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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호아킨 피닉스 너는 여기에 없었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호아킨 피닉스 너는 여기에 없었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호아킨 피닉스 너는 여기에 없었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많은 드라마와 소설, 영화가 전쟁의 참상을 다루어왔지만 그 중에서도 전쟁의 상흔을 주로 다룬 작품으로는 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과 영화 [디어헌터]가 떠오른다. 둘 다 베트남 전쟁이 배경인데, [하얀 전쟁]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덩케르크] 등 많은 영화도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즉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참혹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주제라기보다는 그 참혹함 속에서도 도전과 용기와 희망을 놓치지 않는 메시지를 주고자 하기 때문에 [하얀 전쟁]이나 [디어 헌터]를 보고 있을 때만큼 잔혹한 느낌은 덜했던 것 같다.

 

호아킨 피닉스 너는 여기에 없었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그러고 보면 신체적으로 당하는 폭력이나 학대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사람과 그 삶을 가차없이 짓밟아버리는 것이 정신적 학대나 폭력이다. 특히 [디어헌터]는 저 유명한 '러시안 룰렛'을 경험했던 마이클(로버트 드 니로)이 그 누구보다 전쟁의 후유증에 크게 시달리다가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삶을 마감하고야 만다. 

 

전쟁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는 세계적으로는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국내로는 한국전쟁 관련 이야기가 오랜 세월과 더불어 드라마나 소설, 영화의 소재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 속에서 형언할 길 없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군상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두 번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전쟁임을 새삼 강하게 깨닫게 되곤 한다.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린 램지 감독)도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다 어린시절 아버지에 의한 가정폭력까지 겪은 조(호아킨 피닉스)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그는 그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매일 비닐을 뒤집어쓰고, 입에 칼을 넣어보고, 돌을 한주먹 들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등 갖은 방법으로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역시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낡아버리고 피폐해진 채 치매마저 걸린 어머니 때문에 마음놓고 죽지도 못한다. 이처럼 매일 자살을 꿈꾸는 폭력의 희생자인 그가 폭력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는 것은 아이러니일까, 필연일까? 

 

 

이렇듯 조는 무자비한 살인청부업자로서의 일을 칼같이 해내지만, 어느 날 납치당해서 사창가로 흘러들어가게 된 12세 소녀 니나(에카테리나 삼소노브)를 구출해 내는 일을 맡게 되면서 그 삶에 균열이 생긴다. 묘한 일은, 딸을 구출해 달라고 한 아버지도 기어이 딸을 찾겠다는 애절함이 없고, 위험한 곳에 머물게 된 딸도 어서 그곳을 벗어나겠다는 간절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는 자신이든 타인이든 <죽이는 일>이 아니라 타인(니나)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되면서 한 가닥 삶에의 희망을 갖게 된다. 삶에의 시선이 자신에게만 붙박혀 있었을 때는 타인의 삶을 바라볼 여유가 전혀 없었던 그였지만, 본의 아니게 뛰어든 사건에서 그는 타인의 삶을 보게 되고 자신이 그 벼랑끝 같은 삶에서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한 줄기 빛살 같은 삶에의 의지를 다지게 된 것이다.

 

하긴 똑같은 불행을 당했더라도 누구나 똑같은 정도의 트라우마를 겪는 것은 아니다.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 트라우마를 더 강하게 겪거나 약하게 겪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아예 극복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소녀를 구출해 냄으로써 기나긴 고통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한 조는 이제 지옥 같기만 하던 삶을 떨쳐낼 수 있게 됐을까?   

   

 

중년의 남자와 어린 소녀와의 스토리여서 혹자는 뤽 베송 감독 장 르노,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레옹]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택시 드라이버]를 잘 버무려놓은 듯하다는 말도 하지만, 그 동안 좀더 폭력적이고 복잡다변화된 세월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는 듯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좀더 파편화되고 다면화된 인간의 음험한 속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는 총질을 해대며 광분하는 모습은 같아도 훨씬 온건하고 치기마저 엿보이지만,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호아킨 피닉스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고 폭압적인 느낌이 강하다. (여담이지만, 로버트 드 니로는 젊은시절의 모습보다 나이들어 가는 모습이 훨씬 멋진 배우 중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자신의 인생멘토(마스터)를 찾아헤매는 영화 [마스트]에서도 호아킨 피닉스는 괴기하리만큼 위험하고 음험하고 위협적으로 보였다. 이 영화에서는 살을 찌워 몸집을 불리고, 머리도 목까지 길러 뒤로 묶고, 눈빛도 약간 평화스러워 보여 겉모습만으로는 얼핏 마음씨좋은 아저씨로 보일 것도 같다. 하지만 살인청부업자로서의 냉혈함을 장착했을 때는 훨씬 비대해진 그 덩치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어마어마하다.

 

 

니나를 구출해 낸 후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상상 속에서 스스로 총을 쏘아 죽인 다음 테이블에서 번쩍 고개를 드는데, 그 얼굴엔 마치 차가운 물에 막 세수를 하고 났을 때와도 같은 말끔함과 평화로움이 떠올라 있었다. 

 

그는 아마 예전에도 그렇게 살고 싶었으리라, 평화롭게.

앞으로는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평화롭게.

'너는 여기에 없었던 것'으로 하고.   

고통의 세월이기만 했던 과거일랑은 깨끗이 잊고 말이다.  

 

  

단 1초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이 영화는 보고 있는 동안 마치 주인공 조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문득문득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는 흠칫흠칫 놀라기도 했다. 이렇듯 숨죽이고 보면서도 끊임없이 주인공의 마음과 행동을 놓치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하는 참으로 고단하고 불친절한 영화다. 하지만 그것조차 기꺼이 감내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린 램지 감독만의 연출력이 참으로 놀랍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중년 남자의 구원의 대상자가 어린 소녀라는 것, 그 소녀를 구해낸 곳이 사창가라는 것으로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한 점이었다. 중년의 남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길이 그 외에도 달리 없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린 램지 감독의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감독은 모성이 없는 엄마와 싸이코패스 성향의 아들을 다룬 [케빈에 대하여]에서도 뛰어난 연출력을 보였는데, 이 영화에서도 역시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호아킨 피닉스의 혼란스러운 내면과 거대 권력에 의해 만행된 차갑고 잔인한 사건을 독창적이고 깊이있게 다룬 천재적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  


"뻔한 등장인물들을 뒤집어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감독은 의도적으로 학대, 복수, 살인 등 무자비한 폭력과 공포를 내세우기보다는 호아킨 피닉스의 상처받은 내면과 육체를 몽환적이며 환상적인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한편 "나는 나를 밀어붙이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 호아킨 피닉스는 노트르담의 곱추처럼 느껴지는 걸음걸이를 연구하고, 스테로이드로 만든 몸이 아닌 거칠고 인간적인 육체를 만들기 위해 점차 체중을 늘려 주인공 조의 모습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이상, 호아킨 피닉스 너는 여기에 없었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