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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안시성 5천명으로 20만 당군 물리친 양만춘(조인성)의 섬기는 리더십

안시성 5천명으로 20만 당군 물리친 양만춘(조인성)의 섬기는 리더십 

 

안시성 5천명으로 20만 당군 물리친 양만춘(조인성)의 섬기는 리더십

 

처음엔 조폭세계의 넘버 3? 후하게 쳐줘봐야 넘버 2쯤 돼보이는 [안시성]의 성주 조인성(양만춘 역)을 보고 걱정이 앞섰다. 저 정도의 기개로 어찌 5천명으로 20만 당군을 물리쳤다고 전해지는 안시성 전투를 치러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아마도 [비열한 거리]의 조폭조직 2인자였던 병두가 생각났던 것 같다. ㅎㅎ) 하지만 안시성 주민들과 미소지은 너그러운 얼굴로 담소를 나누고, 부하 장군들과도 격의없이 대화를 주고받곤 하는 초반부가 지나고 중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런 걱정이 쓰잘데기없는 기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주민 중 한 사람은 아기가 태어나자 이름을 늦봄(양만춘의 晩春)이라고 지었다는 말까지 하는 것을 보면, 그는 오로지 강력한 권위로 아랫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전투에도 같이 참여하는 등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믿음을 주는 '섬기는 리더십', 이른바 '서번트 리더십'을 가진 성주였던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리더십을 가진 성주가 있었기에 군사들과 주민들은 똘똘 뭉쳐 불과 5천명으로 무려 20만 당나라 군사들로부터 안시성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안시성 5천명으로 20만 당군 물리친 양만춘(조인성)의 섬기는 리더십

 

꽃미남배우여서 높은 인기를 누려왔던 조인성이지만, 역으로 꽃미남배우여서 더 높고 넓게 펼치기 어려웠던 배역의 한계를 그는 이 영화 [안시성]으로 확실히 벗어나게 된 듯싶다.

 

초반부를 지나 몇 차례의 전투를 치러내고 난 후반부에서는 마냥 멋지게만 보이던 청년의 모습을 벗고 어느덧 중년의 향기가 슬쩍 느껴지기도 하는 조인성이었다. 결국 그는 천하의 연개소문과도 맞설 수 있는 자타공인 최고의 장군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해도 한 성의 성주로서 너무 젊은 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지만, 김광식 감독의 말에 따르면 고구려 시대에 전장을 휘어잡던 장군들의 실제 나이가 3~40대였다고 하니 크게 어긋난 캐스팅은 아닌 듯하다. 그러고 보니 조인성도 어느덧 38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연개소문(유오성)이 자신의 말을 거역했다고 해서 태학사 수장 사물(남주혁)을 시켜 죽이고 오라고 한 일이었다. 수십만 당군과 싸우고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개인적 감정으로 유능한 장군을 죽이려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속좁고 편협된 의식을 가졌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그것을 또 하나의 갈등요소로 삼아 양만춘과 사물 사이에 언제 죽이고 죽게 될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은데,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다행히 두 사람은 그리 좋은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토록 적대적 관계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 양만춘의 섬기는 리더십과 한결같은 인품에 마음이 바뀐 사물이 후반부에 연개소문에게 달려가 그를 도와달라고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기보다는 연개소문이 자발적으로 안시성을 도우러 온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 또 그래야만 하고 말이다. 전투 중에 장군들과의 알력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니까.

 

 

영화의 포문을 여는 주필산 전투와 두 차례의 공성전, 마지막 토산 전투 등 전쟁 씬으로 시작해서 전쟁 씬으로 끝난 전쟁 블록버스터 [안시성]이다. 이렇듯 전쟁 씬만으로 런닝타임 135분을 끌어가면서도 전혀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으니 놀랍다. 간간이 신파가 끼어들어 자칫 분위기를 망칠 뻔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길게 끌지 않고, 혹 길게 이어지면 어쩌나 싶은 순간에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준 점도 좋았다. 

 

토산을 빼앗긴 뒤 당군은 사력을 다해 하루 일고여덟 차례씩 사흘 밤낮을 공격했지만 안시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이렇게 공방전이 3개월이 계속돼도 아무런 성과가 없는데다 군량까지 바닥나기 시작한 당군은 9월이 다가와 날씨까지 추워지자 결국 고구려 침공을 포기하고 퇴각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 태종이 안시성 전투 당시 양만춘이 쏜 화살에 맞아 눈을 잃고 그 화병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도 그 장면을 아주 극적으로 보여준다.  

 

 

당 태종 이세민 역의 박성웅과 연개소문 역의 유오성은 캐릭터가 좀 약해보인 것이 아쉬웠다. 물론 두 사람 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 믿보배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왠지 좀 어울리지 않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한 나라를 휘어잡고 호령하는 황제에다 최고의 장군인데, 외모만이 아니라 카리스마 면에서도 한눈에 위엄이 넘쳐흐르는 분위기가 풍겼으면 싶었던 것이다.

 

특히 이세민 역은 요즘 [미스터 션샤인]에서 보니 영락없는 일본인 같은 한국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있던데, 그 드라마에서처럼 이 영화에서도 중국인 같아 보이는 배우를 썼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환도수장 풍 역을 맡은 박병은은 워낙 도회적인 느낌과 현대적 이미지가 돋보여서인지 시대극에는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부월수장 활보 역을 맡아 도끼를 휘둘러대며 웃음을 유발하는 오대환과의 케미는 나름 괜찮았다. 배성우는 모처럼 악역을 벗어던지고 조인성을 물심양면으로 도울 뿐 아니라 사리판단도 빠른 안시성 부관 추수지 역을 맡아 열연을 해주었다. 

 

 

조인성은 어느 인터뷰에서 [안시성] 전투를 앞둔 양만춘의 마음이 200억 제작비를 책임진 내 심정 같았을 거라고 부담스러운 마음을 토로했는데, 현재 관객 370만명을 넘어섰으니 손익분기점인 560만명도 거뜬히 넘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그 이상 더 많은 관객들의 행진이 이어져야겠지만 말이다.  

 

김광식 감독 (출처 뉴스엔)

 

역사에 따르면, 5천명 고구려군에 당군 20만명이 아니라 고구려군 4-5만명에 당군이 50만명이었다고 한다. 영화 제작에 맞춰 규모를 좀 축소한 듯하다. 그리고 양만춘에 관한 기록도 얼마 없다고 한다. 그 짤막한 기록을 가지고 양만춘과 안시성 전투를 되살려낸 김광식 감독의 눈썰미가 대단하다 싶고, 또 그것을 영화로 만들어낸 저력이 놀랍고 고맙다. 양만춘의 신화를 되살려내주었으니 말이다.

 

감독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전쟁 장면들을 실감나게 연출하고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과 당 태종, 사물 등 주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리기 위해 100권의 서적을 참고하는 등 잊혀진 승리의 역사를 그리려고 다각도로 힘썼다고 한다. 기존의 작품 [찌라시]나 [내 깡패 같은 애인], [오아시스](조감독)와는 전혀 다른 장르인 시대극을 하려다 보니 부담감도 컸을 텐데, 이제 그 부담감을 살짝 내려놓아도 될 듯싶다.  

 
이상, 안시성 5천명으로 20만 당군 물리친 양만춘(조인성)의 섬기는 리더십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