노]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 연출과 우편배달부 역할을 동시에 맡기로 하고 밤낮으로 준비한 끝에 드디어 촬영만을 남겨두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상태로는 도저히 연출까지 소화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평소 친분이 있던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에게 연출을 부탁하고 1994년 영화 촬영이 시작된다. 카메라 앞에 선 마시모는 고통을 억누른 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데, 끝내 촬영장에서 정신을 잃고 만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하루라도 빨리 심장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영화를 위해 수술까지 미룬 채 촬영을 강행한다.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되어 하루 1~2시간도 서 있기가 힘들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1미터도 걷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촬영장에 의사를 대기시켜 수시로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산소호흡기가 구비된 산소텐트까지 마련해 위급시 사용했다. 그리고 촬영지의 주민들 중 자신과 나이와 체격이 비슷한 남자를 직접 찾아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뒷모습이나 풀샷 장면은 그에게 대역을 맡기면서 촬영을 이어갔다.

 

 

실제로 [일 포스티노]에서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수척해지고 야위어지는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렇게 간신히 버티고 버텨 10주 후 드디어 모든 촬영이 무사히 종료된다. 그리고 이렇듯 어렵게 만들어진 영화는 후반 작업을 거쳐 이탈리아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개봉된다.

 

감동적인 스토리와 아름다운 음악이 더해져 흥행에 크게 성공한 이 영화는 제68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5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작품성까지 인정받는다. 그리고 혼신의 연기를 펼친 마시모도 당당히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는데, 안타깝게도 시상식장에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촬영을 마친 후 마시모는 휴식을 위해 바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불과 12시간 만에 4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마시모의 장례식은 영화 관계자들과 수천 명의 팬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고향 산 조르지오에서 치러졌다. 그리고 마지막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와 열정에 그는 사망 후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오른 것이다. 이는 배우 제임스 딘, 스펜서 트레이시, 피터 핀치에 이어 네번째였다.

 

목숨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 그의 목숨과 영화 맞바꾼 영화 [일 포스티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길이 추억될 명작으로 남아 있다.      

 

이상, 이탈리아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가 목숨과 맞바꾼 영화 일 포스티노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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